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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Aug 01. 2023

천국에서 소매치기당하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

 매일 가는 카페에 오는 사람들이 바캉스를 떠나면서 널널해진 카페를 하루 떠나기로 했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있진 않았고 아름다운 해변에 누워 잠자거나 책을 읽다가, 그러다 너무 더우면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렇게 고른 장소는 아름다운 곡선의 해변이 있는 빌프랑슈 쉬르 메르(Villefranche-sur-Mer)였다. 모나코와 니스 사이에 위치한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한 여정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새벽 4시 반에 눈을 떠, 6시 5분에 기차를 타고 그 안에 5시간을 머물러야 했다. 니스에 도착해서 끼니를 때울 빵과 음료를 산 뒤, 다시 발 디딜 틈 없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10분간, 전 세계에서 프랑스 남부의 매력을 탐닉하고자 온 관광객들과 뒤섞여 빌프랑슈 쉬르 메르로 실려 갔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 역

 작고 허름한 역에 내려 몇 걸음 걷자 긴 해변이 펼쳐졌다. 크루즈를 비롯한 다양한 배가 정박해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일광욕하고 파라솔 아래에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과 바위에 올라가 다이빙하고 아이들이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은 비현실적으로 파란 바다 위에 부서져 반짝였다. 지중해가 펼쳐진 뜨거운 천국에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몸에 수건을 두르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발을 뚫어버릴 듯한 자갈을 견디고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차가운 바닷물에 더위는 눈 녹듯이 사라졌고 수영 연습을 했는데, 물이 맑아 발 버둥대는 하반신이 그대로 보였다. 물속이 훤히 보인다고 착각한 채 친구가 가져온 수경을 쓰고 바닷속을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바다에 들여놓자마자 물밖에선 보지 못한 손바닥만 한 물고기들이 꽤 많이 보였다. 스노클링과 수영 연습을 번갈아 하다 배고프면 콜라와 빵오쇼콜라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와 함께 바다에서 한 여름의 더위와 차가운 지중해 바다를 만끽하고 있을 때, 친구는 비명을 질렀다. “악, 나 뭐에 찔린 거 같아.” 곧장 수경을 끼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피가 흐르진 않았다. 하지만 친구 다리 주위에 작고 투명한 해파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 너 해파리에 쏘인 거 같아.”


바위 위에서 다이빙하는 아이들


 해파리에 쏘인 친구를 물 밖으로 데리고 갔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에게 사람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젤리피쉬(해파리)”라고 외치며 사건의 원인을 밝히자, 퀘벡 출신으로 추정되는 한 분이 모래로 상처 부위를 살살 문지르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인터넷으로 해파리 대처법을 찾아보았는데 대처법보다는 결과가 눈길을 끌었다. 호흡곤란, 사망, 오한 등등. 걱정을 한가득 앉고 근처에 있는 구조요원들에게 찾아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이 정도면 별거 아니야. 모래로 살살 문질러. 그래도 심하면 약 바르면 나아.” 다시 바다로 돌아가 쏘인 부위를 모래로 문지르며 해파리가 쏜 촉수를 제거했다. 해변에 있는 많은 방문객은 자신이 아는 모든 응급처치 요법을 알려주었다. 그사이 한 청년이 또 해파리에게 물렸고 그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어떻게 대처했는지 물어보았다. 시간이 지나가 친구의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이제 바다에 들어가기 무서워졌다. 모래사장에 누워 살을 익히며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해변

 해변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냈고 전망대에서 빌프랑슈 쉬르 메르를 관망하러 갔다. 땀을 흘리며 심한 경사를 오르며 담장을 가득 채운 붉은 꽃들과 점점 탁 트이는 풍경을 에너지 삼아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옷이 땀에 젖기 시작하자 차도 옆에 위치한 전망대에 도착했다. 산 위에 지어진 집들, 태양과 바다를 만끽하는 사람들, 광활한 지중해 그 위에 떠 있는 많은 배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 그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해안가를 따라 놓인 철길로 기차가 들어왔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내려왔다.



 기차 시간이 다가오자, 역에 점점 많은 사람이 모였다. 기차가 도착하자 이미 승객으로 가득 찬 기차에 인파가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차에 들어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을 때, 어떤 분이 나를 가리키면서 땅에서 주웠다며 활짝 열린 내 지갑을 건네주었다. 기차를 타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지갑 안엔 집 열쇠, 교통카드, 학생증, 그리고 150원 상당에 해당하는 현금만 들어있었고, 소매치기가 내 빠듯한 경제 상황을 느꼈는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 천국과도 같은 이곳을 떠나면서 소매치기를 당했지만,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싹하면서도 마음이 놓이는 사건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어 핸드폰과 지갑을 움켜쥔 채 니스에 도착해 집에 가는 기차를 탔다.


 여행을 한 다음 날, 트램을 기다리며 지나가는 차와 사람 등 일상의 풍경을 멍하게 바라보며 어제와 오늘 사이의 놓인 커다란 이질감을 발견했다. 어제 실제로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는지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잠시 아름다운 꿈을 꾼 듯한 착각은 빌프랑슈 쉬르 메르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는지를 상기했다. 천국은 해파리와 소매치기가 없는 곳이 아니라 해파리에 쏘이고 소매치기를 당해도 즐거운 곳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며 일상에서 여행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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