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여행_여름 민어회
제주도에서 친구가 올라왔다. 모임 장소는 인천. 인천에 혼자 사는 친구가 있기도 하고, 다음 날 김포공항으로 다시 떠나야 하는 친구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무엇을 먹을지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먼저 민어를 제안했다. 원래 여럿이 메뉴를 고를 때는 말을 아끼는 편인데, 민어는 워낙 맛보기가 쉽지 않아서 기회가 보이면 틈틈이 제안을 하는 편이다.
민어는 대표적인 여름 생선으로, 시즌 생선 중에서는 겨울의 방어와 쌍벽을 이룬다. 서해에 주로 잡히는 생선으로 목포가 가장 유명하지만, 인천이나 군산 같은 서해안의 항구도시에선 발품을 팔면 괜찮은 식당을 찾을 수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대가 높다는 점이다. 저렴한 식당에서 먹어도 일인당 3만 원은 기본적으로 넘어간다. 양이 많은 것도 아닌데 흔히 먹는 광어나 우럭과는 식감도 많이 달라서, 사람들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그러다 보니 민어를 함께 먹을 동행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기껏 먹어놓고 돈 아깝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면 평소에 먹는 것에 진심인 지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이번에 만나는 친구들은 해외에 오래 살았던 친구들이라 낯선 음식에도 오픈마인드인 편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제안했는데 흔쾌히 수락해 줬다.
인천에서 민어를 먹기 좋은 곳은 동인천역과 가까운 신포시장이다. 신포닭강정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민어 전문 식당들이 몰려 있는 민어골목이 있다. (a.k.a 민어스퀘어) 나도 5년 만에 방문하였는데, 잘 나가는 식당은 가게를 확장하는 반면 몇몇 식당은 없어졌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상권이 재편된듯하다.
사실 굳이 민어 전문식당을 안 가더라도 인천에서는 해산물 식당에 가면 민어회를 취급하는 식당이 많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육지에 올라온 친구에게 여행하는 기분도 느끼게 해 줄 겸 전문 식당으로 가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방문했을 때 딱 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민어의 주가가 하늘을 뚫는 삼복 시즌이었다면 무조건 기다렸어야 했을 텐데, 한 템포 일찍 온 게 신의 한 수였다. 민어는 보통 회, 전, 지리로 먹는다. 식당에서도 세 가지 방식으로 모두 팔고 있었는데, 인천 친구의 의견을 따라 회를 2인분, 지리를 1인분 주문했다. (민어 전을 시키자고 했더니 돈 아깝다고 생난리를...)
회는 거의 반찬과 함께 동시에 나왔다. 바닥에 깔린 민어회와 그 위에 올려진 껍질과 부레. 이게 바로 민어회의 정석이다. 민어는 스트레스를 쉽게 받기 때문에 숙성을 시킨 선어회로 먹는 것이 보통이다. 때문에 활어회의 특유한 쫄깃함은 덜하지만, 부드러운 식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게다가 부레가 껌 같은 쫄깃함을 식감으로 활어회를 잊게 만들어준다. 민어회를 처음 먹어본다던 제주 친구도 맛있다고 좋아한다.
곧이어 민어 지리도 나왔다. 민어가 기름기가 풍부한 생선이기 때문에 지리에서도 진한 국물 맛이 난다. 나는 매운탕을 더 선호하긴 하지만 소주를 마시기에는 지리가 더 낫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이 날도 민어 지리 맛을 보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음주가 시작되었다. 음식도 맛있고, 오랜만에 모인 자리다 보니 술이 술술 넘어갔다.
솔직히 이때부터는 자제불가의 상태이기 때문에 홧김에 술을 더 마실수도 있었을 텐데, 비싼 민어회가 브레이크 역할을 해줬다. 가격표를 보니 민어회를 더 시킬 엄두는 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2차로 맥주집에 가면서 변속을 걸 수 있었다.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쯤 먹어보고 싶은데, 같이 먹어줄 동행이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