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리고 '회사적' 인간
언젠가는 저도, 대리님처럼 눈치도 빨라지고 통화할 때는 과장님처럼 뻔뻔해질 수 있는 거겠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에게 학교 선배는 이런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둘 중 하나만 하면 된다고 -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일을 잘하는 건 자신이 있었고 원만한 성격에 반장도 여러 번 했으니 사내 정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일도 잘하고 사회생활도 잘하는 ‘잘’ 나가는 신입사원이 되는 일은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공부와 회사 업무는 각각 다른 차원에 존재하고 있으며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결코 학교 친구들과 같은 막역한 사이가 될 수 없음을 깨닫기 전까지는요.
입사하고 한 달이 지나고 석 달이 되어도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엑셀 파일들의 수식과 서식은 여전히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1년 차가 되어도 팀장님 유머에 반응하는 웃음은 아직도 부자연스럽기만 합니다.
잘 나가는 신입사원이 되고야 말겠다는 포부는 한참 전에 내려놓은 지 오래입니다.
상사에게 까이고 또 까여도 자존심은 왜 아직까지 남아서 죄송스러운 표정 짓기에 방해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잘못한 일도 아닌데 지난번 실수까지 합쳐서 가루가 될 때까지 혼내는 대리님은 나를 인간적으로 싫어하는 건가 봅니다.
팀원 모두가 깜빡 잊어버린 일인데 저한테만 책임감이 부족하다며 나무랄 때는 대역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이대로 물방울이 되어 증발해 버리고 싶습니다.
출근길에 "대리님~ 차장님~" 살갑게 부르며 뛰어가서 인사드리고 싶지만 눈이 마주치지 않았기에, 못 본 걸로 하자며 자기 최면을 거는 저는 반사회적 동물인 걸까요?
같은 방향인 선배님과 함께 갈 때면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리스트부터 만듭니다. 그건 같이 가기 싫어서도, 부담스러워서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준비성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점심시간에는 다 같이 밥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주말은 잘 보냈고, 어제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너무 재미있었으니까요^^
매일 아침 이불속에서 ‘하.. 오늘 휴가를 낼까’ 3초간 고민하며 뒤척이지만 지각할까 어느새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사원은 저뿐만이 아닌 거…겠죠?
세상 모든 막내 직원들이 내일도 또 로봇처럼 일어나 회사 모드로 자신을 바꾸고 '회사적 인간' 스위치를 킨 채 출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원들이 사람에서 '회사적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