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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 Apr 15. 2019

어떤 이별

연애일기 #6

“부탁이... 하나 있어.”     

 

는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내가 단호하게 헤어짐을 말하던 순간이었다. 하는 마음이 더 이상 깊어질 것 같지 않다는 나에게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기했다.

      

나중에, 간이 많이 지났더라도, 예전 기억을 떠올려 보게 될 때 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꼭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은 도저히 붙잡을 수 없다는 걸  듯한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헤어지자고 얘기한 건 분명 나인데 내가 먼저 눈물이 났다.  



그는 나를 많이 아껴주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너무나 자주 꽃다발을 안겨 주었고, 이른 아침에도 늦은 저녁에도 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기꺼이 날 보러 왔다.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혹시나 불편한  있을까 쓰다듬어 주지 않은 날이 없었고 매일 나를 바래다 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도대체 어디가, 왜, 그렇게 좋은 거냐고 물을 때면 싫은 점이 단 한 개도 없다고 대답해 주었다. 내가 기뻐하는 게 자기의 가장 큰 행복이라서 날 더 웃게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다.

그에 눈에 비친 나는, 사랑스러웠다.      




나는...

사실은 늘 미안했다.      


매번 건네받았던 꽃다발이, 늦은 저녁에도 집 앞까지 바래다주던 그의 정성이, 나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던 그의 모습이, 부담이 됐다.       


처음부터 나는 확신이 없었다.

이별의 후유증 때문인지 그를, 아니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이 아직 없었다. 그는 상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서운함을 얘기하는 날이 많아졌다. 미안해하던 나는 점점 지쳤다.

, 처음엔 바라는 게 없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점점 깊어지는 그의 마음을 느낄 때면 괴로웠다. 그에게 받는 사랑을 그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돌려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그만 끝내자고 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어느 누구도 잘못한 게 없어서 더 슬펐다. 펑펑 울던 나와 다르게 그는 덤덤했다.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가 얼마나 힘들어할지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 순간, 그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울음을 모른 척 했다.



여기가 정말 끝인 걸까.

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사랑하지 않았을까.

나중에 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게 될까.     


답을 알 수 없는 생각들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 그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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