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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Y Aug 08. 2020

나는 완벽한 자격지심 덩어리1

자격지심의 시작.

삼촌이 오랜만에 집에 들어왔다

어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심촌의 지갑에서 5천원짜리 한장을 꺼내든다


“지선아 언니랑 슈퍼가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동생은 순진한 얼굴로

“언니 돈 어디서 났어?” 라고 묻는다


“그냥 어디서 주웠어 언니가 초콜렛 사줄께 얼른 가자”


그렇게 동생을 데리고 슈퍼에 가서

동생이 먹고 싶은것을 모조리 사주고

나도 초콜렛을 왕창 사먹고 나면

너무 행복했다


집에 돌아오면

지갑에서 돈이 사라진 걸 알게 된 삼촌과

할머니의 매질이 기다리고 있을지언정...........





아빠는 이른 나이에 엄마를 만나

엄마와의 사이에서 딸만 셋을 낳고

내가 4살쯤 되었을때에 이혼을 하셨다

부모님의 이혼후 우리 세 자매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나는 세 딸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우리 언니는 그냥 첫 손주라는 이유로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했고

나와 동생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늘 할머니의 미움을 받고 살게 되었다


나보다 두살위 언니는

우리와 대화하는것을 싫어했고

아빠는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 오셨는데

나와 동생은

우리 둘 밖에는 의지할곳이 없다고

아주 빠르게 판단을 했던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두살 아래인 동생과

베프가 될수밖에 없었다




아동학대 아동방임

이런것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 이전이었으므로

나와 동생이 할머니께 매를 맞는것은

고모들에게는 그저

할머니의 훈육방식일 뿐이었다


큰식칼의 등부분

고무호수

나무몽둥이

쇠파이프


이런 다양한 도구들을 비롯하여

이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때에는

맨손으로 벽에 내 머리는

시정없이 부딪혔고


할머니에게 맞는것이 일상이었으니

늘 방한켠 구석에

동생과 나란히 앉아

울수밖에 없었는데


소리내어 울면 또 맞을테니....

우린 숨죽여 우는 하루하루를 보낼수밖에 없었다


가까이에 고모가 살았다

고모에게 자녀가 2명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우리집에 놀러를 오셨다


하루는

한살 위인 사촌오빠가 고모를 따라 집에 왔는데

그날도 여전히 나는

할머니에게 맞고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런 내 앞에서

“너는 이런거 못먹지? 나는 엄마가 사줬다~~~”

놀리며 새우깡 한봉지를 까서 먹기 시작했다


“한개줄까?”

“응....”


“메롱~~ 안줄꺼지롱~~~”

내 앞에 새우깡을 가져왔다 도로 본인입에 쏙 집어넣는 사촌오빠가 너무나 얄미워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할퀴고 말았다


사촌오빠가 울음을 터트리니

고모와 할머니가 달려왔고

그날 나는...

사촌오빠의 얼굴을 흉지게 했다는 이유로...

또 한참을..... 맞게 되었다..

그 누구도

내가 오빠를 왜 할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테니 당연히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

‘오빠의 얼굴을 할퀸 나쁜년’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고모에게서 들을수밖에 없었다.....


‘자격지심’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때부터 나는

나에게는 엄마가 없다는 이유와 더불어

세상에서 내 편은 동생 한명뿐이라는 생각과

점점 자격지심 덩어리로...커가고 있었다 ...


그 이후 나는

어른들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도둑질을 한 돈으로 늘

동생의 손을 붙잡고

동생이 먹고 싶은것을 사주는것으로

나의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채우고 있었던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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