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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ul 03. 2023

오스트리아 빈 대신 프랑스 비엔느 가기

작지만, 매력적인 도시, 비엔느

 대도시는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물들과 위대한 위인들의 흔적이 즐비해 종종 그곳들을 꼭 가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하지만 작은 도시를 여행하며 우리는 이러한 의무에서 해방된다. 작은 도시의 규모는 도시를 느낄 여유를 선사하고, 조용한 골목들은 도시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게 한다. 전날 파리를 여행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기차 출발 5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전력 질주로 달려 출발 시간 1분을 남기고 기차에 몸을 던져 무사히 탑승했다. 그렇게 프랑스 리옹에서 남쪽으로 30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3만 남짓의 비엔느(Vienne) 여행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비엔느를 여행한다고 할 땐 꼭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오스트리아 빈과 비엔느의 철자가 똑같기 때문에 꼭 ‘프랑스 비엔느’라고 해야 정확한 여행지를 가리킬 수 있다. 같이 여행한 프랑스 친구도 사이트를 헷갈려 여행지 정보를 오스트리아 빈 여행 사이트에서 찾았을 정도이다. 사람들 인식 속에 오스트리아 빈에 가려져 있는 프랑스 비엔느에 간다고 이야기할수록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를 가는 듯해 모험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리옹에서 탄 기차는 출발하기가 무섭게 한 비엔느에 정차했다. 스도쿠를 하는 할머니와 무언가를 빼곡히 쓰는 할아버지를 지나 역에 내렸다. 날씨는 흐렸고 벽엔 1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의 기리는 추모 벽이 있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징집되어 전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차역을 나오자 한 동상이 팔을 벌리고 로터리 가운데 서 있었는데, 두 차례 세계대전 전사자 기념 동상이었다. 동상을 받치고 있는 단에 Corée(한국)이라고 쓰여 있는 걸 발견했다. 인도차이나, 한국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 아마 한국전쟁과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기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한국이란 단어를 만나면서 도시에 들어갔다.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동상과 비엔느에 도착해서  처음 방문한 공원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자, 에메랄드빛 론강이 보였다. 커다란 강줄기를 따라 유람선과 제트보트가 떠다니고 있었다.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생 모리스 대성당(Cathédrale Saint-Maurice)으로 갔다. 비엔느는 2세기부터 그리스도교를 믿는 공동체가 있었고 3세기부터 주교가 있는 도시이기에 대성당과 그 주변 환경은 굉장히 엄숙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당을 올라가는 계단은 곧 있으면 열릴 재즈 페스티벌을 맞아 색소폰을 부는 연주자가 알록달록 그려져 있었다. 화려하고 생기 있는 그림 덕분에 즐겁게 성당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성당의 오래된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용한 내부가 펼쳐졌다. 두꺼운 고목처럼 튼튼하게 성당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들이 인상적이었다. 외부와는 단절된 듯한 고요함을 간직한 11세기부터 건축된 성당은 1119년에 역사상 유일한 비엔느 출신 교황, 갈리스토 2세의 대관식이 이루어진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중세의 강력한 종교 도시였던 비엔느의 대성당도 역시 종교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하고 성상의 목이 잘리고 파괴된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인류가 얼마나 다름을 증오했는지 다시금 느끼며 고요 속에 성당을 구경하니 성당의 문은 저절로 열리고 그 틈으로 나뭇잎과 모래 먼지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공간이 주는 성스러움 때문일까, 이 장면이 마법처럼 느껴졌다. 



재즈 페스티벌 준비로 화려해진 대성당


 일요일의 한적한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자 어느새 중세에서 고대 로마로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그의 세 번째 왕비 리비를 위한 신전이 마주한 것이다. 님(Nîmes)에 있는 로마 신전과 더불어 프랑스의 단 두 개밖에 없는 이 로마 신전은 기원전 20년에서 10년 사이에 지어졌다고 추정한다. 황제의 강력한 지배권과 종교의식을 치르기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은 훼손된 대리석 기둥이 지난 역사의 풍파를 알려주는 듯했다. 2000년 전, 수많은 군중이 몰렸던 이곳엔, 테라스가 설치되어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모여 식사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아서 그런지, 배가 고파져 어느 한 공원에 자리를 잡고 샌드위치를 먹었다. 에너지를 충전한 뒤, 피페 언덕을 올라 고대 로마 극장에 도착했다. 약 1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 제국의 가장 큰 도시 극장 중 하나인 이곳에 들어왔을 때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무더운 날씨로 어떻게 끝까지 올라가냐고 걱정하며 돌로 만들어진 계단식 의자를 하나하나 오르기 시작했다. 자칫 발을 잘못 디뎌 넘어져 굴러 떨어져 역사 속 무명의 일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극장의 맨 꼭대기 자리까지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점점 보이는 도시의 전경으로 두려움과 걱정은 사라지고 더 높이 올라가 확 트인 도시 풍경을 감상하고 싶어졌다. 극장의 세밀한 대리석 조각들을 뒤로하고 피페 언덕 꼭대기로 향했다. 



비엔나에 남아있는 고대 로마의 흔적


 올라가는 길은 가팔랐고 그새 태양과 더 가까워졌는지 햇볕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공동묘지를 지나고 큰 문을 통과하자 비엔느의 전망대인 피페 언덕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때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꼬마 기차도 전망대에 도착했고, 걸어 올라간 우릴 본 기사님은 엄지 척을 날려주셨다. 정상에서 정신없이 부는 바람을 맞으며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눈을 부릅뜨고 도시의 전경을 감상했다. 유선형의 론강이 흐르고 언덕에 둘러싸인 주황 지붕의 도시를 바라보며 언덕을 오르며 소진되었던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었다. 오늘 걸었던 여로를 되짚어보며 한창 론강에서 부는 바람을 맞다가 언덕을 내려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엔느



 의무에서 벗어나 발길 닿는 대로 하루종일 비엔느를 돌아다니면서, 소박하고 작은 도시에 숨겨져 있는 2500년 이상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리옹인 갈리아 로마의 수도였던 루그두눔과 경쟁하며 지중해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인 강력하고 부유했던 도시의 모습과 중세의 경건하고 성스러운 도시의 모습 등 다양한 시간을 부담 없이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작은 도시의 풍부한 맛을 온몸으로 느낀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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