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피 Jan 07. 2024

제왕나비가 매년 8,000km를 여행하는 이유

미초아칸의 안강게오에서

미초아칸 제왕나비 보호구역 방문기


안강게오는 멕시코 미초아칸 주에 있는 마법의 마을로, 매년 가을이면 제왕나비 보호구역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동트기 전 출발 장소에 모였다. 우리도 시기에 맞춰 제왕나비를 보러 가기 위해 미리 멕시코시티에서 출발하는 당일 투어를 신청해 둔 터였다.


어두운 버스 안에서 눈을 붙이고 달리길 한참, 오늘의 투어 가이드가 깨랑깨랑한 목소리로 단잠을 깨웠다.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밝아온 차창 밖으로 생소한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벌써 3시간이 지나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왕나비 보호구역, 엘 로사리오(El Rosario)


안강게오 마을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제왕나비 보호구역‘엘 로사리오’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은 투어 버스와 자가용들로 거의 꽉 차 있었다. 투어는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다시 모일 시간만 안내받은 후 각자 자기의 페이스대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하이킹 코스 같아 보였지만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점점 제왕나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왕나비 보호구역 ‘엘 로사리오’ @숲피


하늘을 나는 제왕나비들 @숲피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더 많은 수의 제왕나비가 나타났다. 하늘에도, 땅에도, 곁을 지나는 나뭇가지 위에도. 이렇게 많은 수의 나비를 한꺼번에 본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 혹은 그 이상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나비가 종잇장처럼 가벼운 날개를 접고 곡선을 그리며 마치 춤을 추듯 비행하고 있었다.


마침내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주황빛 물결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개별적인 움직임이 모여 하나의 규칙을 이루어 낸다. 날갯짓 한 번에 주황빛 바람이 불었다. 하늘하늘, 하지만 세차게. 작은 날갯짓이 하늘에 작은 파동을 만들어내고, 그 작은 파동이 모이고 모여 주황빛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하늘을 수놓은 제왕나비 무리 @숲피


제왕나비가 매년 8,000km를 여행하는 이유


해가 점점 짧아지고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가을이 다가오면 수백만 마리의 제왕나비들은 캐나다와 미국 동부의 추운 겨울을 피해 남쪽으로 날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자신들만의 온전한 체온으로는 캐나다와 미국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 여행은 겨울을 나기 위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과정이다. 그들은 수개월에 걸쳐 2,000km에서 최대 4,500km에 달하는 거리를 날아 11월 즈음 멕시코 미초아칸 주 동부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5개월을 보낸 후 3월이 지나면 떠나온 곳으로 다시금 돌아갈 준비를 한다.


제왕나비의 여행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손바닥보다 작은, 0.5g도 채 되지 않는 연약한 몸집의 곤충이 그토록 긴 시간을, 먼 거리를 날아온다는 것이다. 이 연약하고 가냘픈 생명은 매년 8,000km를 왕복하는 놀라운 여행을 한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 기꺼이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나뭇가지 위에 앉은 제왕나비 @숲피


떠나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떠나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편안하고 안락했던 집을 뒤로하고 새로운 환경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도 모른 채로, 한 번 떠나면 멈출 수 없는 긴긴 여행을 준비한다는 것은.


매년 떠나야 하는 제왕나비의 인생이 우리네 인생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가만히만 있어도 뒤쳐지기 십상이다. 금세 누가 뒤에서 쫓아와 어렵게 차지한 이 자리에서 밀려날 것만 같아 불안하다. 안주는 곧 도태일지 모른다.


당장 내 몸과 마음이 편한 쉬운 선택 대신에 고통과 인내를 감내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야 발전이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혹독한 계절이 와도 버틸 수 있다. 제왕나비는 이미 알고 있다. 삶이란 편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추운 계절은 때때로 찾아오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때로는 몸과 마음이 힘든 선택을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아보카도 때문에 살 곳을 잃어가는 수백만 마리의 나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