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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Sep 04. 2023

축알못의 첫 직관, 파리 생제르맹 vs 올림피크 리옹


 움직이지 않는 트램이 유니폼과 응원 도구를 든 사람들로 서서히 채워졌다. 승객들로 가득 차자 트램은 출발했고 올림피크 리옹 축구팀의 홈 경기장인 그루파마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경기장엔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폭죽들이 터졌다. 짐과 표를 검사를 마치고 좌석을 찾으면서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파리 생제르맹을 응원할 것인가, 올림피크 리옹을 응원할 것인가.’ 우리나라 이강인 선수가 소속해 있는 파리와 지금 살고 있는 리옹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오늘 경기에 이강인 선수가 출전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또 친구가 가져온 올림피크 리옹의 머플러를 보고 리옹을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체성을 선택한 뒤,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구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계단을 한참 올라 59186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에 들어갔다.



그루파마 스타디움



 한참 헤맨 후에 자리를 찾을 수 있었는데 앉자마자 멍해졌다. 경기장 양옆 골대 뒤에 위치한 응원단의 엄청난 응원은 처음 축구 직관에 나선 나의 정신을 쏙 빼놓기 충분했다. 얼마나 응원이 격렬한지 많은 응원단원은 웃통을 벗고 있었다. 스파르타 군대가 자기편을 응원하듯 치열하고 열렬하게 자기 팀을 지지하고 있었다. 종교와 국적은 바꿀 수 있지만, 응원하는 축구팀은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선수들이 몸을 다 풀자 올림피크 리옹의 마스코트인 빨간 사자가 경기장에 나왔고, 곧이어 폭죽이 터지고 선수들이 입장했다. 선수들이 입장하자 리옹 팬들은 자리에 비치된 빨간 종이를 들고 자기 팀을 응원했다. 이 빨간 종이는 리옹이 경기에서 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심판의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경기력이 실망스럽거나 리옹 팬들 사이에서 승리를 만끽하는 파리 팬을 응징하기 위해 구겨서 던지거나 비행기를 접어 날렸다. 몇 줄 앞에 앉은 파리 팬은 날아오는 수많은 종이 뭉치에도 불구하고 맥주를 들어 올리고 춤을 추며 생제르맹의 선전을 만끽했다. 전반전은 4대 0으로 끝났다. 


경기 중인 올림피크 리옹 홈경기장



 바로 옆자리엔 올림피크 리옹 유니폼을 입은 8살 꼬마가 축구를 보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나자, 아이의 아빠는 2분만 부탁한다며 아이를 나에게  맡기셨다. 축구를 온몸으로 즐기는 모습이 퍽 귀여웠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편 응원하고 있어?”라는 질문에 파리 생제르맹을 응원한다고 했다. 경기 중에 음바페의 팔짱 끼는 세레모니를 종종 따라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는 내게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하자 위쪽에서 왔는지 아래쪽에서 왔는지 물었다. 파리 팬인 아이에게 이강인 선수를 아냐고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하며, 자신은 한국 선수를 두 명 안다고 했다.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를. 우리의 대화는 다른 모든 대화와 마찬가지로 서로가 하는 말을 부분적으로 이해한 채 흘러갔다. 아이는 내게 다른 질문을 했다. “혹시 옆에 있는 사람 엄마예요?” 작년 11월에 육군으로 의무복무를 마친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올해 들어본 가장 참신한 질문에 한참을 웃으며 머리는 길지만 남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마침내 아빠는 돌아오셨고 아이를 봐주어서 고맙다며 물을 건네주셨다. 목을 축이며 후반전을 관람했다. 




 4대 0으로 지고 있는 팀의 응원단은 거의 주술사로 변했다. 상대편이 기회를 잡을 땐 야유하고 우리 편이 잘하고 있을 땐 미친 듯이 응원가를 불러댔다. 여러 사람이 한 번에 울부짖는 응원가는 프랑스어 자격증 시험의 듣기 평가보다 알아듣기 더 어려웠다. 응원단의 주술이 통했는지 후반전에 리옹은 드디어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넣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바꾸긴 역부족했고 경기는 4대 1로 끝났다. 인파는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한참을 걸어 트램을 탈 수 있었다. 트램 안엔 소매치기가 같이 타고 있었는데, 소매치기를 시도한 것이 탄로 나 승객들이 나가라고 소리치며 소매치기를 쫓아냈다. 늦은 시간 집에 도착해 침대에 쓰러졌다. 처음으로 축구를 직관하며 엄청난 응원과 수많은 관객으로 기가 빠졌지만, 음바페도 보고 경기장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신기하고 흥미진진했다. 옆자리에서 함께 축구를 보았던 아이와 했던 흥미로운 대화를 떠올리며 하루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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