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도가 답해보는 아모레퍼시픽 자기소개서 문항
아모레퍼시픽 그룹은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특별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움이 왜 필요한지 정의하고 입사한다면 이러한 소명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기술하시오.
아모레퍼시픽에 한 번이라도 지원해 본 사람은 익히 봤을 문항이다.
미술 전공인 내가 이 문항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이거 전공시험 문제 아니야?'
세상에 아름다움이 왜 필요한가... 아름다움이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이게 미학 문제가 아니면 뭐란 말이지? 그리고 왜 기업이 이런 문제를 내지? 한참을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기업이 진짜 그 사람의 미에 대한 철학을 따져보려고 낸 것은 아닐 테지만 나는 그냥 내 맘대로 썼다.
내 입장에서는 화장품 가지고 참 깊은 철학 있는 것처럼 포장하네... 정도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내가 작성한 내용이다.
"미학은 감정학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다."
전공에서 '아름다움에 관한 학문'인 미학 수업을 수강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입니다. 흔히 아름다움을 '외면/내면'으로 구분하여 생각합니다. 이는 전형적인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형태가 없으며, 감정을 자극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감정은 이성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보고, 나의 삶에 집중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해 줍니다. 저는 지금의 이성 중심적인 현대 사회에서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이 공감의 힘을 가지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중략)
이 문항을 쓰면서, 내가 왜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는지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이 전공을 선택한 일이다.
후에 작성하겠지만, 내부에서 많은 실망을 했고(교수, 업계 등등) 취업도 전혀 다른 곳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다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다.
바로,
감정과 공감에 대한 중요성
예쁜 게 왜 중요할까? 왜 사람들이 예쁜 걸 찾을까?
자신의 감정이 동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본능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양한 예외를 보았을 때 번식이나 생존 본능 외에 아름다움에는 '물리적인 무가치함'이 분명 있다.
현대는 이성 중심 사회라고 한다. 매번 드는 이성 때문에 탈 난 예시는 세계 2차 대전이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에 유럽은 완전 180도 바뀌어서 이성 탈피!!!! 이성 탈피!!!!! 난리 치게 된다. 히피도 그렇고 뭐 여튼 대강 그렇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오간 적은 없다.
감정에 대한 중요성은 이제야 살살 이상한 방식으로(도움 안 되는 힐링 책들) 중요성이 갑자기 높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힐링 책들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사실상 내 감정에 동요할 만큼 자극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쌔고 쌘 위로가 담긴 책 한 줄 읽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얼굴 한 번 더 쳐다보는 게 더 많은 감정적 동요를 준다.
이렇게 감정적 동요를 많이 경험한 사람은 공감을 잘하게 된다. (물론 100%는 아님)
미대에 가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게, 내가 정말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구나였다.
어디 가서 예민하다 말만 듣다가, 미대 가서 내가 너무 무심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알고, 그에 맞는 소비를 통해 여러 감정을 느꼈던 사람은 남의 감정에 공감을 잘한다.
즉, 남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소한 부분까지 캐치할 수 있고, 그것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예술하는 애들이 소위 '예민하다'라고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내가 죽 나열한 것만 보면, 참... 요새 인재다 싶다. 기업에서 '고객중심', '공감'을 그렇게 표방하는데
그런 거 보면 죄다 미대생 갖다가 쓰면 될 텐데 미대생 왜 안 뽑냐? 생각이 든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