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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Oct 31. 2020

게으름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완벽주의자에서 게으름뱅이로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뀐 이후에 달라진 점이 몇 개 있다면, 

우선 연락하는 사람이 줄고 집에는 책이 늘었다.

외출이 줄고 뱃살이 늘었다. 

스트레스가 줄고 머리숱이 늘었다. 

화는 줄고 잠은 늘었다. 

술은 줄고 수다가 늘었다. 

커피는 줄고 차가 늘었다. 




사람은 때로 완벽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합리적 인간보다는 서투른 열정의 인간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끌리곤 하지 않던가. 누가 그랬던가, 완벽한 복근을 가진 사람보다는 쥘 수 있는 한 줌의 뱃살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더 끌리게 된다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고 여기는 사람보다는 매미가 오래 살기를 바라며 흐느끼는 사람에게 매료된다고. 


김영민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괴팍한 사람이 모두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완벽주의자는 괴팍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험에서부터 나오는 확신이랄까? 아마도 내가 그만큼 괴팍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오점도 남기지 않기 위해 닦은 곳을 또 닦고, 어떠한 빈틈도 용납할 수 없어 퇴고를 수십 번 하는 사람. 일에 대한 결벽증을 앓기에 다른 이들이 해놓은 일을 내 손으로 다시 하는가 하면, 완벽한 9가지보다 완벽하지 않은 1가지를 못 견디는 그런 사람. 그래서 항상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루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보내던 시절에는 살이 몸뚱이에 붙어 있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완벽해야 한다고 자신을 밀어붙이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뱃살은 곧 게으름의 표징이다. 인간미쯤은 편의점에서 700원만 주면 살 수 있는 것쯤으로 여긴다. 최소한 일에 있어서는 최고가 되어야 하고, 전문가다워야 하며, 냉철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 이런 철두철미함은 도저히 달성하기 어려울 것 같은 목표를 달성하고, 모두가 안 될 거라 말하는 일을 해내기도 한다. 가끔은 해결사라 불리고, 가끔은 독사라고 불린다. 일은 잘하지만 같이 일하기 어려운 사람, 회의실 안에서는 가깝지만 사무실을 나서면 함께하고 싶지 않은 종족으로 분류된다.


이런 모습을 완벽하게 버렸는지는 의문이다. 예전부터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나에게 많이 변했다고 말하겠지만, 아마 나와 처음 손발을 맞춰보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지나치게 까탈스러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늘어가는 뱃살이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 냄새 때문인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분명 똥배는 늘었다. 나는 그 똥배가 굳이 없애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에 든다.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후로 새벽이면 들려오던 새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매일 글 한 꼭지 정도씩은 써야지'하는 규칙 오래전에 깨버렸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집 앞 나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과연 인간미가 생긴 걸까?


직접 만나는 사람은 줄었지만,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늘었다. 

오늘까지 해야 하는 일도 없으니, 조금 부족해도 OK, 쓸데없어도 패스다. 

결과가 나쁘면 조금 속상하지만, 그래도 뭐 괜찮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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