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
아침부터 날이 흐리다. 하늘엔 짙은 안개가 껴서 공중에 떠다니던 물방울이 간혹 얼굴에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춥다 추워- 쌀쌀한 아침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조식으로 제공되는 쌀국수로 속을 덥혔다.
하지만 채비를 하고 밖을 나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먹먹했던 하늘은 물러가고 강렬한 태양이 한껏 더위를 몰고 왔다.
"더운 게 나은지 흐린 게 나은지 통 모르겠단 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고개를 저었다.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곳이다. 오래된 골목에는 나지막한 고가옥들이 들어서 있고, 과장 좀 보태어 걸음마다 사원이 나타날 정도로 도시 전체가 사원을 품고 있다. 또, 기와가 내려앉은 옛 건물뿐만 아니라 프랑스 식민 지배 당시 건설된 콜로니얼 건물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독특한 정취를 더해 준다.
이 같은 루앙프라방에서 시간이 없더라도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인 왕궁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캄(Ho Kham; 황금의 방)이라 불렸던 왕궁 박물관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라오스 왕국의 왕궁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는 왕궁이, 오른쪽에는 호 파방(Ho Pha Bang)이, 그리고 왼쪽에는 왕립 극장이 있다.
라오스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호 파방(Ho Pha Bang)은 '파방'을 안치하기 위해 만든 법당으로, 황금색으로 장식된 화려한 건물이라 금방 눈에 띈다. 웅장한 사원 내부에는 황금 색으로 만든 제단 위에 파방을 모시고 있다.
파방(Pha Bang; 프라방)은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황금 불상이다. 90% 순금으로 만든 파방은 크기가 83cm, 무게는 53kg이다. 신비한 힘을 가진 황금 불상은 국가의 수호신으로, 파방을 소유하고 있는 왕조가 국왕의 정통성을 인정받는다고 여겨졌다.
호 파방에서 시작해 왕궁과 왕립 극장까지 찬찬히 둘러보았다. 뜰 안 가득 들어찬 관광객들은 소란스레 셔터를 누르고 기념사진을 남기느라 정신이 없다.
쫌펫(Chomphet) 마을은 흔히 '강 건너 마을'이라고 불린다. 왕궁 박물관 뒤편의 선착장에 서면 강 너머 맞은편에 바로 보이는 곳이다. 바지선을 타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만큼 루앙프라방과 가까운 곳이지만,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선착장에 내려서니 마침 바지선이 출발하려는 찰나다.(차와 오토바이를 싣고 강을 오가는 바지선이 수시로 운항한다.) 1,000원도 채 하지 않는 인당 5,000낍(kip)에 바지선에 올랐다. 배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맞은편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서 언덕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마을 오른 편의 샛길로 접어 드니 하나로 쭉 이어진 흙길이 나타났다. 쫌펫은 길 하나가 전부인 마을로, 길을 따라 양 옆으로 가정집과 작은 노점, 학교가 늘어서 있다. 한적한 시골 풍경은 달라질 것 없이 계속되었다.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사원인 왓 쫌펫(Wat Chomphet)에 도착했다. 왓 쫌펫은 마을 입구에서 길을 따라 안쪽으로 1.5km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곳이다. 입장료를 내고 계단을 올라가니 강 건너 루앙프라방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루앙프라방에 돌아가기 위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마침 학교가 끝났는지 아이들이 저마다 짝을 지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조잘조잘 떠들며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생기가 넘쳤다. 같은 길을 되짚어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방금 막 출발한 바지선이 멀어지고 있었다.
유토피아(Utopia)는 칸 강변에 위치한 야외 레스토랑이다. 큰길을 벗어나 다소 골목 안쪽 숨겨진 곳에 있지만 이미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져 항상 사람이 많다. 입구에 들어서면 안락해 보이는 소파가 늘어서 있고, 야외 정원 곳곳에는 방석이 놓인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명당은 따로 있는데,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쿠션을 깔아 두었다. 역시나 테라스는 만석이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았다가 운 좋게 테라스에 자리가 나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아쉽지만 우리가 방문했던 2월의 라오스는 건기라 칸 강은 물이 말라 군데군데 허연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다소 아쉬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무더위에 지친 몸을 뉘이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주문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음식을 받았다. 햄버거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고기는 질기기만 하고 별로 맛이 없었다. 과일 음료는 먹을 만했다.(과일은 맛이 없을 수가 없지만!) 테이블이 없어 바닥에 그릇을 두고 불편하게 음식을 먹는데, 직원들이 슬리퍼를 신은 채로 음식 앞을 걸어 다녔다. 맨발로 이용하는 곳인데 직원들이 보란 듯이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니다니... 입맛이 확 떨어지고야 말았다.
뷰포인트 카페(Viewpoint Cafe)는 루앙프라방을 둘러싸고 흐르는 메콩 강과 칸 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전망이 끝내 주기 때문에 유유히 흐르는 강의 정취를 느끼며 여유로이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강 위를 유유자적 떠 다니는 나무배들과 대나무 다리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황톳빛의 강물과 녹색이 우거진 숲이 붉어 오는 하늘 아래 멋지게 어우러졌다.
동생과 나는 풍경에 취해 각자 음료 두 잔씩을 비워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어둑해진 거리에는 어느새 좌판이 깔렸다.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은 방비엥에 비할 바 없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종류도, 디자인도 훨씬 다양했다. 거리의 끝에서 끝까지 좌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솜씨 좋은 수공예품들에 한 눈 팔린 사람들 덕에 좁은 길은 북새통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껏 정신이 팔려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어 하는 누나를 챙기느라 동생은 분주하다. 라오스 느낌 한껏 풍기는 냉장고 바지 하나, 과일 모양의 수제 비누 두어 개, 집에 선물로 가져갈 손으로 직접 그린 전등 둘, 자석은 셋넷다섯….
오늘이 마지막인 냥 두 손 가득 기념품을 잔뜩 들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쇼핑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길거리 음식도 맛봐야 한다. 인터넷을 살펴보다 다들 맛있다고 추천하던 기름에 튀긴 동그란 코코넛 빵 몇 알을 샀다. 읏뜨뜨- 달짝지근한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비로소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Tip>
*왕궁 박물관에 방문하는 날에는 옷차림에 주의하자. 무릎이 보이는 반바지나 치마, 어깨가 드러난 민소매 등 노출이 심한 옷은 입장이 제한된다.
*쫌펫 마을로 가는 바지선은 인당 편도 5,000낍(kip). 바지선을 놓쳐 곁에 정박해 있던 작은 보트의 주인에게 물어보니 5,000낍으로 가격이 같았다. 바지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싼 가격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니 여유가 된다면 꼭 방문해 보자.
*유토피아는 음식 맛이 평범 혹은 평범 이하인 정도다. 여기선 굳이 식사를 하기보다 음료를 마시며 풍경을 감상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