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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Jul 08. 2023

아픈 발로 여행한 중세도시, 카르카손

중세 성을 간직한 남부 도시

 행복한 시간을 보낸 다음 날은 피곤하다. 친구 생일을 맞아 강변에서 맥주와 와인을 마신 뒤, 집에 와 침대에 누우니 자정이 넘어 있었다. 잘 수 있는 시간이 5시간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다행히 동이 트기 전에 눈을 떴고, 비몽사몽 기차를 타러 가니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기차 안에선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눈을 떴을 땐 창밖을 눈에 담고자 노력했는데, 혹시라도 자느라 아름다운 프랑스 남부의 라벤더밭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해바라기밭, 뿔이 긴 검은 소 떼 그리고 붉은 토양 위에 길게 늘어진 포도밭을 발견할 수 있었다. 풍경을 감상하며 로마제국의 와인 교역으로 발전했고, 중세의 융성했던 역사를 품은 카르카손에 가까워졌다.   



 공동묘지 바로 옆에 지어진 카르카손역에 도착했다. 아담한 역을 벗어나니 작은 강이 나왔고 광장의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풍요로운 분위기 속에서 약간 난처함을 느꼈다. 카르카손에 큰 성이 있다는 사실밖에 몰라 발길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관광안내소에 갔다. 지도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자, 지도도 받고 친절한 관광 안내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직원의 남부 억양이 물씬 느껴지는 관광지 설명을 들은 뒤, 시가지로 들어갔다.



처음 마주한 카르카손 시내 모습


 시가지에 들어서자, 건물과 건물 사이에 하얀 긴 천막이 매달려 있었다. 더운 날씨에 그늘을 만들어 준 그들의 센스에 감동하며 성을 찾아 도시를 이리저리 휘졌고 다녔다.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의 여유로운 걸음걸이와 천천히 달리는 차들을 보며 조급함과 강박으로 팽팽해진 마음은 저절로 더운 날씨에 늘어난 전선처럼 여유로워지는 듯했다. 알록달록한 건물에 붙어있는 오래된 나무 창문들을 구경하며 카르카손 성으로 향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카르카손 시내


 언덕 위에 지어진 커다란 성에 가기 위해 오래된 다리를 건너고 언덕을 올랐다. 성까지 가는 여정이 길지 않았지만, 전날부터 약간의 통증이 있었던 나의 평평한 발은 점점 더 아파졌다. 성문이 활짝 열렸지만, 부상으로 입성하지 못하는 기사처럼 성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탄산음료와 납작해진 빵오쇼콜라를 먹었다. 성을 보며 과연 대포를 맞아도 버틸 정도로 튼튼한가, 성벽이 너무 낮은 건 아닌가 생각하며 이 도시가 어떤 전쟁을 겪었는지 궁금해졌다. 오늘날 카르카손의 모습은 13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13세기까지만 보더라도 이 도시는 서고트족의 침입을 받아 점령되었고, 그다음엔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 그리고 프랑크족의 공격을 받았다. 또한 13세기 초, 프랑스 남부의 알비, 발다랑, 툴르즈, 카르카손, 이 네 지역의 교회가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카타리파를 받아드려 교황 인노센트 3세가 파견한 십자군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발의 통증이 완화되자 오드강 우안에 위치한 중세의 성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점심과 멀리 보이는 카르카손 성



 성안으로 들어가자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맞닥뜨렸다. 들어가기 전까진 성의 군사적인 측면만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가니 마을이 펼쳐진 것이었다. 기념품 가게를 지나 성의 외벽을 따라 걸었다. 화살과 대포를 쏘던 총안구에 머리를 집어넣고 사수들이 어떤 환경에서 싸웠는지 상상해 보았다. 도시 전경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주황색과 갈색을 띠는 기와로 덮인 집들, 멀리 보이는 성당의 종탑 그리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마치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참 걸으니 다시 발이 아파졌고 성당에 들어가서 의자에 잠시 앉아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성당은 생 나제르와 생 셀스 바실리카(basilique Saint-Nazaire-et-Saint-Celse de Carcassonne)였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사람을 압도하지 않은 적당한 크기의 성당 내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회색 돌로 지어진 엄숙한 분위기의 성당은 수많은 관광객에 점령당했지만, 건물에서 뿜어 나오는 엄숙한 분위기는 몸과 마음이 차분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성당을 구경하며 오래된 성물을 보며 얼마나 이 성당이 긴 시간을 견뎌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잘 섞여 있는 이 성당은 1096년에 이 지역의 영주 가문인 트랑카벨 가의 명령으로 지어졌다. 성당에서 나와 당시 중세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전시장으로 갔다.


성 안에 위치한 바실리카


 전시장에서 중세 시대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장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자 해설자분이 프랑스어 할 줄 아냐고 하시면서 중세 시대를 알려주기 시작하셨다. ‘영아사망률이 높아서 7살이 되어야 세례를 받았다는 점, 땅 밑에서 자라는 당근 같은 식물은 사람이 먹지 않았다는 점, 가축을 죽이지 않고 사냥으로 고기를 먹었다는 점, 빨간 글씨를 쓸 때는 소피를 이용했다는 점, 르네상스 시대와는 다르게 중세 귀족들은 하루에 5~6번 목욕을 했다는 점 등을 설명해 주셨다. 외국인인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할까 봐 말이 빠르면 이야기해 달라는 친절함이 곁들여진 설명에 유럽에 감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를 엿볼 수 있었다. 철사를 꿰어 만든 갑옷도 직접 들어보기도 했다. 대장간 컨셉인 곳을 지키고 계신 아저씨가 몇 킬로 같냐고 물어보셔서 « 한 30킬로쯤 될 것 같아요.»라고 비행기 타기 전 캐리어 무게를 가늠해 본 짬으로 당당히 무게를 예상했다. «12~15킬로쯤 돼요.» 뻘쭘한 마음을 «그 무게치곤 무거운데요. »라며 만회해 보려고 했다. 성을 천천히 활보한 뒤에 성을 나와 라 바스티드 생 루이(la bastide Saint Louis) 지역으로 갔다.


유럽에 감자가 없었던 시대의 모습


 라 바스티드 생 루이 지역은 차분하고 조용한 지역이지만, 이곳은 피의 역사 위에 세워진 곳이다. 카르카손의 카타리파를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십자군으로 카르카손의 지배권은 트랑카벨 가문에서 프랑스 왕실로 넘어간다. 1240년 레몽 베르나르 트랑카벨이 자기 가문의 영토를 되찾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프랑스 왕이 이 반란을 보복하려고 카르카손 주민들이 기존에 살던 거주지를 파괴해서 오드강(Aude)의 좌안에 생긴 새로운 마을이 바로 라 바스티드 생 루이이다. 이곳의 양쪽엔 생 미셸 대성당(Cathédrale Saint Michel)과 생 방상 성당(Eglise Saint Vincent )이 있다. 카르카손을 떠나기 전에 이곳들을 방문했는데 사실 다른 지역의 성당에 비해 구경할 게 많이 없어서 한번 둘러보고 나왔다. 오히려 다양한 모양과 표정의 석루조들이 눈길을 더 끌었다. 하지만 이 성당들의 간단한 건축양식 소위 툴루즈 고딕양식, 남부 프랑스 고딕 양식은 카르카손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카타리파들이 화려한 성당을 비판하자, 십자군으로 해당 지역의 카타리파 귀족을 제거한 가톨릭 교회는 주민들의 신앙을 되돌리고 자신의 영향력을 다시 공고히 하고자 종교재판을 여는 동시에, 이 지역에서 짓는 성당을 화려한 장식을 뺀 고딕양식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성당 구경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화려하지 않은 카르카손의 성당


 기차역을 가면서 물을 사기 위해 슈퍼가 있는지 주변을 살폈다. 중세도시를 여행하며 구글맵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 골목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물을 살 슈퍼를 찾지 못했다. 구글 맵을 켜는 순간 슈퍼가 지척에 즐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문명의 이기의 달콤함과 함께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끈질기게 달라붙는 파리와 사투를 벌인 끝에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에 탄 지 얼마 지났을까, 창밖엔 바다가 펼쳐졌다. 여행하면서 카르카손의 여유가 그새 스며들었는지 기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바다를 보고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기차는 아침에 기차를 탔던 역에 도착했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집에 뛰어 들어가며 아픈 발로 천천히 걸어서 한 카르카손 여행이 끝이 났다.


성벽에서 본 카르카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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