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자 엄마의 돈 되는 잔소리⑧
네가 아침부터 짜증을 냈다. 오늘은 특별히 아빠가 아닌 내가 너희들 등원을 담당했지. 내 출근 준비를 끝마치고, 너희를 깨우고, 아침을 해 간단히 먹이고, 옷을 입히고, 너희들 머리를 묶고, 가방을 챙겨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조급한 마음에 시계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몰라. 네가 아침을 먹는 동안 네머리를 묶는 내게 넌 말했다.
"헤이지니 양갈래 똥머리 해줘!".
난감했다. 그리고 완성된 양갈래 똥머리를 보고 넌 내게 짜증을 냈지. 네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똥머리는 완전 동그란 모양이어야 하는데 내가 만든 똥머리는 찌그러진 타원형이란다. "이럴 거면 똥머리 하지 마!". 그래. 나도 바라던 바다. 그래도 빗질 몇번으로 끝내는 내 머리에 비해 네 머리엔 좀 더 많은 내 노력이 들어갔다는 점은 알아줬으면 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넌 부쩍 멋을 많이 낸다. 생전 쓰지도 않아 처박혀 있던 고데기를 어디서 찾아왔는지 아이돌 머리를 해 달라고 하질 않나, 손톱엔 이상한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질 않나. 대체 손님이 집에 올 때마다 작아진 발레 옷은 왜 그렇게 갈아입고 나오는 거니. 나 어릴 땐 안그랬는데, 넌 대체 누굴 닮았나 생각을 하다가 네 이모가 떠올랐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네 이모는 내 사랑스러운 동생이다. 하얀 얼굴에 빨간 입술. 어렸을 때 옆집에 살던 택시기사 아저씨는 이모와 마주칠 때마다 귀여워 미치겠단 얼굴로 네 이모 얼굴을 비벼대곤 했어. 그래서 네 이모는 그 아저씨 눈에 띄지 않게 항상 피해 다녔지. 네 이모는 어렸을 때부터 예쁘게 자신을 꾸미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번은 외할머니가가 하얀 리본핀을 같이 쓰라고 사 줬는데 언니와 내가 쓸 수 없도록 그 핀을 숨겨두고 혼자 꺼내 쓴 적도 있지. 대충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몸에 걸치고 다녔던 나완 결이 다른 꼬마였다.
"꾸미는 것은 대학교 때 다 할 수 있다!"
난 네 외할머니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게 뭐가 중요해? 내면을 가꾸는 게 더 중요하지!'. 이런 개똥철학도 좀 가지고 있었지.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너를 낳고. 그렇게 쭈욱 내면만 가꿨다. 얼마나 가꿔졌는 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이를 먹고 얼마 전에 20대 중반의 한 후배를 받게 됐는데, 그 후배는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웨이브 진 긴 머리에 단정하게 화장한 모습. 점심 식사 자리에 같이 가면 틈만 나면 화장을 고칠 수 있도록 팩트를 항상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그 후배를 보면서 그 나이 때 내 모습이 떠올랐어.
그땐 취재원들과 술을 정말 많이 마셨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주로는 4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었지. 그들과 만나며 어린 여기자라고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아. 되도록이면 바지를 입고, 화장은 하는 둥 마는 둥. 지금도 그렇지만 발 불편한 것을 못 참는 난 항상 편한 신발만 고수했지.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애 둘 딸린 아줌마가 되니 뒤늦게 후회가 되더라.
사람들이 보는 나. 그것이 내면일 수도 있지만 가장 쉽게는 겉모습이겠지.
사람 만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가도 중요한 텐데, 그 외면을 가꾸는 것에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을 가꾼다는 것이 자기 만족일수도 있고, 때때론 내가 만나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말이야.
예쁘게 너 스스로를 꾸미려고 하는 네 모습을 보며 예전의 나라면 "외면보다 내면이 더 중요해!"라고 말하며 개똥철학을 읊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들 눈에 보이는 외면이 내면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 그리고 내면을 가꾸는 데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듯, 너를 가장 너답게 꾸밀 줄 알는 데도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엔 네 옷을 좀 사러가자. 네 친구들이 그랬다며. 넌 왜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냐고. 미안하다. 어느새 나같이 너를 키우고 있었구나.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사람이 쉽게 바뀌진 않지. 그래도 노력은 해볼게. 네 완벽한 똥머리를 말기 위한 노력도 함께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