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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온 Apr 29. 2023

마흔, 브런치 첫 글을 발행하다

사십 대, 오춘기 VS 오전 11시

2019년부터 블로그에 글을 썼다. 매일글쓰기 리더인 '이틀'님의 권유로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고, 운 좋게 작가로 선정되었다. 브런치는 네이버 블로그와는 다른 느낌으로 퇴고를 여러 차례 걸친 소위 잘 쓰인 글을 발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나에게 좋은 글이란 내 생각이 잘 녹아있고, 전문성이 가미되었으며 누구나 읽기 편하고 읽고 싶어 하는 글이었다. 소위 완벽한 글이다. 완벽한 좋은 글을 발행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5년이라는 공백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마흔이 되었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나만의 색을 담은 완벽한 좋은 글을 발행하고 싶었다. 마음이 닿는 소재가 떠올라 써 내려가다 잊히고, 또다시 쓰다 멈추기를 여러 차례. 이제 첫 글을 발행하려 로그인하니 소개란에는 '회사원', 설명란에는 '초온의 브런치입니다.'라는 짧은 문장만 덩그러니 쓰여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후 첫 글을 발행하면 변경하려고 했던 프로필이다. 5년 전,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회사원이던 나는 '회사원'이라는 작가 키워드를 변경하기 위해 프로필 편집을 클릭했다. 


마흔, 나의 직업은?

프로필 편집을 클릭하니 최대 3개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엄마'를 찾았으나 '엄마'라는 직업은 없었다. 제일 가까운 '주부'라는 단어를 찾았다. '주부'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러 가는 안주인.', '한집안의 제사를 맡아 받는 사람의 아내.'였다. 우리 가정의 살림살이는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꾸려가므로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맞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므로 두 번째 사전적 의미 역시 맞지 않았다. '주부'는 내 직업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지나간다. 다른 직업으로 눈을 돌리니 내가 되고 싶던 직업도 있다. '데이터분석가', '번역가', '교사'. 마흔이 된 지금 선택할 수 없는 직업들도 뒤로 하고 나는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회사원'을 선택한다. 이유는? 에세이스트는 마흔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직업이라서. 프리랜서는 지금 내 일을 하고 있어서. 회사원은 아직 안정적인 틀에 머물고 싶은 단순한 본능에서.


마흔, 나의 직업은 무엇일까? © Brunchstory

직업 선택 후 브런치 작가 신청 때와 같이 작가 소개란을 채워야 한다. 브런치 작가 신청할 때 필수로 작성해야 하는'작가소개서'를 고심해 써내려 간 기억을 끄집어냈다. 정확하지 않지만 오래 고민했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 중에 있는 12년 차 워킹맘이자 두 남매의 엄마입니다. 나만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라고 소개한 듯하다. 5년이 지난 지금. 나의 색을 찾았을까? 찾았다면 아마 브런치 첫 글이 이미 발행되었을 것이다.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을까? 삼십 대에 글을 쓰기 시작해 마흔이 된 '나'는 누구일까? 


여전히 나를 찾는 마흔의 삶을 기록합니다.
회사원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읽고 쓰며 조금씩 그 모습을 닮아갑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지 5년. 안정적이고 완벽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마흔은 5년이라는 긴 시간이 무색하게 아직 흔들린다. 좋은 글, 완벽한 글을 지향했던 삼십 대의 이상과 달리 아직 작가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러울 정도의 부족한 글을 쓰고 있고, 삶은 아직 불완전하다. 더 시간이 지나면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누구나 읽고 싶은 완벽한 브런치 첫 글을 발행할 수 있을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불완전한 글을 꾸준히 써야 하고, 안정적인 삶을 위해 더 도전하고 열정을 쏟아야 하는데, 마흔이 인생의 마지막인양 조급했던 나를 인정한다. 그리고, 여전히 불완전한 삶 위에서 내가 원하는 나를 닮아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글에 담아보기로 한다.


마흔, 브런치 첫 글을 발행하다

내가 기대하던 마흔은 완벽하게 안정적인 이상적 모습이었다. 학습력과 인성을 갖춘 아이들을 바르게 육아하고, 경제적 자유를 반쯤 이루고, 행복하게 일하는 마흔. 실제 나의 마흔은 아이들 학습과 인성 사이를 오가는 훈육에 지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려는 시도는 생각처럼 쉽지 않고, 행복한 일보다 주어진 일을 더 많이 하는 마흔이다. 그래서 더 조급하고 불안한 마흔은 감정을 꾹 눌러 일상을 이어가다 무너지고 다시 이어감을 반복하는 과정이었다.


며칠 전, '마흔 수업'이란 책을 출간한 김미경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백세 시대를 가정한다면 마흔은 오전 11시다.
사십 대 안에 결혼과 육아 경제적인 기틀을
모두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이십 대부터의 선택으로 인해 풀어야 할 문제가 우리의 인생 판 위에 다 펼쳐
사십 대에 그 문제의 반만 풀어도 100점이다.
마흔의 꿈은 책상에서 시작되니 여유를 갖고 마흔을 살아라.
© JTBC 상암동 클라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할까? 멈춰야 할까? 유턴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조급함의 반은 내 삶에 대한 확신과 내가 원하는 내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채워본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답이 없는 문제 위에서 조급해하는 대신 5년간 미뤘던 브런치 첫 글을 발행한다. 아직 인생의 오전이니까. 오후를 바꿀 시간이 충분하니까.




사십 대, 오전 11시

마흔을 맞이한 친구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불안한 감정이 쏟아진다. 회사에 몸담고 있는 여자친구는 언제까지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남자 친구는 승진과 연봉에 대한 어깨가 무겁다. 사업을 하는 친구도 그렇다. 오늘 잘 되어도 내일을 알 수 없고,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하니 휴일도 머릿속은 일로 가득하다. 멀리서 보기에 잘 지내는 듯해도, 속 이야기를 꺼내는 동시에 우리는 불안한 사십 대를 맞이한 동지가 된다. 그리고 오춘기처럼 방황한다. 주어진 틀과 일상에 스스로 갇힌다.


그중 일부는 사십 대를 오전 11시처럼 햇빛이 밝은 시간을 누린다. 육아와 일 사이 틈틈이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한다. 두 번째 라이프를 준비하며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시작한다. 새벽기상으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책을 읽는다. 닮고 싶은 사람과 소통하며 그 꿈의 씨앗을 일상에 심는다. 마흔의 일상은 작은 씨앗이 싹 틔우듯 오전 12시를 향할수록 더 밝아진다.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살아가는 사십 대. 내 친구이자 동료이자 우리 아이 친구의 엄마, 아빠인 사십 대가 주어진 일과에 갇혀 불안한 오춘기가 아닌 특별한 오후를 위한 오전 11시를 활기차게 보내면 좋겠다. 그리고 오후에 마음이 조금 더 넓고 깊어져 비슷한 결의 사람들로 만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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