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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GH Nov 07. 2021

[생각06] 당신도 입사 동기가 있나요

'사회생활 3100일'이 꽤 괜찮았던 이유

당신도 입사 동기가 있으신가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데, 동의하시나요.


저는 잔디, 윤경이와 한 3100일쯤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20대 후반, 나란히 노트북을 켜놓고 입사 교육을 받은 사이입니다. 기자를 하겠다며 첫 직장에 들어갔고, 같은 일을 시작하는 둘을 만났습니다. 둘의 첫인상이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잔디와 윤경이가 제게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 된 계기도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이들 앞에서는 '욕'을 해도 창피하지가 않더라고요. 차곡차곡 함께 쌓은 추억 위에 무조건적 신뢰가 함께 적립된 걸까요.


알고 있습니다. '이놈, 저놈' 하면서 몰래 욕하는 게 험담이라는 거, 저도 배웠습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일하면서, 진짜 이상한 사람들 많이 만났잖아요. 그냥 나쁜 놈들도 많고, 염치없는 인간들에 예의 없는 사람들까지, 다들 한 번씩은 빌런을 겪어 보셨죠? 거기에, 짠내 나는 연봉, 비합리적인 회사 의사결정 시스템, 왜 해야 하는지 이해 안 되는 업무도 최악이죠. 투정해봤자 변하지 않는 거, 정말 잘 압니다. 저도 나름 '3100일'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레벨이 꽤 높아졌거든요.



그래도 가끔은 험한 말로라도 터트리지 않으면 우리 속이 곪으니까요. 앞에서는 차마 큰 소리 못 내지만, 뒤에서라도 이야기 안 하면 스트레스가 발생하죠. 그다음은 '현타'가 오고, 연달아 온 몸에 힘이 빠지는'번아웃'이 찾아오지 않나요.


그럴 땐 누군가 제가 하는 험담을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해결책을 달라는 거 아니고, 그냥 공감이 필요할 때, 함께 욕해주는 게 응원이 되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전 매번 입사 동기들과 함께 있는 PC 카톡 창을 성난 손가락으로 열어젖힙니다.


물론, 이들과 힘든 이야기만 나눈 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한 3100일 동안, 기쁜 일도 많았거든요. 모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이직이나 전직도 결정했습니다. 요즘 같은 부동산 격동의 시대, 자가 주택을 마련한 친구도 있습니다. 물론,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힘든 순간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추억 팔이'가 가능한 소소한 에피소드도 한 두 개 아닙니다. 회식에서 왜 신이 났는지, 제 손으로 직접 그 센 소주를 퍼마시고 넘어질 때 택시에 밀어 넣어준 것도 이 친구들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주변 관계도 많이 얽혔는데요. 윤경이가 알아서 골라온 남편은 잔디의 대학 시절 동아리 후배고, 제 부케를 받아준 잔디는 식장에서 남편 하객으로 온 대학 친구를 만나기도 했어요. 잔디 남편의 첫 직장 입사 동기는 제 대학 시절 친구이기도 하고요. 우리만의 유니버스가 있다는 상상과 함께, 함께 인간관계를 확장하고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할수록 관계가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입사 동기라고 모두가 친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사회초년생 시절 비슷한 경험을 쌓는 건 중요한 친목 요소지만, 그렇다고 정서적 유대를 보장할 순 없죠. 제가 운 좋겠도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게 결론일까요.


잔디, 윤경이 모두 공감 능력이 어마어마한 친구들입니다. 매번 큰 축하와 위로와 도움을 받습니다. 제 친구들은 누구든 기쁜 일이 생기면, 축하하는 마음을 열심히 표현합니다. 이왕 잘 되는 거 우리 중에 하나가 잘 되는 게 좋다는 마음으로요. 또, 누군가를 욕 할 일이 생기면, 같이 시원하게 욕해줍니다.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속상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웃긴 짤이 있으면 바로 카톡으로 보내주고, 이직 정보가 있으면 슬쩍 공고 링크를 보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지냈으면 합니다.



지난번 술자리에서 잔디의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우리 서로를 위해서 건강하자." 정형외과 전문의의 소견, 이젠 당연해진 위통과 두통, 필수품인 소화제, 휴식이 필요하다는 자기 진단. 이제는 더 늦기 전에 건강을 챙기는 자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운동도 해야죠. 그래야 최소 70살까지 건강 유지하면서, 같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를 슬프게 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오래오래 즐겁게, 철 없이 술 마시고, 수다 떨면서 폭소하는 시간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잔디야, 윤경아. 우리 사진 보니까 이제 나이 든 티가 꽤 나더라. 그날 3시간 동안 촬영하다가 사이에 지쳤던 거 생각하면, 체력도 예전 같진 않더라고. 그래도, 같이 웃는 모습이 찍힌 사진 보니까 괜히 두근두근하고 기분이 몽골몽골 하던데? 앞으로도 이 험한 세상 같이 잘 헤쳐나가 보자.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사진 같이 찍어놓자.

그리고, 내일 월요일이야. 다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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