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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 Jung Jan 20. 2021

야생의 섬 - 필리핀 - 카모테스 아일랜드

2019년 봄 필리핀의 세부에서 몇 달을 지냈다. 사람의 심리가 참 이상해서 여행에 준비를 많이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일정이 짧으면 최대한 많은 걸 경험해 보려고 하지만, 일단 일정이 길면 본성이 나오게 된다. 필리핀 세부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았으니 하며 주특기인 어슬렁거리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러다가는 동네만 여행하다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을 찾았다.



세부 인근 지도를 실행시키니 가장 먼저 보홀이 눈에 띄었다. 세부에 오면 가장 한데 묶어서 많이 가는 곳이었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고 또 너무 유명한 관광지여서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세부섬의 동쪽으로 두 개의 붙어 있는 섬이 눈에 띄었다.



'카모테스 아일랜드 (Kapuluan ng Camotes)' 

퍼시잔 섬과 포로 섬을 묶어 이렇게 불렀다. (Pacijan island, Poro island)





조사를 해보니 시티에서 아주 멀지 않고 나름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었다.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시티의 부두에서 가는 방법과 위쪽에 있는 Danao 항구에서 가는 방법이 있었다. 취합한 정보에 의하면 시티에서는 기상에 따라 배가 안뜰 때도 있지만 Danao에서는 매일 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나오에서 가기로 결정했다. 다만 조금 불편한 점은 그곳까지 1~2시간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처음 가보는 곳이고 일반적인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불편한 곳이기에 불확실성을 최대한 제거하고자 시내의 여행사에서 배편을 미리 예약하려고 했다. 동네의 여행사, 백화점 내의 여행사 여러 곳을 방문했지만 시티에서 가는 배는 예약을 할 수 있지만 다나오는 여기서는 예약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약간 불안했지만 직접 부딪혀 보기로 했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숙소는 미리 예약을 하고 최대한 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새벽 5시에 출발했다.

그랩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5시 20분. 처음 가보는 세부의 버스터미널은 그 시간에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어 물어 다나오로 가는 표를 사고 5시 30분에 탑승했다. 새벽의 버스는 서서 가는 승객까지 포함해서 출발했다. 만약을 대비해 버스 요금을 받는 안내군(?)에게 내 목적지를 몇 차례 주지시켰다. 낯선 도시의 낯선 버스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주책맞은 졸음과 싸움을 하는 도중 안내군이 나를 찾았다. 이른 새벽이라 길이 막히지 않아 1시간 만에 다나오에 도착했다. (필리핀의 교통체증은 진짜 심각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혼자만 내렸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모르는 현지인들만 아는 엄청 멋진 곳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지만 빨리 배의 표를 사야 한다는 마음이 궁금증을 날려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항구의 건물을 옆으로 돌아 입구로 향하려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건물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가 가려는 곳이 그렇게 유명한 곳인가? 아니면 매일 사람이 새벽부터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인가?'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줄을 서지 않으면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어질 거라는 생각에 줄이 어디서부터 시작한 건지, 매표소는 어디인지 확인도 못하고 줄에 합류했다.

(결론적으로 그때가 주말과 지방선거가 이어져 마치 연휴처럼 돼서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이다.)



결국 나는 오후 1시의 배에 탑승했다. 중간에 방송을 간간이 해주는데 영어가 아닌 세부말로 해서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 없었고, 또 간혹 암표상처럼 생긴 사람이(신기하게 말 안 해도 그런 건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왔다 갔다 하면서 뭐라 하면 줄에서 몇 명씩 사라져서 항구 건물로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섣불리 행동했다가 그때까지 기다린 시간마저 날아갈 것 같은 불안감에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제 내 앞에 몇 명 없는데도 계속 기다리기만 할 때는 과감히 모험을 선택했다. 관계자 같은 사람이 나와서 무어라 주문(?)을 외우자 옆에 사람들이 새로운 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도 한계심을 느끼고 여기저기 들이밀고 물어봤다.



그들의 답변을 종합해 보면 배 가격이 비싸지만 먼저 태워준다는 것 같아 모험을 하고 그 줄에 다시 섰다. 결론적으로는 비싸게 준 건 맞는 것 같은데 그 이후에 다른 배가 또 와서 결국 큰 차이 없이 기존 줄에 있던 사람들도 배를 탈 수 있었다.




기다리는 내내 어디선가 우렁찬 닭 우는소리가 계속 들려서 찾아보니 누군가가 데려가려고 가방에 넣어둔 닭이 보였다. 안 그래도 마음이 안 편한데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세명이 앉는 좌석 가운데에 필리핀의 젊은 새댁이 양해를 구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앉았다.



섬에 도착하니 픽업 나온 사람들과 호객꾼이 어우러져 정신없었다. 대부분의 지프니(아주 큰 지프차를 개조한 필리핀 대표 교통수단)는 단체여행객들과 흥정 중이었고 내가 예약한 숙소는 제법 거리가 있어서 혼자서는 감당할 수준이 아니란 걸 알아서 오토바이 기사들을 컨택했다. 내가 말한 숙소까지 태워주는데  오토바이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원래의 계획대로 아침 일찍 왔다면 일반적인 교통이 전무한 이곳에서 오토바이를 빌렸을 텐데 이미 하루의 반이 지나가버려 오늘은 숙소 근처만 구경하려고 했다. 그런데 자꾸 오토바이를 렌트하라고 했다. 가격을 들어보니 뒤에 타고 숙소에 가는 비용보다 조금 비쌌다. 거기에 내가 망설이니 오늘 오후는 그냥 타고 계산은 내일 하루치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숙소로 가지러 온다고까지 했다. 그래서 얼떨결에 계획에 없던 오토바이 렌트를 했다.

(숙소에 도착하고서야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대부분 숙소라고 해도 주위에 딱히 뭐가 있는 곳이 없어서 정말 휴양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이동 수단이 필수였다.)



항구 근처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주머니의 핸드폰에 지도를 실행시키고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항구를 벗어나자 바로 야생의 섬 같은 광경이 펼쳐졌고 5분이나 지났나? 내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지랑이가 신기루처럼 피어나는 저 앞의 도로 위로 짙은 구릿빛의 여인이 맨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설마? 하는 내 의심은 현실이 되어갔다. 덥수룩한 머리 스타일에 원주민의 얼굴과 피부를 가진 젊은 여성이 옷을 다 벗고 맨발로 도로 위를 걸어오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어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갔지만 도대체 내가 뭘 본 건지, 내가 어디에 와 있는 건지, 문명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아직도 이런 섬이 존재하는 건지... 정말 내가 야생의 섬에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호텔도 있고 리조트도 있는 곳인데....



결론적으로 숙소에 짐을 놓고 오토바이로 섬을 완전히 한 바퀴 돌며 그녀를 그곳에서 한 번 더 보긴 했는데 그녀 말고는 다른 사람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하필 섬의 처음에 그녀를 보게 되어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완전 야생의 섬이라고 착각했던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약간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두 개의 섬은 다리로 이어져 있다. 숙소는 퍼시잔섬에 잡았고 첫날은 퍼시잔섬을 한 바퀴 돌았고, 둘째 날은 포로섬을 한 바퀴 돌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시계 방향으로 섬 일주를 시작했다. 지도에 몇 군데 보고 싶은 곳을 체크해 놓고 메인 도로에서 갈만한 곳이거나 해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에 가능한 곳 위주로 잠시간 들리며 이동했다. 섬은 아직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곳이고 거주민들도 많지 않아서 마을(?)이라고 할만한 곳은 드문드문 있었고 중간에 아무것도 없는 것도 많았다.



의외로 동굴들이 많았고 관광 포인트 될만한 곳들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다닐 수 있었다. 완주를 하기 위한 길도 단순했고 혹시 포인트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으면 다시 해안가 길로 나오면 돼서 어렵지 않았다.



숙소가 바닷가 앞이라 일몰을 보기 위해 돌아오는 시간을 나름 계산했는데 생각보다는 섬이 크고 길도 안 좋아서 마지막에는 계속 달리기만 했는데도 어두워지고서야 돌아왔다. (이런 곳은 밤이 되면 정말 칠흑같이 어두워지는 곳이라 시간 배분을 잘해야 한다.)








다음날 아침, 전날 새벽부터 고생해서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얼굴이 화끈거려 잠에서 깼다. 숙소에 난 작은 창으로 드는 햇볕이 정확히 침대의 누운 사람의 얼굴을 겨냥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의 마지막에 숙소 돌아오느라 고생한 기억도 있어 차라리 일찍 시작하고 여유 있게 하루를 마감하기로 했다. 그나마 숙소 인근에 작은 마을과 해변이 있어서 저녁을 그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포로섬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동굴이 섬의 오른쪽 끝부분에 있어서 그곳을 먼저 들리려면 그게 더 유리했다.



포로섬은 제법 큰 마을과 시장이 있어 오토바이를 한편에 주차해 놓고 걸어서 구경을 했다. 카모테스에서 유일하게 섬의 역사를 느낄 수 있고 문명(?)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동굴을 들른 후 섬의 북쪽으로 접어들었다. 사실 이쪽은 크게 볼 것이 없어서 지루하게 길을 계속 운전했다. 다만 중간에 주유소가 없어서 길거리에 페트병에 담은 기름을 파는 곳에서 경유인지 휘발유인지 모를 기름을 반 통 사서 주유했다. 기름을 넣는 나도, 기름을 파는 주인도 서로 신기해하면서..



어제의 경험을 교훈 삼아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자고 느지막이 동네로 나갔다. 생각보다는 식당들이 몇 개 있었고 현지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음식을 시키고 콜라를 시키니 작은 사이즈의 음료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물자가 풍족하지 않은 이런 곳에 오면 꼭 더 먹고 싶어지는 법이어서 그러면 콜라 큰 걸로 달라고 하자 그것도 없고 오로지 오렌지 맛만 있다고 했다. 남으면 들고 갈 요량으로 오렌지 맛 로얄(이곳의 환타)을 큰 걸로 시켰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마치 '쟤는 음료수 못 먹어서 한이 되었나? 혼자서 뭐 저리 큰 거를 시켜 먹어?' 라는 듯 쳐다보았다.

'여기 작은 음료수가 다 떨어져서 그런 거라고~~'라고 해명해 주고 싶었다.










섬에 들어오던 날의 고생이 떠올라 마지막 날은 아침을 먹고 바로 항구로 출발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금방 배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부시티로 돌아가는 게 문제였다. 출발할 때는 터미널이 있어서 그곳에서 표를 살수 있었는데 다나오에는 터미널이 없었다. 물어보니 그냥 길가에서 버스 지나가면 잡아타고 가라고 했다.



대충 이쯤이면 된다는 곳에 서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보였다. 물어보니 세부시티에 간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나 좀 같이 데려가 주세요'라고 하니 자기는 지프니를 타고 간다고 했다. 이곳에 있으면서 안전 문제와 내릴 때 잘 못 내릴까 봐 한 번도 도전해 보지 않았던 지프니였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같이 기다리다가 버스가 오면 아주머니가 알려주겠지 하는 마음에 일단 옆에 붙어있었는데 지프니가 먼저 와버렸다. 아주머니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따라오라며 지프니에 나를 태웠다.



서로 길게 마주 보고 앉아가는 지프니에는 이미 사람이 가득 차 있는데 서로 다리를 오므리니 가운데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이 생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때 무언가가 내 엉덩이를 건드렸다. 뒤를 보니 구두 닦을 때 앉을만한 나무로 된 의자를 줬다. 감사하게 의자에 앉았는데 다시 엉덩이를 건드린다.



'이건 셰어하는 거야. 엉덩이 반만 걸쳐~~'



아주머니와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반반씩 걸치고 세부시티로 향했다.




지프니 실내는 요렇게 생겼다.


의자는 요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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