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친구 여러분. 수지입니다.
이번 8월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편지를 쓸지 말지요. 디렉팅 하고 있는 전교인 수련회 일자가 다가오니 마음이 촉박해져서 말입니다. 그런데 촉박하다가도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힘은 결국 지난 한 달을 회고하며 감사했던 일들을 발견하는데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편지의 서두를 쓰는 시점은 8월 28일 월요일 점심시간 입니다만, 이 편지가 언제 완성되어 여러분께 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곳저곳에 "저 오늘 셔터 내려요-!"라고 말해버렸기 때문에 완성하는 데만 해도 수일이 걸릴 수도 있고요. 확 꽂혀서 한방에 써 내려갈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8월에도 편지를 전하게 되어 기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하.
처서가 지나고 나서 제법 날씨가 선선해졌습니다. 8월 한 달 어떻게 지내셨나요?
https://brunch.co.kr/@suuuuuuzy/50
7월의 편지 말미에 8월이 얼마나 바쁠지 예견하는 글을 썼습니다. 네, 매우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하하.
회사에서는 옮긴 지점의 멤버들과 손발이 잘 맞아져 가고 있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느끼고 있습니다. 팀워크를 중시 여기는 저로서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팀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퇴근 후 출근하는 일상을 보낸 지도 한 달이 넘었습니다. 이제 막 2주도 남지 않은 300명 규모의 2박 3일 행사를 디렉팅 한다는 건 제가 예상한 것보다 많은 커뮤니케이션과 변수에 적응해야 하는 일었습니다만, 놀랍게도 아직까지는 지치지 않았습니다. 이럴 일을 대비해서 그동안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어서 체력관리를 했나 봐요. 대신 아직 여행 계획은 제대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여권 재발급을 이제야 마쳤거든요. 저, 끄라비 잘 다녀올 수 있을까요?
저에게 2023년 8월을 묻는다면, 단연 "수련회 준비"로 기획될 것입니다. 처음에 무심코 발을 담그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커질지는 예상 못했습니다. 하다 보니까 이렇게 커진거죠. 이 일의 첫 단추는 커리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사회에 진출한 이후로는 항상 이직의 시기마다 마케팅 분야로의 점프를 시도했었어요. 마케팅도 카테고리가 워낙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콘텐츠'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봐오신 분들은 제가 얼마나 콘텐츠에 진심인지 아실 텐데요. (제가 SNS와 트렌드에 빠르고 민감하다는 것을) 그런데 번번이 필드를 바꾸는 일에는 실패를 했습니다. 그래서 '마케팅에 더 디깅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찰나에 이 일을 만나게 된 것이죠. 마치 운명처럼요.
[수련회 준비를 하면서 배운 점들]
1. 리더는 교통정리를 잘해야 한다.
2. 각 파트원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3. 의견을 잘 받아들이고 정확한 피드백을 하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4. 데드라인이 생명이다.
등등 나열하려면 끝도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다 맞다고 할 순 없겠죠. 지금 진행하고 있는 환경에서는 각자 일하는 환경과 연차가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세세하게 매니징하는 것을 안하려고 했었는데 결국엔 들여다보는 게 핵심이었고요. 그렇지만 먼 훗날에는 결국 알아서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언젠가 저도 제가 속한 회사나 공동체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게 되지 않을까요?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어른 리더들을 만나고 또 직접 부딪히기도 하면서 미리 연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제일 감사한 것은, 제가 '운영, 기획' 일에 꽤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미 쌓아온 경력을 무시할 수 없나 봅니다. 무언가를 기획하고 운영할 때 생길 수 있는 변수를 떠올리고 그것에 대한 대처를 구성하는 일에는 머리가 번뜩인다는 점 때문입니다.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점을 생각해내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이상 그렇게 추구하던 '마케팅'에는 미련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 이미 큰 짐을 하나 덜어냈달까요. 참 다행이고 오히려 좋아요. (물론 '마케팅' 안에 '운영/기획' 파트가 모두 포함되기는 합니다만.)
제가 누군가에게 "우린 모두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 이미지를 보내주었을 때, 그 누군가는 coldplay의 'o'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음악에 빠져 지금까지도 그 음악만 무한재생하고 있습니다.
콜드플레이 매우 좋아하는데요. 일전에 보냈던 편지에도 "coldplay_fix you"를 공유했을 만큼이 나요. 크리스마틴의 라이브 영상은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위안을 줍니다. 크리스마틴(보컬)이 기네스 펠트로(전 부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위로하기 위해 만든 음악으로 유명하죠. 그래서인지 그 가사를 주욱 내려 읽다 보면 그냥 치유가 되는 느낌이에요. (가사는 알아서 찾아보세요!) 그렇게 생각하면, 콜드플레이의 음악은 정말 종교 같습니다. 반주와 목소리 만으로 그냥 치유해 버리는. 제가 한 곡을 무한재생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표현은 저의 퇴근길 메이트의 말을 빌렸습니다.)
8월에 가장 즐거웠던 만남은, 제가 막내가 되던 모임입니다. 교회의 찐 어른이라고 여길만한 선생님(애칭)들과 함께 어느 토요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른이 사주는 들깨 삼계탕과 커피와 디저트.. 그리고 막내가 된 수지.
저는 꽤나 '리더십' 포지션으로의 경험이 많거든요. k-장녀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대학교도 1년씩 늦게 들어갔으니 친구들도 1살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대학시절에도 동생들과 살이 부대끼며 수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보다 언니, 오빠 또래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막내 노릇 찬스를 놓치지 않죠. 매우 들떠 있고, 평소엔 보기 힘든 애교도 부립니다. 그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하면서 노는 것인데도 그게 참 위로가 되어요. 너무너무 즐겁습니다. 환대와 대접뿐 아니라 저의 막내 노릇도 수용해 주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8월의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절친한 사라언니와 (이하 사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쉬는 시간을 보내던 와중이었는데요. 갑자기 이런 말을 내뱉는 거 있죠.
"아, 나 너무 드라이브 가고 싶어."
접-수. 그 길로 더는 곧바로 베스트 드라이버 오빠 한 명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드라이브를 가자고 요청했죠.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을 모으니 4명이 되어 우리는 행주 나루터로 떠났습니다. 야심한 시각에 말이죠.
그날의 번개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갑자기 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진짜 갑자기 가게 되었다는 점. 같이 가자고 했는데 흔쾌히 가자고 하는 점 때문이에요. 마음이 통해서 어떤 경험이든 하나를 만들어 낸 게 꽤 오래갔거든요. (이걸 쓰는 저, 왜 이렇게 F 같죠? 분명 ISTJ로 바뀌었는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친구가 있어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거, 재미있잖아요!
8월의 영화는 단연 오펜하이머입니다. 개봉 이전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로 워낙 바이럴 되었기 때문에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더라죠. 저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놀란 감독 좋아하거든요. 원자폭탄의 아버지인 '오펜하이머' 중심으로 흐르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주된 서사입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오펜하이머'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학생 시절부터 리더가 되기까지, 프로젝트 진행과 그 이후까지 고뇌를 담았습니다.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원자폭탄 생성원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는데요. 과학적 지식이 전무한 저도 여러 예습 콘텐츠를 통해 학습을 하고 갔더니만 이해가 쏙쏙 되었습니다.
영화 리뷰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많이 기록으로 남겨놓았으니, 저는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알쓸별잡 (알아두면 쓸데 있는 지구별 잡학사전)'에 출연하여 잡학박사들과 함께한 회차를 참고하시면 영화에 대한 흥미뿐 아니라 인간 '크리스토퍼 놀란'에게도 놀라운 관심이 생겨납니다. 자신의 일(영화)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저와 대화를 함께 나누어보시죠. (2회 차 관람도 하고 싶어요 정말...!)
'바쁨 바쁨 빠쁨'이 세 번 정도 이어지면 중간에 '쉼' 한 번을 넣어줍니다. '쉼'을 누릴 수 있는 여유 시간이 날 때면 저는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곤 합니다. 이번 달에도 그 친구들과 함께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쉼'을 누렸습니다.
어쩌다 보니 서울 시내 건강 맛집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큐레이션도 가능한! 동네마다 n회차 방문하는 저만의 플레이스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1. 용산 : 바통 밀 카페
이곳은 오래된 역사가 있습니다. 이직 실패 기간이 길어지면서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지만 주머니 사정과 마음이 넉넉지 못해 못 가던 식당에 큰맘 먹고 간 적이 있었어요. 수고하는 저에게 보답해 주려고요. 그때부터 다니던 곳으로, 용산에 간다면 저는 무조건 이 집을 갑니다.
평소에 먹기 힘든 카뮤트나 방울 양배추 같은 식재료를 이용해 건강한 샐러드를 만들고요. 제철 과일을 이용해서 다양한 플레이트를 냅니다.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베지 그레인 샐러드, 오늘의 수프 (옥수수 수프) 그리고 팬오버 팬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샐러드는 말할 것도 없이 신선하고, 수프는 저의 영혼의 음식답게 한 그릇을 다 비워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의 새로운 음식은 바로 이 팬케이크였는데요. 프로슈토와 부라타 치즈 그리고 갓 구운 팬케이크면 말 다했습니다. 이곳은 항상 사람이 많기 때문에 오후 2시경 늦은 점심을 느긋하게 먹으면 제일 좋습니다.
2. 한남동 : 라페름
지금은 확장 이전을 해서 더 근사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지만 이전부터 다녔던 곳입니다. 여기 치킨 스테이크 정말 맛있거든요. 이번에 방문했을 땐 단호박귀리리소토를 시켜보았는데, 사람들이 리뷰에 모두 극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걸까요? 생선과 너무 달지 않은 단호박과 귀리가 너무 조화로워서 치킨 스테이크와 함께 먹기에 적당했습니다.
분위기가 환하고 주말 브런치를 하기엔 딱인 장소입니다. 아마 토요일 낮에 소개팅을 하신다면 이 장소를 선택해 보아도 되겠어요. 이미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고 계실 것 같고요.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기분내고 싶은 날에 한번 방문해 보는 것 즈음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참 애를 쓰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단히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남의 시선과 그것보다 더 한 저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높게 책정해서 거기에 부합하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았다는 거죠. 커리어 적으로 점프하려는 욕심, K-장녀로서 딸과 누나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 '더 나은, 더 잘되는'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꾸미고, 운동하기도 했고요. 힘을 써야만 하는 여러 관계들에서도 꾸준히 힘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이지도 모르는 '더 나은, 더 잘되는'을 언젠가부터 저의 정체성으로 삼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다음 날부터는 거기서부터 파생된 저의 생각과 행동 그 모든 것을 멈추었습니다. 저는 저에 대한 생각을 덜 하게 되었고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게 되었고요. 5번 가다가도 1번 운동을 못 가면 실망했던 습관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일주일에 3번을 가면 3번씩이나 갔다고 칭찬해 줍니다. 자유해졌고, 아주 편하게 삽니다.
저희 목사님은 제게 "네가 평생 살아온 방식을 고치는 건 매우 어려울 거야. 하지만 해야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이런 변화를 겪기까지 하루아침에 되어버린 것은 당연히 아니고 저도 모르는 새에 이렇게 되었겠지요.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는 바뀌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하필 이 시기에 이런 생각과 이런 일들을 마주하게 된 것은 계획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
앞으로 저는 어떤 타이밍을 또 마주하게 될까요? 그리고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요?
(아, 목표 없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목표는 있지만 연연하지 않아요~)
실은 9월도 매우 바쁠 예정입니다. 두 달 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휴가에 집중해야 하거든요. 그 말인즉슨... 9월엔 더욱 풍성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지요!
소망하기로는, 9월에는 홀로 있는 시간을 좀 보내볼까 합니다. 8월에는 주 1회 1명만 만나기를 워낙에 실천하지 못했던지라 9월에 접어들면 다시 원래대로 루틴을 잡아가야죠. 그 시간에 운동을 하던 책을 읽던 글을 쓰던 무엇을 하던지요. 그렇지만 아끼고 아끼던 만남을 고해하고 있기도 합니다. 거기서 또 충분한 쉼을 누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아끼고 아끼던 음악은 여기에서 틀게요.
아, 두 달 연속 콜드플레이라니. 그런데 한번 들어보세요. 진짜 치유되니까요.
오? 그러고보니 저 안 밀리고 쑥덕 써버렸네요? 8월의 편지요! (엄살이 심한 편..)
https://youtu.be/-gA3H3clEqk?feature=shared
23.08.28.
모두가 떠난 사무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