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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어 Feb 20. 2024

솔직한 시간

세나루, 인도네시아

Look at the start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And everything you do, they were all yellow.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타오르는 작은 모닥불을 두르고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수많은 별이 박힌 하늘 아래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하면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또 한 사람이 목소리를 얹고, 나머지 모두의 목소리가 어우러질 때 쯤 동네 고양이가 곁으로 다가와 앉아 박자에 맞춰 꼬리를 좌우로 살랑거리면 어느새 분위기에 취해 부르술랑- (인도네시아어: 건배) 술잔을 부딪힌다. 노래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은 브럼(brem)이라고 하는 쌀로 만든 술인데 맛은 한국의 청주와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 더 도수가 높고, 이 곳에서는 여성만 만들 수 있는 (남성이 만들면 부정 탄다는 인식이 있음) 인도네시아 전통 술이다. 느슨한 온도의 공간에서 느슨한 몸짓과 느슨한 표정으로 그보다 더 느슨한 시간을 보내는 이 순간을 위해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왔나보다.


 인천에서 출발해 호치민, 덴파사, 빠당바이, 방살을 거쳐 세나루까지 오는 길은 아주 긴 여정이었다. 여태껏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렇게까지 대중 교통수단이 없는 곳은 처음이라, 최대한 로컬 사람들처럼 생활하는 여행자이길 바라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택시밖에 없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심지어 방살 항구에서 세나루 마을로 가는 오토바이 택시는 grab으로 잡아도 배정이 되지 않아서, 세나루에 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거의 포기한 채 근처 식당에서 나시고랭을 먹다가 개인 오토바이로 200K루피아에 세나루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아저씨와 함께 이동할 수 있었다.


 세나루에 묵은 숙소는 바로 앞에 정글과 린자니 산자락이 펼쳐져 있고, 수탉이 새벽마다 미친 듯이 울어대서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멋진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헐벗은(?) 청년들이 나른하게 앉아 있다가 커피를 주고선 기타를 튕기고 콜드플레이와 밥 말리를 부른다. 상황이 너무 웃긴데, 좋잖아- 한바탕 콘서트를 즐기고 관광상품을 팔아보려는 청년들과 그냥 쉬러온 나 사이에 핑퐁이 오가다가 폭포라도 다녀올까 해서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조금 걷다가 우아하게 떨어지는 Sedang Gile 폭포를 만나고, 표지판을 보니 tiu kelep 폭포로 가는 갈래길도 있어서 따라가는 길. 정글을 지나다 원숭이 가족도 만나고, 계곡물도 몇번 건너고, 외나무 다리를 지나 작은 탐험을 하다 보면 엄청난 자태의 폭포가 그 주변 일대에 비를 내리며 쏟아지고 있다.


 산책을 다녀오니 에먼 친구 에릭이 기다리고 있다. 옆 마을 언덕에 가면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스쿠터를 타고 출발했다. 신나게 내리막을 달리다가 오토바이가 올라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스릴 넘치는 산길을 올라가니 다른 동네 사람들도 다들 스쿠터에 2-3명씩 태우고 올라와서 노을 구경을 하다가 내려 가더라. 멋진 곳이다. 롬복 섬은 이슬람교도가 대다수라 동네마다 모스크가 있고, 시간마다 기도소리가 울려 퍼진다. 해지는 노을과 오랜만에 듣는 아잔 소리가 어우러진 평화로운 분위기에 잠시 취해 린자니 산과 마을 전경을 보다가 정말 아름다운 곳에 데려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더니 에릭 본인은 어릴 때부터 계속 보고 자란 풍경이라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라고, 롬복을 벗어난 곳이라고는 발리밖에 간 적이 없다며 네팔에 가서 눈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요즘은 매직 머시룸이 자라는 철인데, 먹으면 계속 웃게 되지만 결국은 불쾌한 기분이 들어 한 번 먹어본 뒤로는 먹은 적이 없다고 한다. 들어보니 길리 섬 (그에 의하면 '거의 유러피언 섬')에 오는 외국인들에게 수요가 많아 이 지역에서 수확한 뒤 길리 쪽에서 엄청 비싼 가격에 유통된다고 한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듣는 것이 재밌다.

 12살 때부터 스쿠터를 운전한 얘기, 예전 포터 일을 할 때 라마단 때 린자니를 오르면 거의 강제로 단식을 하게 되는데 커다란 대나무 소쿠리에 등산객들의 짐을 실어 한 손으로 들고 너무 힘들어서 다른 한 손으로 담배를 태우던 - 사실 라마단 때는 담배도 금지 - 얘기, 본인은 독실한 이슬람교도가 아니라 술도 좋아하고, 한 번도 제대로 단식해 본 적이 없다는 얘기, 어릴 때는 엄마한테 안 먹는다고 거짓말하고 방 안 보물쿠키 상자에서 열심히 쿠키를 꺼내먹은 얘기 등 같은 시간대를 살지만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누구와 no money, no cry 함께 부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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