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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 Jan 06. 2016

간절했던 입사, 그리고 지금

회사적 인간 되기 #2

tvN <미생> 중에서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안영이'는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비현실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을 잘해서 상사의 질투를 받는 신입사원 실제로 존재할지 또 그런 신입사원의 기분은 어떨지 상상조차 해보기 습니다.


회사에 갓 입사한 저는 손님 다름없었습니다.  자리 선배님부터 팀장님, 대표님까지도 오며 가며 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적응은 잘하고 있니?’하는 온화한 미소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면 이내 ‘아 얼른 적응해서 일 잘하는 모습으로 회사에 보탬이 되어야지’ 하는 패기가 솟구쳤습니다.


한 달, 두 달, 일을 배워가면서 적응기가 끝나갈 무렵 제 신분은 손님에서 어느새 막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잔뜩 생긴 질문을 받아 줄 바쁜 선배의 타이밍을 호시탐탐 노리게 되었고 성심껏 설명해 주신 대리님의 성의가 고마워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적당히 알아들은 척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출근해서 퇴근, 아니 야근까지 하면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다는 말이 어떤 표현인지를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면 시체처럼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깬 뒤 무언가에 끌려가 듯 샤워를 하고 인상을 찌푸린 채 출근길에 오릅니다. 회사에 도착한 막내는 밝은 얼굴과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또다시 하루를 견뎌 냅니다.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을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지쳐버리다니.. 저질 체력과 정신 모두 겸비한 사람인 것만 같습니다.


한 벌 밖에 없는 정장을 차려입고서는 처음 가는 길에 헤맬까 조마조마하며 이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온 기억이 엊그제처럼 생생합니다. 소리 내서 읽고 외우며 준비한 자기소개도 어렴풋 생각이 납니다.

잔뜩 긴장한 채 앉아서 성격 좋고 일 잘해 보이는 표정으로 면접을 보던 기억도 그대로 있는데, 얼마나 회사를 다녔다고 정신은 벌써 너덜너덜해졌네요.


이 어려운 취업난에서 저를 구제해 주신다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다짐만 기억날 뿐 지금은 ‘회사랑 초면도 아닌데 무슨 초심이야’ 하는 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의욕보다는 조금만 일을 줄여달라는 마음이 커집니다. 이제는 슬슬 눈치를 보며 회식과 워크숍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아직은 초심을 잃지 말자며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보다가도 한 번씩 깨지고 난 뒤면 이 놈의 회사에는 도저히 정을 붙일 수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다른 직장을 찾아보아야 하나 싶다가도, 가끔씩 듣는 ‘잘했네’라는 칭찬 한 마디는 퇴사 방지 백신처럼 온몸에 퍼져 조금만 더 버텨보자며 생각을 고쳐먹 . 1년, 2년 그리고 앞으로도 무사히 회사에서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도 아슬아슬합니다.


한 없이 막막해질 때면 직장인은 누구나 가슴 한편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는 말처럼 나만 힘든 건 아닐 거라고 위로를 해 봅니다. 그리고 대리님을 보며 윗사람 비위는 저렇게 맞추는구나 감탄하고, 과장님의 전화통화를 넘겨 들으며 협의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를 또 배워 갑니다.


사원에서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면 그 꺼내지 않은 사직서가 훈장처럼 빛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진작에 꺼내지 못한 종이 쪼가리만 될까요.


연차가 쌓이면서 언젠가는 너덜너덜해지지 않는 체력과 정신으로 무장한 ‘회사적 인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하지만 푸르른 인생의 봄날을 맞이하기 위한 따뜻한 감성과 반짝이는 눈동자는 잃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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