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나의 공황 일기

by 권씀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사실 공황이 처음은 아니다. 10여 년 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던 때였다. 학원 수강생이 본인이 우산을 잃어버렸는데 책임 소재를 물어보며 나를 궁지에 몰던 그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고작 '직원'이었던 난 경찰 입회 하에 CCTV를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 상대는 그 우산이 누군가에게 빌린 비싼 우산이니 어떻게든 찾아내놓으라는 입장. 그렇게 대립을 하면서 지친 기색을 내비친 탓이었을까. 상대는 사정없이 나를 물어뜯었고, 그렇게 공황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나름 마음도 다지고 초연한 듯 살면 되겠거니 하면서 10년이 흘렀고, 나름대로는 괜찮은 회사에 다니면서 하루하루 발전해 나가는 나 자신을 다독이며 그렇게 지내왔다. 약간의 소란은 있었지만 그냥저냥 넘어갈 정도의 소란들. 하지만 그 소란이 쌓이는 건 줄은 몰랐다. 이번은 경험으로 여기자. 이번은 또 하나의 저변 확대라 생각하자. 다독임도 채근도 아닌 애매모호한 말들로 내가 내 자신을 서서히 밀어냈던 걸지도 모른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제법 긴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충분히 단단해졌다고 믿었다. 웬만한 일로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몸은 그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평소처럼 일을 하던 그날. 올해 입사한 직원의 업무 능률이 너무 뒤처져서 재차 업무 지시를 하고 틀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왜 같은 부분을 틀리는지 이 부분은 매번 이야기를 하던 부분이지 않냐는 나의 말에 그 직원의 반응이 너무 놀라웠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왜 다그치기만 하냐. 왜 친절히 알려주지 않냐. 당신의 기대치가 높은 것 아니냐. 팀장이 왜 팀원을 못 기다려주냐. 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등등의 두서없는 말들. 그게 입사한 지 4개월을 넘어가는 직원의 항변이었다.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글자가 흐려지고, 가슴 안쪽에서 묵직한 압력이 올라왔다. 숨은 예전처럼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손끝 떨림이 좀처럼 멎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별일 아니다”라는 말이 반복되는데, 몸은 전혀 다른 반응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정신과에 찾아갔다. 잠시 기다린 후 마주한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런저런 증상이 있고 매일 밤 잠들면서 이대로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일종의 고해성사.


"최근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것들이 있나요?"

이 질문에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적잖게 들어왔던 말 "너만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어느 회사든 마찬가지야." 나도 알고 있다. 그 말이 맞다는 걸. 다만 지금의 나는 너무 지쳐있고 회사에서는 비전공자에다 연령대가 너무 높은 사람을 내 팀원으로 뽑아 놓고 내가 이끌고 가야 하는 게 문제일 뿐.




그날 이후 나는 사소한 징후에도 스스로를 점검하게 됐다.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진 않는지, 호흡이 갑자기 가빠지진 않는지, 이유 없이 목덜미가 뜨거워지진 않는지. 마음이 무너지는 일은 대단한 사건 때문이라기보다, 오래된 균열이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임을 조금씩 이해해 갔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냥 버티기’로 넘어가는 것이 맞는 걸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굴리는 방식이 정말 나를 위한 방법이 맞는가. 그 질문은 며칠이고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출근길에서도 점심시간 혼자 앉아 있을 때도 잠들기 전 불을 끄고 누워 있을 때도. 나는 같은 질문을 계속 되뇌었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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