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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5 출시의 교훈, AI의 '성격 세금'

by 음병찬

* 이 글은 AI 전문 뉴스레터 '튜링 포스트 코리아'에 게재한 글의 일부입니다. AI 기술, 스타트업, 산업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시면 '튜링 포스트 코리아' 구독해 주세요.



어찌보면 요즘 AI 영역에서 들리는 수많은 소식은 참 ‘묘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뉴스 헤드라인들, 그리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들리는 불만들을 쭈욱 모아보면요, 하나의 ‘모순(Paradox)’이 있어요.


그건 바로, 한편으로는 ‘AI의 도입이라는게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느린 과정’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엄청나게 빠른, AI 기반의 변화’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모순처럼, 그리고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두 가지 모두가 사실이고, AI를 포함한 기술 업계는 이제 그 함의(Implication)를 서서히 깨닫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중에 ‘느린 차선(Slow Lane)’은 우리에게 사실 익숙한 영역이예요: ‘행동이 변화해야 하는 (Behavioral Change)’ 영역이예요. 보통 이전에는 ‘변화 관리(Change Management)’라고 부르는 영역의 일부이기도 했다고 봅니다. 새로운 기능,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기존에 하던 일의 흐름을 바꾸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보통 우리는 ‘저항’하게 됩니다: 글쎄요, 이런 걸 ‘Behavioral-Delta Law’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image.png?t=1755041023 ‘변화’는 어렵습니다. Image Credit: Matthias Orgler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변화의 크기가 클수록, 마찰(Friction)과 저항(Resistance)이 커지게 되죠.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이자 AI Snake Oil 뉴스레터 편집자인 Arvind Narayanan이 말한 것처럼, 이건 ‘기술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 행동의 속성’이기 때문에 AI라고 해서 다를 건 없습니다. 어쨌든 이런 경우에 기술의 도입 속도는 몇 달, 몇 년 단위로 측정을 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그만큼 ‘새로운 기술’과 그걸 사용해야 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이 오래 걸립니다.


그런데, 이번에 있었던 GPT-5의 출시 전후에는, 전혀 다른 ‘빠른 차선(Fast Lane)’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우리가 목도(目睹)했죠.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요, GPT-4o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반발을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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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단순히 ‘익숙한’ 도구를 잃게 된 사용자들의 투덜거림 정도를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Windows XP나 오래된 Photoshop 인터페이스가 사라졌다고 해서 이런 격한 감정을 드러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개인적인 나의 ‘협력자’ 내지는 ‘친구’를 잃어버린 것 같은 애도의 감정을 드러냈거든요. 그렇습니다, 이건 ‘관계’의 문제라는 겁니다.


이 현상은 AI 도입의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내 보여줬습니다. AI에 맞춰서 우리의 습관을 바꾸는 작업은 느린 과정이지만, 반면 기존의 정신적 모델(Mental Model)에 매끄럽게 들어맞는 AI와는 아주 빠르게, 단 며칠 안에도 습관을 형성하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런 AI 도구를 사용하면서 나도 모르게 사용해 왔던 ‘바이브(Vibe)’라는 용어, 대화의 특이한 말투, 상대방이 사용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어조, 이런 모든 것들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이건 사용자가 AI와 이야기하면서 진행하게 되는 ‘인지적인 워크플로우’에 자기도 모르게, 암묵적으로 통합해 버린, ‘진짜 핵심적인 특징(Feature)’인 겁니다.


어쩌면 이건, AI 업계가 알게 모르게 놓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은 아닐까요? 심지어 오픈AI 같은 회사들도 모델의 ‘역량(Capability)’을 강화하기 위한 속도(Velocity)에만 집착하면서 더 나은 엔진 - 즉 모델이죠 - 을 만드는 경쟁을 벌여 왔습니다. GPT-4o에서 GPT-5로 전환하는 걸 단순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쯤으로 취급하면서, ‘더 낫다’는 걸 벤치마크 점수 같은 객관적인 지표로만 판단한 거죠.


자사 제품을 가장 열정적으로 사용하는 고객에게는, 단순히 도구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하는 파트너’를 교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아닐까요? 고객이 자기 친구를 밀어내고 들어온 ‘새로운 협력자, 파트너’에게 적응하게끔 강요할 때 발생하는, 소위 ‘성격 세금(Personality Tax)’ - 즉, 정서적인 비용이죠 - 을 고려하지 않았던 겁니다.


또 다른 기능이었던 ‘Automatic Model-Switcher’는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바로 이 점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Grok 4도 이걸 곧바로 모방하려고 했죠. 사용자의 ‘Behavioral Delta’를 ‘0’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엔진을 내부적으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사용 습관을 존중하면서 대규모의 확산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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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제품의 미래는 바로 이 ‘역설’을 어떻게 잘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대화형 AI’의 경우에는, ‘성격(Personality)’이 곧 사용자 인터페이스(UI; User Interface)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들이 승자가 될 확률이 높을 겁니다.


페르소나(Persona)의 안정성을 서버 업타임만큼이나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겁니다. 사용자가 ‘학습하는’ 속도는 느릴지라도, ‘신뢰하게 되는’ 속도는 순식간이고, 그 신뢰도 내가 ‘의지해 온 파트너의 예고없는 변화’로 깨져버릴 때는 훨씬 더 빠르게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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