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나물 Nov 11. 2022

글쓰기 오답노트 - 목차 쓰기

수정 후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고 나자 새로운 페이지가 생겼다. 흰 바탕에 닉네임과 프로필 사진이 전부인 페이지는 갓 조립한 이케아 선반처럼 말끔했다. 글이 차곡차곡 쌓여갈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들떴다. 하루라도 빨리 빈 공간을 채우고 싶었고, 곧바로 연재를 시작했다.


 주제는 정해져 있었다. ‘퇴사부터 해외 정착까지’. 글은 총 11편으로 구성했으며 출국 전 여섯 편, 출국 후 다섯 편으로 나누었다.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올리면 3개월 뒤에 브런치북 한 권이 나올 터였다.


 처음에는 수월했으나 4주 차부터 주제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도 ‘어째서 이 내용을 쓰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의문(의심스럽다는 마음이 들었으므로 '질문'보다 '의문'이 더 적절하다.)을 지울 수 없었다. 몇 시간에 걸쳐 완성된 초고는 마치 노른자 없는 계란 같았다. 알맹이가 쏙 빠져 밍밍하고 흐릿했다. 일련의 사건들이 나열됐을 뿐 그 안에 깨달음도, 느낀 점어떤 유의미한 깨달음(비슷한 단어를 굳이 두 번 쓸 이유는 없다.)도 없었다. ‘나 이런 일도 있었다’라고 뽐내는 자랑 혹은 불평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기에 제격이었다. 그제야 즉흥적으로 주제를 바꾼 뒤 처음부터 다시 썼다. 매주 이 작업을 반복했다. 결국 글과 글 사이에 구멍이 생겨났고, 연결성도 희미해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돌이켜보니 원인은 목차→구성 (내가 의도한 바는 목차보다는 구성에 더 가깝다. 목차란 '목록이나 제목, 조항의 차례'를 뜻한다. 그런데 왜 목차라는 단어를 썼을까연재하기 전에 목차만 고려했기 때문이다. 책 몇 페이지를 넘기면 나오는 바로 그 목차말이다. 한 편의 글이 어떤 역할을 할지, 글과 글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구성의 사전적인 의미는 '몇 가지 부분이나 요소들을 모아서 일정한 전체를 짜 이룸, 혹은 문학 작품에서 형상화를 위한 여러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배열하거나 서술하는 일'이다. 애초에 조화롭게 만들지 않고 글의 제목만 딱딱 갖다 붙였기 때문에 구성을 목차로 착각해 쓰게 되었다.)에 있었다. 애초에 목차를→구성을 짤 때 깊게 고민하지 않고, 특정 사건만 골랐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양질의 주제는 생략되었고, 특이한 경험이 주제로 선정되었다→양질의 주제는 생략하고 특이한 경험을 주제로 선정했다(주어를 '주제'가 아니라 '나'로 바꾸면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은 제외하고 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에 대해서만 쓰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을 갖고 있었다.(더 구체적인 동사로 수정하였다.) 쏟아져 나오는 글 속에서 튀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계획한→계획된(목차에 대한 서술이기 때문에 피동태로 수정했다.) 목차는 엉망이었고, 완성된 글은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된 지금, 똑같은 시리즈를 연재한다면 어떻게 할까. 목차→구성부터 다시 짤 것이다. 물리적인 경험이 아니라 그 당시 고민했던 것들로 구성할 것이다. 예를 들어 퇴사 직후 생겼던 고민, 부모님을 두고 해외로 떠나기로 결심하는 과정, 경제적 수입이 없어진 후 바뀐 삶의 태도, 해외로 나가며 인간관계가 단절된 후 느낀 점,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여부 등등. 내면에서 솟아나는 질문들을 주제로 선정할 것이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떠난 사람, 남은 것과 사라진 것, 미처 꺼내지 못한 속내와 같은 것들. 어쩌면 브런치는 내게 특별한 공간이라 특별한 것만 골라서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오픈했던 2015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많은 작가들이 일상에서 고군분투하며 글을 써냈고, 그 글을 읽으며 내 일처럼 기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그래서 욕심이 더 앞섰던 것 같다.(브런치가 특별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추가하였다.) 이제는 욕심을 버리기로 한다. 이 글도 특별한 것만 쓰지 않겠다는 다짐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



수정 전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고 나자 새로운 페이지가 생겼다. 흰 바탕에 닉네임과 프로필 사진이 전부인 페이지는 갓 조립한 이케아 선반처럼 말끔했다. 글이 차곡차곡 쌓여갈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들떴다. 하루라도 빨리 빈 공간을 채우고 싶었고, 곧바로 연재를 시작했다.


 주제는 정해져 있었다. ‘퇴사부터 해외 정착까지’. 글은 총 11편으로 구성했으며 출국 전 여섯 편, 출국 후 다섯 편으로 나누었다.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올리면 3개월 뒤에 브런치북 한 권이 나올 터였다.


 처음에는 수월했으나 4주 차부터 주제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도 ‘어째서 이 내용을 쓰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지울 수 없었다. 몇 시간에 걸쳐 완성된 초고는 마치 노른자 없는 계란 같았다. 알맹이가 쏙 빠져 밍밍하고 흐릿했다. 일련의 사건들이 나열됐을 뿐 그 안에 깨달음도, 느낀 점도 없었다. ‘나 이런 일도 있었다’라고 뽐내는 자랑 혹은 불평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기에 제격이었다. 그제야 즉흥적으로 주제를 바꾼 뒤 처음부터 다시 썼다. 매주 이 작업을 반복했다. 결국 글과 글 사이에 구멍이 생겨났고, 연결성도 희미해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돌이켜보니 원인은 목차에 있었다. 애초에 목차를 짤 때 깊게 고민하지 않고, 특정 사건만 골랐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양질의 주제는 생략되었고, 특이한 경험이 주제로 선정되었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은 제외하고 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에 대해서만 쓰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쏟아져 나오는 글 속에서 튀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계획한 목차는 엉망이었고, 완성된 글은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된 지금, 똑같은 시리즈를 연재한다면 어떻게 할까. 목차부터 다시 짤 것이다. 물리적인 경험이 아니라 그 당시 고민했던 것들로 구성할 것이다. 예를 들어 퇴사 직후 생겼던 고민, 부모님을 두고 해외로 떠나기로 결심하는 과정, 경제적 수입이 없어진 후 바뀐 삶의 태도, 해외로 나가며 인간관계가 단절된 후 느낀 점,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여부 등등. 내면에서 솟아나는 질문들을 주제로 선정할 것이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떠난 사람, 남은 것과 사라진 것, 미처 꺼내지 못한 속내와 같은 것들. 어쩌면 브런치는 내게 특별한 공간이라 특별한 것만 골라서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욕심을 버리기로 한다. 이 글도 특별한 것만 쓰지 않겠다는 다짐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


이 글은 한 차례 수정되었습니다.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