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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원썸 Dec 18. 2023

세살버릇과 세살의 기억

유아기억상실증

어린 아가들이 집안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며 순진하게 헤헤 웃던 컨셉의 광고,

제품은 가물가물한데 광고멘트는 확실하다.

" 너는 기억하지못하겠지만..."


서너살정도되는 아이들은 양육담당자인 부모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때리고싶은 미운 네 살, 폭군 네 살" 이라고 불리우는 그 또래의 재롱과 만행은

부모를 들었다놓았다한다.


" 너가 기억하지못하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분명히 엄마 아빠의 얼굴을 알고 낯가림을 시작,

이모 고모 할머니란 관계를 아는 영유아시절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기억은 빠르면 4살 느리면 5살까지라는

"유아기억상실증"


나도 그 시기를 거쳐 지금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미스테리하게도

5세이전의 기억이 전무하다.


자녀가 어릴 때 여행을 간다치면 떼어놓고 가는게 안쓰러워 힘듬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특히 해외여행을 데리고 나갈 때면

주변에서 만류하기를

" 이 때 기억하나도 못해. 너네들이나 나가서 즐겁게 놀고 와"

그 때는 그들의 조언이 와닿지않아 아이 보따리를 잔뜩 이고 지고 다녔는데

만류하던 그들의 조언이 맞았다.


증거인 사진을 들이대도 정말 하나도 기억못한다.


유아기억상실증이란 명칭까지 있는 것을 보면

궁금하고 의심스러운건 나만이 아니었다.


혹자는 뇌의 구조가 달라서, 혹은 뇌의 발달이 너무 빨라서

혹자는 기억이란 언어와 동반해야하는데 4세 이전의 기억은

언어가 구체화되지않아서등등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4-5세 이전의 관계와 수 많은해프닝을 전혀 기억하지못하는 것은

마치 레드~썬 아니면 블랙홀에서 쏙 빠져나온듯한 그런 느낌이다.




걸어서 5분거리의 고등학교를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제끼더니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학교를 고집부린 딸은 "엄마말이 조금 맞았어"란 뒤늦은 후회속에

통학을 했다. 통학시간에 지친것을 시작으로 여러가지가 거슬렸는지

어느 해는 눈(eye)에 얼음조각이 들어간 동화 눈의 여왕 주인공인 카이마냥 냉냉했다.

고진감래는 쓴 맛은 어디까지일까

대입실패, 재수도전, 재수끝에도 본인이 진심으로 원했던 학교, 전공을 하지못한게 못내 아쉬운 딸에게

난 심리상담을 권했다.


수능만이 다가 아니다. 성장과정을 내내 지켜 본 내 눈에는

-저의 속속들이를 다 안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해결해줄 수는 없는 -

어떤 상처가 언듯언듯 보였었다.

'저 속이 속일까?'


 

지인이 소아청소년 심리상담을 하고 있었기때문도 하다.

그와 대화하면서 내 속에 뭔가가 들킨 것 같기도 하고 들추어 위로받은것도 같고

왜 그모양이었는지 클루가 보인것도 같고

아무튼지 그와의 심리테스트와 짧은 대화는

내 유년시절을, 청소년시절을 그리고 내 가족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역시나 누군가에게 지금 터트리고싶은게

지금아니면 터질 것 같았던 모양이다.


딸은 그 날 멘토를 만났다고 했다.

자신이 만난 어른중 존경심을 갖게 하신 분은 처음이라고 했다.

대신 많이 울었다고 했다.

하지만 왜인지는 딸도 상담박사님도 상담내용은 함구했다.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딸

 " 엄마.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없었어?"

" 그렇다고했잖아. 그리고 30대는 제일 바빠 출장도 많고 집에 들어 온 날이 1년에 6개월정도?"

" 선생님이 아빠의 부재를 말씀하시는거야"

맞벌이를 하느라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영유아기를 보냈던 첫 아이와 달리 딸은

직장을 그만둔 상태라 온전히 내가 키웠다.

다만 딸이 탄생할 때 남편은 해외출장기간이었고 한 달이 되어서야 부녀상봉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누구보다 언정감있게 키운다고,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크랙은 엉뚱한 곳이었다.

딸은 해석을 덧붙혔다.

"영유아기때는 세상의 촛점이 자신에게 있어야한다. 어린 아가의 눈에는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관심받고 사랑받는 존재여야한다."

물론 딸과 박사님의 대화, 해석은 앞뒤 다 자른 모양새니 심리이론과 꼭 일치하지않을 수도 있겠다만

마음이 짠한 것은 나도, 남편도 같았다.


" 그럼, 어떻해. 일을 하지말아? 애만 보고있으라는거야?"


아이가 태어난 즈음 남편은 바빴던 인간관계와 일로 밖으로 돌았다. 쉬는 날은 잠에 취하기일쑤였고

독박육아로 지쳤던 내가 고분고분했을까


딸의 영유아시기에 녀석은 받아야 할 양보다 적은 딱 반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

그리고

그 반을 주었던 엄마도 매일 사랑이 넘치지않았던 것

뽀롱났다.

들켰다.



더 시간이 지나니 딸은 상담시 왜 울었는지도 말해준다.

이제는 눈물없이도 자신의 이야기를 내 놓을 수 있나보다.

대신 자기가 태어날 때 아빠의 부재는 여전히 서운한지 부녀간 대화의 얼마는

그 소재다.


아이러니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는 가정, 그 가계를 책임져야하는 남편, 곧 아빠는

10개월 내내 기다린 딸의 탄생과 성장을 볼 사이도 없이 일을 해야한다.

출근할 때는 아직 자고 있는 아이를 보고

퇴근할 때는 벌써 자고 있는 아이를 보는게

지금의 5060아빠들이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요즘의 MZ세대들과 비교적 젊을 아빠들은

육아휴직도 가능하고 그런 문화에 익숙하다고 한다.


미스테리한 게 또 하나 있다.

부모인 우리들은 영유아기의 자녀를 잊지못한다.

(여자들의 임신과 산고이야기는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보다 더하면 더했다.)

아이는 기억 1도 못하는 그 시기를

어른들은 말한다

" 평생 효도 지금 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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