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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상담하기로 했다.

엄지손가락만 한 아로마오일

by Kimplay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잖아요.’


몇 주 전, 틀어진 것을 바로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살 터울의 남매 싸움에 등이 터지는 날들이었다. 다툼을 해결하려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거슬러 올라가면 끝나긴커녕 꽁꽁 묶인 매듭을 풀지도 못하고 다시 끝으로 쭉 밀려났다. 이렇게 재미없는 미끄럼을 매일 타며 삐걱댔다.


마음이 틀어지니 몸도 아팠다. 출산 후 고질병이 된 허리 통증에 '분명 내 몸은 심각하게 틀어져있다'라고 믿게 됐다. 통증은 왼쪽 위아래로 번졌는데 옆구리는 간헐적으로 콕콕 쑤셨고, 엉덩이와 허벅지까지 욱신거렸다. 왼쪽 다리가 힘을 못 받는 듯했다. 정형외과에 들러 치료를 받으며 생각했다.

몸은 이렇게 고치면 되는데, 마음은 어떡하지?


심지를 쥐고 있는 시한폭탄 같아서 놓치기 전에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그 와중에 한방 신경정신과가 눈에 띄었고, 무작정 찾아갔다. 진료비 소개, 문항 체크, 집과 사람 그리기 뒤에 이어진 짧은 상담. 의사는 내 목덜미를 몇 번 주물렀고, 목 양쪽에 (우리 집에도 있는 그런) 부황을 하나씩 떠 주더니 거의 바로 빼 버렸다(진심으로 아이들 장난 같았다). 한약을 먹을 거냐고 물은 뒤, 정수리와 손목 부근에 침을 몇 개 꽂았고 10분 뒤 빼줬다. 내가 그린 그림 결과는 일주일에서 열흘쯤 걸린다고 했다.


뒤이어 들어온 간호사는 내게 추나요법 확인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아이들 장난 같았던 그것이 이 병원 스타일의 추나요법이란다. 소리가 나는 일반적인 추나가 아니라 그것이 추나라고. 무려 진료비에 포함된 치료였단다. 기가 찼다. 대체 그 부분 비용이 전체에서 얼마를 차지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게 치료였다고요?"라고 세 번이나 되묻는 것으로 내 어이없음을 전달했다.


오랜만에 내린 결단이 허무했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내 안을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방향을 잘못 잡은 걸까.

그래, 자주 그런다. 촉이란 게 없어서 제 방향의 반대로 갈 때가 많다. 근데 이건 좌우 두 개의 선택지가 있는 게 아니라 맞는 방향이 뭔지 모르겠다.

7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지불했고, 손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아로마오일 한 병이 남았다.

확실한 건, 더 이상 여기에 시간과 돈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 가뜩이나 소진된 마음이 아깝게 소비됐다.


집에 와서도 마음은 답답했다. 국을 끓이면서, 설거지하면서, 양치질할 때도 계속 생각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잖아요.’라는 힘 빠지는 말을 해 버린,

그런 짧은 상담의 순간에도 무력했던 나에 대해서.


다음 날, 혼자가 된 오전. 어제의 그림자를 빤히 쳐다봤다. 하얀 식탁 위 아로마오일.


'근데 방법이 왜 없지?'

'내가 찾을 수 없는 답을 누가 찾아?'


힘없던 표정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과거와 현재를 속속들이 말하기엔 시간도,

들어주는 이도 어디있는지 모르겠으니 내가 내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나를 상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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