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난감한 질문
몇 주 전, 마케팅 팀에서 발생하는 번역일을 맡길만한 번역사를 소개해 줄 수 있는지 문의를 받았습니다.
네, 주변에 확인해볼게요.
대답은 하였지만 이런 부탁을 받을 때 꽤 난감합니다. 번역일 하는 지인이야 주변에 많지만 괜히 소개해줬다가 혹시라도 번역 퀄리티에 회사에서 만족스러워하지 않을 수도 있고, 회사에서 과도한 피드백을 주거나 번역 페이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지인이 곤란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자신있게 소개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쉽지만 제 주변 번역사들은 이를테면 FDA에 제출할 신약 소개서라던지 WIPO 특허청에 제출할 특허 신청서라던지 아무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팩트를 번역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원문에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번역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원문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신약 소개서나 특허 신청서와 같은 문서 번역은 그래야합니다.
하지만 마케팅 문서 번역은 다릅니다. 마케팅이라는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게끔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람이 생각하는 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익히 많이들 아는 사실일 겁니다.
한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영어로 바꾸었다고 해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해외 진출을 하려는 많은 회사들의 마케팅팀에는 번역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회사의 미션과 비전, 그리고 해외 진출 상황의 현주소에 대해 조직 내부의 핵심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히 논의하고, 이를 영어를 사용하는 잠재 고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작은 회사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유로운 영어 구사력은 기본이고, 해당 업계의 국내외 시장 현황, 프러덕트 혹은 서비스 개발 상황 등에 대한 맥락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국어 원문을 그대로 영어로만 옮겨서 번역한 텍스트로는 절대 효과적인 마케팅을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