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여행
간만의 서울 나들이.
지하철 3호선이 옥수역을 출발하여 동호대교로 들어선다.
창밖으로 뚝섬에 우뚝 솟아있는 빌딩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2년여를 뚝섬역 인근에 살았었지만 익숙함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새로운 곳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귀에 꽃은 이어폰에서 음악이 바뀌고 기타 전주가 흘러나온다.
갑자기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주인공 독고진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심박수에서 벗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평범하지만은 않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올림픽대로에 차들이 가득 차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이어폰에서는 'Hotel California'의 기타 전주가 끝나가고 있다.
노래의 첫 소절이 시작한다.
'On a dark desert highway..(아재들의 가사로는 '어느덧 대전 하이웨이..'라고..)
순간 심장의 박동수가 올라간 이유가 머릿속에서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음악과 도로가 연상시켜 주는 그곳으로 나는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처럼 타임리프 하기 시작했다.
서기 2000년.
IT 회사에서는 가장 두려워했던 밀레니엄버그가 큰 이슈 없이 지나가서 다행이었던 그해 가을 나와 송선배는 미서부를 달렸었다.
둘 다 외국 여행이 처음이었고, 그나마 나는 한국에서 운전을 조금 했을 때이고 송선배는 면허증만 소유하고 있을 뿐 핸들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외국에서의 운전은 둘 다 경험이 없었다.
그런 우리 왕초보 여행자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올랐는지 (원래 아무것도 모를 때는 오히려 겁이 없게 된다.) 미 서부 환상의 트라이앵글 코스라는 샌프란시스코 -> 라스베가스 -> LA -> 샌프란시스코를 10일간 여행했다.
그것도 렌터카 드라이브 여행으로..
그것도 내비게이션이란 것도 없던 시대에..
그것도 지도 몇 장에 의지한 체..
사실 우리의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팀에서 외국 여행 처음이었던 4명이서 의기투합하여 다달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중 2명이 갑자기 중간에 외국의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실리콘밸리였기 때문에 송별회를 하면서 꼭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굳은 약속을 했다.
두 번째 난관은 휴가 일수에서였다.
추석 연휴를 포함해서 휴가를 2주 신청했더니 팀장과 파트장이 회의실로 바로 소환했다.
팀장 : 내 회사 생활 20년 동안 외국 여행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사원들이 2주나 휴가를 써도 되겠냐?
라는 지금이라면 꼰대 소리 들을 말로 우리의 휴가는 대폭 단축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여서 우리의 일정 대부분은 차 안에서 운전을 하고 지도를 보는 일이 돼버렸다.
그래도 그때는 단지 떠난다는, 처음으로 낯선 나라의 땅을 밟아보고 달려본다는 생각에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출발하는 날 우리는 영등포역에서 만나 지하상가에서 테이프를 하나 샀다.
'최신가요 베스트'
미국을 여행하는 동안 가장 오래 머물 차 안에서 당시의 최신가요를 모두 외우자는 야심찬 계획과 함께...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서 우여곡절 끝에 렌터카를 받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가 빌린 차에는 테이프를 넣을 수 있는 데크가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CD 플레이어만 있었다.
덕분에 알 수 없는 말을 쉴 새 없이 빠르게 떠드는 미국 서부의 라디오 채널만 열심히 듣다가 라스베가스에서 LA로 떠나는 날 아침 우리는 결심했다.
'CD를 사자! 그것도 우리의 여행에 맞게 캘리포니아 노래가 있는 CD로!!'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후 우리가 달릴 루트를 지도로 확인하고 나서 CD 매장으로 향했다.
당시에 '캘리포니아를 여행할 때 들어야 할 노래'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혹시 있었는데 우리가 몰랐을 수도..)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g'이 있던 앨범을 샀다.
우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또 다른 곡인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는 결국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드디어 정체불명의 라디오 방송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우리는 라스베가스에서 LA로 향하는 15번 국도를 달리는 내내 카오디오의 볼륨을 최대한 올려놓고 'California Dreaming'만 반복해서 들었다.
급기야 LA 시내의 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청껏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California Dreaming....'
아마도 그때의 심박수를 책정했다면 아마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들이 마지막씬에서 자동차를 타고 날을 때와 같지 않을까??
그리고 마음 한편에서는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었다.
혹시 다음에 이곳을 다시 오게 되고 다시 달리게 된다면 꼭 'Hotel California' 음악을 가져오리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