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덕이 Dec 18. 2023

나는 진정한 엽서 수집가인가

포크러 7년 차,

(포스트크로싱:전 세계 회원들끼리 엽서 교환을 하는 사이트. 

여기서 활동하는 사람을 줄여서 포크러라고 한다)


엽서가 우후죽순으로 불어났다.

이대로 괜찮은가... 에 대한 이야기 조금, 엽서 자랑 많이, 포크(포스트크로싱의 줄임말. 이하 포크로 통칭)가 내게 미친 영향 등등을 정리하다 보면 뭔가 해결이 되지 않을까? 란 기대와 함께 

엽서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포크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그 이유는 포크가 내 인생에서 가장 가늘고 길게 하고 있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렇게 몇 년씩 하게 될 줄 몰랐고,

이렇게 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할 줄도 몰랐고,

무엇보다 짐이 이렇게 불어날 줄도 몰랐다.


포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람들마다 다양하겠지만

활동하다 보면 많은 문덕(문구 덕후)들이나 다꾸러(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다 가지다 이 변방까지 오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어릴 때부터 수집에 취미가 있었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쌓인 엽서, 스티커, 마테(마스킹 테이프) 등등을 사용하고 싶어서

찾아보다가 포크를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

이건 우리나라 포크러들의 특성인 것 같고(물론 이런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시작하는 사람도 엄청 많다)

해외 유저들의 프로필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엽서나 우표를 모아 왔던 사람들이 포크까지 발전하게 된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엽서나 편지를 쓰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은 반면(디지털 강국 대한민국 만세),

다른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손 편지, 엽서, 카드를 많이 쓰기 때문에 유입되는 인구가 좀 다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포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나 가볍게(라고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가볍게 못 나갈) 시작할 수 있는 취미이기는 하다.


나는 문덕, 다꾸, 그 외 각종 수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10대는 한창 잡다한 문구류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데

초등학생 때는 열심히 학종이, 스티커, 책받침 등등을 모았지만

중학교로 간 이후부터는 싹 끊었다.

갑자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흥미가 사라졌다.

친구들이 각종 문고나 문방구 가서 구경하자고 하면 너무 귀찮았고

펜 몇 미리가 좋네, 어떤 브랜드가 필기감이 좋네 등등하고 있을 때 

집에서 굴러 다니는 모나미나 판촉물로 받은 펜을 들고 다녔다.

그래도 고등학생 때는 필통이라도 들고 다녔다.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펜이랑 형광펜 몇 자루만 들고 다녔고

사회인이 된 지금은 보통 펜 한 자루만 주머니에 넣어서 다닌다. 

포크러가 된 지금은, 각종 문고, 문방구, 기념품 상점, 국립공원 안내소 등

엽서를 팔 것 같아 보이거나 엽서를 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곳들도

일단 들어가서 꼼꼼하게 살펴보는 천지개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포크러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엽서나 우표를 모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엽서, 우표, 스티커, 마테 등 포크에 필요한 용품을 모으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크지 않다.

없다고 썼다가 그건 아닌 거 같아서 크지 않다 정도로 타협을 봤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애초에 포크를 할 목적을 띈 용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 글 사진에 나와있는 저 수많은 물건들은 아직 나의 엽서를 받지 못 한 타인의 것이다.

다만 그 타인이 언제 저 물건들을 받을지 나도, 그 사람도 모르는 것뿐이다.

생각해 보니, 정말 모으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다.

난 그냥 사고 싶다. 그런데 그 양이 많아진 것뿐이다.


분명 처음에는 사용할 만큼만 엽서와 우표를 구매했었다.

당시에는 구매할 만한 엽서가 너무 없어서 

포크에 적합한 엽서를 구하기 위해(주로 한국적인 것, 크리스마스, 생일 등 시즌과 관련된 것) 교환도 많이 했었다.

아프고 우울해서 집에만 있었던 때는

포크가 낙이어서 엽서를 정말 많이 썼는데

그때는 10만 원어치의 우표를 사면

한 달 정도면 다 쓸 정도로 엽서를 써댔다.(참고로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엽서를 보내는 비용은 430원이다. 그러니까 보낸 엽서 장수를 계산해 보면...?)

엄청 많이 쓰긴 했지만 어쨌건 산 건 다 소진하긴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보낼 엽서는 그렇다고 치자. 

받은 엽서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다.

포크는 내가 보낸 만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물론 엽서이기 때문에 중간에 분실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오차 범위 내 일 것이다.

내년 3월이면 포크러 7년이 되는 현재, 

포크 사이트에서 362통,

포유 사이트(포크가 1등이라면 포유는 같은 취지의 2등 사이트이다. 포스트카드 유나이티드의 줄임말)에서 768통을 받았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숫자만 이렇고

비공식적으로 개인적으로 교환한 엽서들, 포크에서 포럼(포크에서 운영하는 비공식 카페... 같은 개념인데 네이버나 다음 카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카페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최고다)으로 교환한 엽서들, 네이버 포스트크로싱 카페에서 교환한 엽서들 등등이 7년 간 쌓여있다.

그러면 공식적으로 받은 엽서는 약 1100통, 그 외는...????

나도 그 정도 보냈다는 게 대단하긴 하지만 어쨌건 그만큼의 엽서가 우리 집 이곳저곳에 쌓여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내가 포크 하는 것을 싫어한다.


다시 정리하면,

보낼 새 엽서들은 언젠가 모두 나를 떠날 엽서들이다. 

그런데 엽서가 하도 많다 보니 언젠가 나를 떠나긴 떠날 텐데(요즘은 죽을 때까지 나를 못 떠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조금 먼저 떠나도 괜찮은 아이들, 최대한 늦게 떠났으면 하는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예쁘고 귀하고 비싼 것들은 오래오래 나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바람만큼 귀하게 여겨주면 괜찮을 텐데 이런 엽서들은 너무 귀한 나머지 

봉인당하고 잊혀진다. 


엽서를 우편함에서 꺼낼 때는 받은 엽서의 가치가 가장 큰 순간이다.

그렇게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꺼낸 엽서가 

내 기대를 충족할 수도,

충족하지 못할 수도,

오히려 기대 이상일 수도 있지만

모두 나의 관심을 받은 이후에는 똑같이 상자에 놓인다.

다시 찾아보는 횟수? 일 년에 한두 번 될까 말까이다. 

내 마음에 드는 엽서와 그렇지 않은 엽서 간의 차이는 없다.

그냥 함께 상자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수집은 아닌데 이용되지는 않고 있는 상태.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 대해 몇 년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감수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방에 들어오면 보이는 시각적 혼란스러움을 정갈하게 바꾸고 싶어 졌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시작하려고 할 때, 이곳저곳 책상을 뒤지며 찾고 싶지 않아 졌고

같이 살고 있는 가족에게 심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 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지금도 직면할 수 없지만

몇 년 간 모른 척 해온, 혹시나 했던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 엽서 호더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엽서 수집가라 속여보고 싶은 호더의 엽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