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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r 17. 2024

갓생살기 중독이랄까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는 연일 미세먼지의 습격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매일 미세먼지 측정 수치가 들쑥날쑥 하기는 한데 100 ㎍/㎥이 넘게 나오면 밖에 거의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이틀 간도 운동도 가지 못하다가 어제야 미세먼지가 80 ㎍/㎥로 떨어져서 운동을 하러 무에타이 체육관에 나갔다.


원래 저 너머에 산이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인다


여전히 목이 따갑고 날씨도 후덥지근했지만 운동을 하며 땀을 내니 세상 즐거운 것을 보면 나와 운동 사이에는 무언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어제는 평소 체육관에서 종종 대화를 나누는 태국인 10대 청소년이 (만나이 19세로 한국으로 치면 이미 성인이긴 함) 자신의 언니를 데려와 인사를 나누었다. 언니는 만으로 24세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운동이 끝난 후 이 친구들에게 한 시간 반을 잡혀서 대화를 하느라 집에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싫은 건 아니었지만 대화를 당했다고 해야할까...


대화의 주된 내용은 영어 공부, 다이어트, 한국 여행이었다. 지난 6개월간 나는 10kg 감량에 성공했고 이 친구들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라 나에게 이런저런 것을 많이 물어보았다. 원래는 동생인 친구의 이야기만 듣다가 오늘은 언니의 이야기까지 같이 들어주게 된 셈인데 자매가 비슷한 점이 참 많았다.


사실 이것은 이 자매의 특성뿐만이 아니라 태국인들의 전반적인 문화라고도 알고 있는데, 친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한국도 비슷하겠지만 태국은 특히 내가 속해있는 무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운동하는 루틴을 가져가고 식습관을 조절하려고 해도 자신이 속해있는 무리의 친구들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라고 말하면 그걸 거절하지를 못한다. 그래서 거절을 해야 한다, 내가 다이어트 중임을 주위에 알려라, 이 친구들이 20년 후에 니들 옆에 있을 것 같니?라고 말을 해주었는데 그게 자기네 엄마가 하는 말이랑 똑같단다. 아마 이 친구들 어머님이 나랑 나이차이가 크게 안 나겠지...


어쨌건, 내 이야기를 들으며 둘 중 언니인 친구가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 너는 나의 아이돌이야'라는 말을 하는데 순간 닭살이 돋아서 동공이 파르르 흔들리고 시선은 둘 곳이 없어 먼 곳만 쳐다보았다. 나는 성격이 독고다이인 것뿐이지 누군가가 본받을만한 사람은 아닌데.


치앙마이에의 나는 갓생살기(그러니까 건강한 생활루틴을 지키는 삶)를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 맞다. 생활 루틴도 잘 지키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밤이 늦으면 밖에서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 전체로 놓고 본다면 갓생을 살지 못한 기간이 더 길고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해서 언제 다시 모든 루틴이 깨지고 술주정뱅이로 돌아가버릴지 모른다.


개복치라고 해야 할까. 나는 아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생물이다.


태국에서 식단하기...심지어 목초를 먹인 소고기에 저당 소스를 뿌려 먹...는다...


어쩌면 나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산다는 생각도 한다. 갓생살기라는 것은 '어느 미래에 행복해져 있는 나'를 꿈꾸며 현재를 관리하는 것인데 여기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가끔은 정말 이게 맞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자꾸 의식이 미래로 향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욕망을 억제한다.


갓생살기를 하고 있으니 미래에는 지금보다 행복할 거야, 행복할 거야. 하지만 몇 년이 흘러도 계속 같은 상태에 머문다. 쓰다 말다 해서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몇 년 전에 쓴 일기를 찾아보면 그때의 고민이 지금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 몇 년 사이에 나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갓생살기에 중독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갓생살기를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인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건 생활이 엉망진창이 된다면 그래도 언제건 갓생살기를 하면서 다시 무너지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도 하다.


생각이 자꾸 현재에서 미래로 날아가려는 것은 몇 가지의 방법을 통해 해결하려 노력 중이기는 하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운동이고 그 이외에는 오토바이(귀여운 125cc)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이렇게 글을 쓴다. 이 세 가지를 하는 동안은 아주 확실하게, 나의 생각을 현재에 붙잡아 둘 수 있다.


그 이외의 시간은 현재에서 도망가려는 의식을 붙잡고자 하는 나와의 처절한 싸움이랄까.


어쩌면 이게 인생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한 상태에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고 영원한 성공도, 실패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답이란 건 없다는 것이다. 정답이 있다며 유튜브건 TV건 책이건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장사치다. 그래서 자기개발/계발이라는 분야는 레드오션이지만 절대로 업계가 붕괴하는 일 같은 것은 없을 것 같다.


대화를 나눈 태국인 친구들에게 조언을 해주기는 했지만 이건 그들의 인생이고 자신에게 맞는 삶은 본인들이 직접 찾아낼 수 있기를. 속으로 이 정도의 기원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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