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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Oct 08. 2023

절묘한 일자리를 찾다

< 전업주부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2 > 83년생의 집



'한 번만 더 찾아보자.'


그렇게  다시 접속한 아르바이트 사이트의 익숙한 목록 사이에서 새로운 공고를 발견했다.



< 병원 상담실, 산모 교실 근무 >


주 5일 (토요일 반드시 근무, 평일 중 하루와 일요일 휴무)

오전 9시 - 오후 1시 (4시간)

급여는 최저시급 + 주휴수당  

(대략 100만 원 언저리에서 4대 보험 공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나의 조건에는 딱 맞았다. 최저 시급은 물론이고 어떤 일이던 좋으니 시간만 맞길 바랐는데 시간대가 완벽한 것이다. 아이들 등교 때 함께 집을 나섰다가 아이들 하교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오전 시간만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 같은 구가 아니라 거리가 좀 멀게 느껴졌지만 전철로는 두 정거장이고, 고민하다 지원해 봐야 감감무소식이었던 경우가 더 많은데 그냥 넣어나 보자 하고 얼른 지원했다.


제출 서류 중 자기소개서는 이력서 끄트머리에 열 줄 정도 넣을 수 있는 조그만 크기라 상담실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부담 없이 아주 간단하게 작성했다.


인상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고 실제로 매사 친절합니다. 사원 교육, 어린이 독서 교육, 전집 영업 등 대화하는 일을 주로 해왔습니다. 유머는 없지만 공감을 잘하기 때문에 대화할 때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민폐 끼치는 것을 싫어해서 일을 맡게 되면 최대한 열심히 배우고 노력합니다.

귀사에서의 근무 시간이 네 시간인데, 저에게는 양육을 하며 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시간이 짧은 만큼 더더욱 최선을 다해서 일하겠습니다.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병원 앞 카페에서 담당자를 만나 면접을 보았다. 그분은 내게 토요일 근무 때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일에 지장이 있지는 않을지를 물었고, 나는 토요일엔 아빠가 집에 있고 평일은 근무 시간이 아이들 하교 전이라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나도 질문을 했다.


"오전 파트타임이라 시간 활용하기 좋아서 많은 분들이 지원했겠네요?"


담당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금방 그만두시더라고요. 두 달 넘기기가 힘들고, 여섯 달 넘어도 갑자기 그만두니 안심이 안 돼요. 에휴..."



나와 나이대가 비슷하거나 조금 어려 보이는 남자 인사 담당자는, 나의 질문들에 너무 진솔하게 술술 대답을 해주었고, 그의 표정에는 이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일(더 중요한 할 일이 많은데 이런 것에 매번 발목 잡혀 신경 써야 한다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염원마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몇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1. 나는 붙을 것다. (지원자가 나 밖에 없어 보임.)

2. 일이 썩 쉽지는 않은가 보다. (사람들이 자꾸 그만둔다고 함.)

3. 길게 일할 사람을 찾는 듯하다. 

(교육시키고 적응시키면 그만둔다고 한탄함.)


과연, 합격하면 10월부터 일할 수 있다고 하더니 다음날 전화가 왔다. 월요일부터 바로 출근하라고 했다. 막상 날아온 전자 계약서를 보니 나는 병원 직속이 아니라 용역 업체 소속이고 계약 기간은


2023년 9월 11일 ㅡ 2024년 9월 10일


이었다. 퇴직금 안 주려고 그러나? 그건 상관없었다.

그때 가서 다른 일 또 구하면 된다.


문제는 근래 아주 극심해진 공황증이었다. 막상 덜컥 일자리가 생기니, 일터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나진 않을까 하는 불안에 온 정신이 쏠렸다. 작은 일에도 예기 불안이 찾아와 호흡이 가빠졌다. 하루에 한 번 먹던 약을 출근 이틀 전부터 아침, 저녁으로 먹기 시작했다.







공포가 극에 달한 첫 출근 아침엔 약 두 봉을 한 입에 먹었다.


병원 유니폼은 어떻게 생겼을까, 목이 조이진 않을까, 허리가 조이진 않을까, 답답해서 뜯어 버리고 싶어지면 어쩌나.


얼마 전 친한 친구랑 커피숍에서 대화 중에 예기 불안이 와서 친구에게 잠깐만 밖에 다녀온다 하고 옆에 있는 재래시장 옷가게에 가서 헐렁이 바지를 사서 갈아입고 친구 앞에 다시 갔던 일도 떠올랐다.


'유니폼, 견딜 수 없을 거야. 답답할 거야. 게다가 마스크까지.'


병원 로비에서 담당자를 만나 유니폼과 마스크를 전달받고 탈의실이 있는 꼭대기 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는 거의 체념하는 심정이 되었다. 모르겠다. 기절 밖에 더하겠어. 그 와중에 조금 안심인건 여기가 병원이라 쓰러져도 바로 구조될 수 있겠단 것.


그렇게 일 시작도 전에 에너지가 방전된 채로 탈의실에 도착해 유니폼을 꺼냈는데. 세상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입고 있던 깔끔한 남색 바지가 글쎄 고무줄 바지였다! 고무줄도 아주 쭉쭉 늘어나는! 윗 옷은? 윗 옷은 목둘레가 라운드로 좁지도 과하지도 않게, 단정하면서도 시원하게 파여 있었고, 대각선으로 지퍼를 쭉 올리고 옷깃에 감추면 끝. 유니폼이 보기에는 맵시 있게 딱 떨어져 보이는데, 입은 사람 입장에선 품이 넉넉하고 편하고 시원했다.


'그렇지, 하루 종일 고생하는 간호사 선생님들 옷이니까 이렇게 인체공학적으로 세심하게 만들어 놨구나!'


가장 큰 걱정이 사라지니 불안이 싹 걷혔다. 약효도 발휘 중이라고 믿으며 다음 걸음을 옮겼다. 내가 일할 층에 도착하고, 함께 일할 상담실 선생님께서


"여기가 꽃님씨 자리예요." 라며 가리킨 곳을 보니

책상과 의자, 작은 창이 있는 방 하나가 있었다.


'여기가 내 자리?'


서서 안내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나의 책상과 푹신한 의자가 있고 바로 위에 에어컨이 있고 옆 방 선생님과 소리는 통하지만 시야는 가벽으로 완전히 막힌 독립된 공간이었다.




생각지 못한 환경에 감사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얼마 전까지 다이○에서 6시간 동안 서서 일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쾌적한 환경에 앉아서 산모들을 돕는 상담일을 하게 되었다. 거리도 전철과 도보 시간 포함해서 25분 거리이고, 전철 방향이 시내가 아닌 외곽 방향이라 지옥철 시간에도 텅텅 빈 전철에 앉아 있으면 아직도 얼떨떨하다. 살면서 이런 출근길...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시내 방향으로 일하러 다녔기에.



모든 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자 병원은 나에게 불안한 장소가 아니라 시원하고 편안한 장소가 되었다. 물론 병원 업무라 외워야 할 게 무척 많고, 실장님과 선생님 앞에서 테스트도 여러 번 받아야 했지만 무사히 적응했다.










루에 네시간만 일하면 육아도 잘하고 돈도 벌고 글도 쓰고 시간 활용을 엄청나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런 내 모습을 줄곧 상상해 왔지만.


상은 공황약을 먹은 채 병원에선 잔뜩 긴장한 채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파도처럼 덮쳐오는 졸음에 맥없이 잠들었다. 약에 취한 졸음이라 지인들의 카톡을 읽지 못하거나, 잠결에 확인하고 손에서 핸드폰을 놓쳐서 답장을 못하는 경우가 생겼고ㅡ 요새 왜 메시지를 읽고 답하지 않느냐, 변한 것 같다는 오해와 원망의 말도 들었다. 결국 공황 재발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지인들은 공황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제는 내가 너무 피곤해할까 봐 연락을 조심스러워했다. 약속도 하나 둘 취소하고 더 이상 만들지 않게 되었다.


공황이 최초에 시작된 장소인 자동차는 아예 탈 수 없게 되어서 추석에 김포 시댁에도 가족들은 차를 타고, 나 혼자 전철을 타고 가고 오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간식은 눈을 감고 차려주고 오후 네시 다섯 시까지 쓰러져 있다가, 저녁 차릴 시간에 정신이 돌아왔다. 아이들을 위해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구했다면서 정작 소파에 늘어져 있는 순간에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일을 시작한 덕에 피아노 학원을 그만둔 이후로 아무것도 배우지 않던 아이들을 미술학원에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자괴감도 견디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자꾸 낮에 자는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다고, 몸이 일에 적응하는 중이라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미술학원이 좋은 아이들은 천천히 적응하라며 격려해 주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둘째가 조그만 손으로 정신없이 어지럽던 거실을 싹 청소 해놓았다.


"엄마 많이 피곤하지?"



마음이 뭉클하고 머리에 번쩍하며 전류가 흐르는 순간. 이런 순간순간에 솟구치는 힘들이 이어지며 하루만큼씩 더 움직인다. 버틴다.


가까운 가족뿐 아니라 친한 친구들, 가깝거나 멀거나 소중한 지인들, 따뜻하게 격려하는 이웃분들이 주시는 찰나의 에너지가 이어지고 이어져 삶을 끌고 가는 동력이 된다. 노를 젓고 또 저어 어딘가에 닿을 때까지. 가끔 저어나갈 노 마저도 놓친 것 같아 내가 허공에 손을 휘두르고 있는가 싶고, 또 가끔은 이미 물에 가라앉아 발이 땅에 닿지 않는가 싶기도 하지만 계속 휘휘 저어 본다.


조금만 더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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