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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ino Sep 07. 2023

부르부르 떨리는 루브르 박물관

 어디든 떠나고 싶지만,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어디 갈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방랑의 욕구와 넓고 다양한 세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가 파리로 놀러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이 온 며칠 후, 파리에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미 동이 텄지만, 기차역 뒤엔 커다랗고 하얀 달이 떠 있었다. 달이 햇볕에 사라질 때쯤 15분 연착한 기차가 역에 들어왔다. 친구의 계획에 따라 18000평의 크기를 자랑하고 33,000개 이상의 작품을 전시한 루브르 박물관에 갈 예정이었다. 기차에서 루브르 박물관 역사를 다룬 영상을 보다 곯아떨어졌다.


 파리 리옹역에 도착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과 방금 도착한 사람이 뒤엉켜 있는 복잡한 역을 지나 지하철을 타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갔다. 리옹역과 루브르 박물관을 잇는 두 지하철역에선 한국어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매치기가 많으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자신의 물건을 훔칠 수도 있다는 걱정과 불안은 어쩌면 약탈 문화재가 가득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에 경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 투명한 피라미드 아래로 들어왔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은 화려한 문화 뒤에 가려있는 고통스럽고 어두운 식민 지배와 문화재 약탈에 대한 비판과 한 공간에서 여러 시대와 장소의 문화재를 볼 수 있는 편의성이 함께 떠올라 관람자를 괴롭혔다. 그렇게 루브르박물관 관람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그리스 조각상을 마주했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신체를 가진 조각상들을 보다가 한 작품 앞에 멈추어 섰다. 분명히 대리석 조각상인데 옷의 실루엣이 보였다. 돌로 옷의 질감을 표현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밀로의 비너스상도 볼 수 있었는데 두 팔이 없고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스 밀로 섬에서 발견된 이 동상이 프랑스로 들어왔을 땐, 이 작품이 어떤 신을 묘사하고 있는지 불분명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 신상은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로 어떤 신을 구현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데 두 팔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후보는 바다의 여신인 앙피트리테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였다고 한다. 동상에 남아있는 보석의 흔적과 추후에 발견된 사과를 든 팔을 미루어 볼 때 이 동상이 아프로디테라는데 입을 모았다고 한다. 이상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던 그리스인들의 노력을 관상한 뒤, 모나리자를 보러 갔다.





 루브르 박물관엔 가장 인기가 많은 3대 여성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 사모트라케의 니케이다. 단연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모나리자 앞이다. 1503년에서 1506년 사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의뢰가 들어온 초상화로, 완성된 그림은 의뢰자가 아닌 자신의 궁정으로 다빈치를 초대한 프랑수아 1세의 소유가 되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신성하다는 프랑스 왕의 찬사를 받으며 프랑스 소장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그림이 유명해진 결정적인 사건은 1911년 이탈리아 노동자가 일으킨 모나리자 도난 사건 때문이었다. 모나리자 앞에 운집한 관람객들을 뚫고 점점 그림에 다가가며 나는 이 그림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싶은지, 작품의 유명세 때문에 작품을 보고 싶어서 이 분투를 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프랑스 회화작품을 감상하다가 7월 혁명을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만났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들라크루아는 혁명 이전의 구체제로 돌아가려는 샤를 10세를 대항해 일어난 영광의 3일 중 두 번째 날 파리에 설치된 4,000개의 바리케이드 중 하나를 그렸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탑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고 다양한 계층의 민중들과 함께 삼색기와 총을 든 자유의 여신은 바리케이드를 넘고 있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위험하고 더럽고 폭력적인 과정을 다양한 계층의 민중과 강인한 여신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프랑수아 1세의 초상화를 보러 피라미드 건너편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물어물어 간신히 도착한 리슐리외 관에선 결국 프랑수아 1세의 초상화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4시간을 박물관에서 보낸 지라 이제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픈 발바닥과 점점 힘을 잃어 부르부르 떨릴 듯한 다리와 함께 프랑수아 1세는 다음을 기약하고 출구를 찾아 헤맸다. 길을 묻고 잃는 과정을 반복하다 스핑크스를 만나고 나서야 박물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루브르를 돌아보며 작품 하나하나도 아름답지만, 작품을 담고 있는 공간과 개별 작품이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1190년에 처음 지어진 루브르 성은 1364년에 왕의 거처가 되고, 수많은 왕을 거치면서 모습이 다변했다.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로 대중의 예술 향유를 위해 개방된 루브르 박물관에서 프랑스 역사의 변화와 문화제국주의,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을 탐닉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기진맥진해진 몸을 이끌고 오랜만에 달팽이 요리와 오리 스테이크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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