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적 인간 되기 #5
'꼭 정직원이 되어야지.'
옆 자리 선배님들과 같은 정규직이 되는 것, 인턴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회사를 다니는 목표였습니다.
이 일이 나와 맞는지 그래서 내가 이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와는 별개로 그냥 정사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조금 솔직하게는, 회사로부터 '너는 우리와 함께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라며 거절당하는 통보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불성실하기도 하고 때로는 성질도 부리는 성격이지만 인턴기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상냥한 사람이 되자고 매일 같이 자기 최면을 걸며 출근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을 배워 보려고 질문도 자주 했고, 일을 던져 주는 선배님께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기회 하나하나가 소중했습니다.
회사에서 내내 긴장하고 있는 탓에 업무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만약 정사원이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에 인턴 기간이 끝나는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것도 같았습니다.
가끔 제 긴장을 풀어주려는 선배님들이 가벼운 농담을 던질 때면 장난 섞인 반응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예의 없어 보일까 봐 멋쩍은 웃음만 짓고서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한다고 했어.' 라며 스스로를 조심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같던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인턴사원은 드디어 정규직 사원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잘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했습니다. 함께 축하해주는 같은 팀 선배님들도 고마웠습니다. 누가 회사생활은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라고 했을까요? 앞으로는 더 할 줄 아는 게 많아져서 이 따듯한 회사 선배님들의 업무를 내가 조금이라도 도와드리며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인턴 때는 금지되었던 야근을 실컷 하니 정사원이 된 실감이 났습니다. 그래도 매일 새로운 일을 배우는 성취감에 취해 퇴근길에는 하루하루 더 필요한 직원이 된 것 같은 보람찬 기분도 들었습니다.
스스로를 인턴사원으로 가두지 않아도 되니 선배님들과도 더 가까워졌고 정규직으로 나를 인정해 준 회사가 마냥 좋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인턴이 아니니까 이런 일 쯤은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해."
라는 선배님들의 말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때로는 자극제가 되어 뭐든지 잘 해내고 싶은 열의가 생겼고 더 인정받는 사원이 되고 싶은 욕심도 들게 했습니다.
회사에서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사원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대리님'이라는 호칭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대리님'은 회사에서 조금 더 전문적인 사람 같고 그래서인지 사원보다 존중받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대리님이 될 수 있을까?'
이제 겨우 사원이 되었는데... 여기서 대리가 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상상해보니 아주 멀고도 까마득했습니다. 변덕이 심한 성격 탓에 직장인으로서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무사히 버틸 큰 확신도 없었습니다.
3년 뒤 나는 대리님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사회생활에 치여 다른 길을 택하게 될까.
매일 밤 퇴근길에 똑같은 고민을 여러 번 해 보아도 쉽게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집에 도착해서 씻고 아무 생각 없이 쉬고 나면, 다음 날 아침 또 아무 생각 없이 출근 준비를 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루씩 끝내야 하는 업무는 주어져 있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계획도 목표도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종종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 없이 살고 있었을까요?
어쨌든 당장의 삶에 목표는 있어야 할 듯 하니 일단 대리가 될 때까지는 계속 회사를 다녀 보자고 정해 봅니다. 그리고 내일 해야 할 업무들을 기계적으로 떠올려 보며 잠자리에 듭니다.
정사원만 되면, 아니 취직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과연 내가 원하던 게 이게 맞았을까 하는 찝찝한 고민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