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 적합한 대학 교육의 모습
하나는 실존의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정체성의 위기이다. 대학교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학령인구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인구의 절벽이 발생하는 약 10년 뒤인 2032년부터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대학교에 입학가능한 인구가 30만명대로 훅 떨어진다. (지금은 약 45만명) 지금도 이미 대학교의 입학정원(약 54만명)을 충족하지 못하는 수준인데 10년 뒤에는 학생들이 사라진 적막한 캠퍼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표 참고)
그리고 대학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의 대학은 고등교육 인재를 배출하는 고결한 지위를 갖고 있던 교육기관이었다. 고도의 경제발전을 유지하던 80년대에는 대졸자를 모셔가기 위해서 회사는 엄청난 인재유치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학령인구의 지속적인 감소로 졸업자 수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채용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졸업 이후에 취업준비를 위해 약 1년 ~ 1년반의 시간을 더 투자한다. 회사는 대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산업 현장에서 크게 쓸모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대학교 고등교육에 대해서 불신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대학교가 누려온 숭고한 지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대학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기관은 이미 체계화된 지식을 전달하고 이를 습득하는 교육에 치중해 왔다고 생각한다. 한명의 강의자가 지식을 가르치고 학생들의 지식 습득수준을 평가하는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루어왔고, 비교적 최근까지는 이러한 방식이 상당히 효과적으로 작동해왔다. 이른바 산업화의 시대에는 대부분의 것들이 표준화되고 모듈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잘 형성된 지식과 경험을 전수받고 이를 잘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창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펼처질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의 인간 개입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의 등장과 급격한 발달은 인간으로 하여금 표준화되고 모듈화된 작업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한편 새로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지루한 문제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담당하고, 대신 인간은 고도의 분석과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새롭고 어려우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이미 풀어본, 또는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난생 처음 보거나 혼자의 힘으로는 풀기가 어려운 고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과거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인공지능과 함께 시대의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세상에서 대학교는 어떠한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하는가?
그 동안 우리나라 대학교가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중점을 두고 인재를 양성해왔다면, 앞으로는 학생들이 지식을 스스로 창출할 수 있게 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식의 창출은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개념으로서 현실에서 문제점을 찾고 가설을 수립하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일련의 '연구'활동을 필수적으로 동반하게 되어 있다. 이처럼 대학은 학생들이 기존 지식의 습득이 아닌 '연구'를 통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대학에서 연구 활동은, 인공지능이 일반화된 미래 사회에서 한 개인의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가장 필수적인 기초역량을 쌓게끔 도와줄 수 있다. '연구'는 가장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차원의 교육 활동으로 다른 어떤 학습활동보다 효과가 높다. 또한 연구는 기존 지식의 전수와 전파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하여 국가와 사회를 이롭게 하기도 한다.
생성형 AI인 챗GPT가 전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한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들은 아마도 기술의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어쩌면 인간의 실존적 가치에 대해서 고민을 해봤을지도 모른다.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완성된 답변을 해주는 챗GPT를 보며 나의 정보 수집역량과 글쓰기 역량이 한참 비루해보일테니까. 흔히 챗GPT의 세상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핵심역량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질문은 매우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연구와 같다. 질문을 던지려면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모르는 내용을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는 상태에서 본인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능동성이 높게 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동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인공지능과 협력하여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미래의 인재들에게 대학이 '연구'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학교는 대체로 연구역량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전세계의 대학순위를 평가하는 각종 지표에서 우리나라의 대학교는 국가경쟁력이나 생산규모에 비해서, 대학교 경쟁력이 매우 낮다. 대학순위 평가는 학교의 연구역량이 가장 큰 비중으로 고려되는데, 이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의 낮은 연구역량은 인공지능에 둘러싸여 살아갈 미래의 사회에서 더욱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높은 학점을 따기 위해 맥락이 없는 안전한 과목만을 수강하고 한번도 '연구'행위를 하지 않고 졸업한 학생들은 안타깝지만 인공지능과 로봇과의 대결에서 참패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우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연구를 시작하게 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기초 지식은 연구행위를 용이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연구 행위를 시작하게 하는 동기를 만들어주지 못 할 수 있다. 연구는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차원의 학습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을 움직일만한 강한 내적 동기와 문제의식이 없다면 좀처럼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연구는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은 단순히 책과 이론에서 발현될 수 있지만 실존하는 사회현상 속에서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지금 존재하는 모든 이론들 역시 사회현상의 모순이나 결핍을 해결하고 더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 속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교는 학생들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켜줄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캠퍼스가 없는 대학교를 지향하는 미네르바 대학교가 던지는 외침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미네르바 대학의 설립자 벤 넬슨은 "강의실에서 교수 혼자 이야기하며 진행하는 강의, 자기가 좋아하는 수업만 수강해도 졸업할 수 있는 맥락 없는 커리큘럼, 거기로 직접 나가지 않고 캠퍼스에만 처박혀 공부한 하는 대학 생활은 필요없다"라고 말하며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궁금한 지식과 정보는 이미 우리 주위에 넘쳐난다. 접근가능한 정보가 부족해서 움직일 수 없는 시대는 한참 지났다. 클릭 한번이면 접근가능한 고급정보가 온라인 세상에 방대하게 존재하고, 심지어는 챗GPT가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전달해주는 시대에서, 지식의 전수에 집중하는 일방향 교육에 중점을 둔 대학교는 앞으로 점점 더 설자리를 잃게될 것이다. 이보다는 인공지능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부가가치가 큰 역할을 수행하는 인재를 양성/배출하는 역할을 다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연구'하는 대학으로의 변화가 필수적일 것이다. 학생은 그저 배우고 교수만 연구하는 대학이 아니라, 학생과 교수가 모두 연구를 하고 교수는 학생의 연구를 지도하고 지원하는 공간으로서 대학이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학생이 연구행위를 대학교에서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대학교는 학생들에게 사회현상을 더 많이 경험하게 함으로써 연구에 필요한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가설을 잡아 주도적면서 능동적인 학습의 기회를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핵심은 주도적/능동적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학생 개인의 연구욕구(왜 그러할까? 더 나아질 수는 없을까?)를 촉진하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