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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의 공돌이 Oct 26. 2020

회사가 걱정이다

작은 회사의 장점이자 단점은 많은 것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많은 것이 보이는데, 주로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올해의 예상 매출 같은 거. 수익구조가 단순하니까 일개 직원의 눈에도 그런 게 보이는 거다. 이 회사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이 회사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가, 를 생각하게 된다. 한마디로 회사 걱정하는 거다. 일개 직원 따위는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매출이 큰 회사라면 나는 그런 거 관심도 없을 것이다. 뭔가 위태해 보이고 잘 안 될 것 같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이럴 때 나는 대단한 비즈니스 전문가가 된다. 영업목표, 영업전략, 자금조달계획, 기술력확보 등의 주제어를 갖다 대며 회사를 걱정한다. 굳이 대단한 전문가 아니라도 누굴 평가하고 비판하는 건 참 쉽다. 회사경영을 나보고 해보라고 하면 분명 잘 못 할 텐데 남 하는 거 보면 그게 답답한 거다.


그런데 일개 직원 주제에 회사 걱정이나 하는 이유는 많은 게 투명하다고 생각하지만 또 따지면 별로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나 마케팅 방향, 실행계획 등을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회사는 나름 계획이라는 게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내 눈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오너란, 우리는 이런저런 걸 계획하고 추진하고 있으니까 여러분은 아무 걱정 말고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주세요, 라는 메시지를 주는 자리가 아닐까. 그런 메시지가 없으면 직원은 불안하고 결국 이탈한다.

물론 나한테는 안 그래도 된다. 여기는 공장이니까. 나는 공장 노동자이고, 나 같은 노동자는 흔하고 흔해서 아무나 뽑아도 되니까. 굳이 나 같은 일개 노동자에게 그런 걸 설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장 노동자도 안정적인 곳에서 마음 편히 일하고 싶다. 고임금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망하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어려워 보인다. 우리가 제작하는 기기의 가격을 알기 때문에 일 년에 이 기기를 몇 대 팔아야 회사가 유지되는지를 계산하는 건 아주 쉽다. 내 계산으론 기기를 지금보다 다섯 배를 더 팔아야 한다.


제주도 전역을 뛰어다니며 영업을 해야 한다. 팔 데가 없으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회사가 목표치를 설정하고 영업 전략을 수립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표님이 머릿속에 있는 각종 아이디어나 계획들을 구체적인 형태의 자료로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업담당자는 지금보다 더 기계, 환경, 에너지, 국가정책 등에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맨땅에 헤딩하듯 저돌적으로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영업은 그런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만 한다.


능력 없는 사람은 아무리 적극적으로 영업을 뛰어도 제품을 팔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를 댄다. 어쩌면 모든 이유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부딪혀서 작은 구멍 하나를 만드는 게 영업이 아닐까. 그리고 거기를 헤집어서 큰 구멍을 내는 동안 버틸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런데 회사는 그럴 계획이 없어 보인다. 작은 회사는 거의 모든 것이 투명하다. 역량도, 자본도, 그리고 운명도. 회사가 언제 어떻게 어려워질지 뻔히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뭔 계획이 있겠지?’


나는 이 회사가 좋다. 오래오래 다니고 싶다. 제발 무슨 계획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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