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난 하루의 조용한 진동

나의 공황 일기

by 권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던 날이었다.


그러다 문득 맑던 공기가 낯선 무게를 얻기 시작했다. 바람은 길을 잃고, 빛은 스스로의 온도를 잃은 채 눈앞에서 일렁였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소리는 먼 산처럼 멀어지고, 나는 서 있는 자리에 그대로인데 세상이 나를 비켜 도는 것만 같았다.

넓어야 할 공간은 이유 없이 좁아졌고, 벽은 아주 천천히 안쪽으로 접혀 들어왔다. 익숙했던 방이 낯선 구조로 바뀌는 동안, 내 그림자는 나보다 먼저 떨림을 알아차렸다. 몸이라는 집이 잠시 나를 들여놓지 않는 순간, 손끝은 내 곁을 떠나 흩어졌고 호흡은 마치 나를 두고 혼자 움직였다.


가슴속 어딘가에서는 작은 기계가 갑자기 과열되듯 요란하게 돌아갔다. 때론 심장이 짐승처럼 날뛰며, 내 안의 숲이 순간적으로 불길을 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나만 시간을 잃어버린 듯 시간은 금이 간 유리처럼 찢어지고, 나는 나에게서 아주 조금씩 멀어졌다.


하지만 모든 흔들림이 그렇듯, 이 순간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벽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바람이 방향을 되찾고, 흩어졌던 감각들이 서서히 몸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제야 나는 안다.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흔들림이 있다는 것을. 어쩌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작은 균열이 이렇게 조용한 파동으로 지나갔다는 것을.


이 글은 그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아니, 기록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세해서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가벼운 흔들림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그 순간의 숨을 기억하고 싶다. 공기가 무게를 얻고, 세상이 나를 비켜 돌던 그 짧은 틈을. 언젠가 또다시 흔들리는 날을 위해 나를 다시 들여놓을 수 있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고작 몇개월이었나. 아니면 고작 1여년이었나. 소란스러움이 일상의 소음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일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결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공기 속에 아주 미세한 잡음이 생겼다. 처음엔 늘 있는 업무 소음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불협화음에 가까웠다.


새로 들어온 팀원은 나보다 연배가 높았고, 경험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그 경험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거칠고 무심했다. 맡은 일을 제때 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을 말할 때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었다. 나는 말로 달래기도 하고, 부드럽게 조율하기도 하며, 때로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같은 패턴이었다. 태도는 고쳐지지 않았고, 잦은 실수는 결국 나를 다시 뒤로 끌어당겼다.


그와의 작업은 늘 어딘가 틀어진 상태로 시작해 한참을 돌아서야 끝났다. 마치 잘못 조율된 악기처럼, 어느 음만 유독 기어이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그 소리는 회의 자리에서도, 업무 전달에서도, 심지어 아무 말 없는 오후의 사무실 한가운데에서도 묵직하게 이어졌다.


나는 계속해서 맞춰보려 했다. 팀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서로의 빈틈을 채워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얇은 종이를 겹겹이 쌓아도 결국 한 번의 진동에 쉽게 흔들리듯, 나 역시 매일 조금씩 비틀렸다. 하루하루는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안쪽에서는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 균열은 소리 없이 깊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출근길에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야 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기를 바라면서, 오늘만큼은 그 잡음이 없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소망은 늘 조용히 빗겨갔다. 작은 실수가 또 반복되고, 내가 예상한 대로 일이 굴러가지 않을 때면 가슴 안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처음엔 금방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내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넓혀갔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숨이 짧아지고 있었다. 어떤 날은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가 밀려오고, 어떤 날은 눈앞의 할 일이 갑자기 먼 산처럼 멀게 느껴졌다. 몸이 먼저 균열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나는 그저 버티는 중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미 무너지는 쪽에 가까웠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정상처럼 굴리고 있었지만, 그 뒤편에서는 보이지 않는 파문이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그 파문은 결국 어느 날 아주 작은 자극 하나에 예고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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