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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r 17. 2024

개복치에게 희망은 있는가?!! (두둥)

#치앙마이 일년살기

바로 직전 글에서 '개복치'라는 단어에 꽂혀서 계속 이어서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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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복치가 맞다. 


개복치라 함은 조금만 뭐가 안 맞아도 쉽게 죽어버리는 생선으로 흔히 '멘탈이 약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나는 어려서부터 친구들에게 '너만한 개복치를 본 적이 없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어렸을 적(20대)은 내가 개복치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아주 명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했다. 나 자신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에 너무도 휩쓸려 다녔다. 


이는 나의 선천적인 기질일 수도 있고 부모님의 양육방식을 통해 그렇게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나의 부모님, 특히 아빠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기를 원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을 숭배하기를 원했다. 내 덕분에 이 세상에 태어났고 내가 준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나를 경배해라. 나는 이 집안의 신이다. 물론 신이라는 말은 직접 하지 않고 대신 '효'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내가 신이다'라는 말로 들렸다. 아빠는 본인의 성에 차지 않으면 폭력을 썼다. 이런 아빠에게 극도로 시달리며 20대가 되었고 20대 중반까지도 종종 기분이 상해있는 아빠에게 입에 담기도 어려운 비속어를 들으며 집을 나서곤 했다. 참 오랜 시간이었다. 


이렇게 자란 사람이 건강한 인간관계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성인이 된 이후에 사회에 적응하느라 너무도 힘들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사회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아빠처럼 대했다. 양가적인 감정이었는데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봐 전전긍긍 하면서도 나의 아빠가 그러했듯이 권위를 앞세우려는 모습이 보이면 경멸했다. 사실 이 경멸의 감정은 아빠에 대한 경멸이 투영된 것이었으리라.


여기서 엄마의 이야기도 돌아볼 필요가 있는데, 내 생각에는 엄마 역시도 개복치임이 분명하다. 다만 나와 상황이 다른 점은 엄마는 내가 있어서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나를 붙잡았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나를 더더욱 극심한, 최상급 개복치로 만들어줄 뿐이었다.


아빠가 되었건 엄마가 되었건 회사가 되었건,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는 남에게 풀지 못하고 나 자신에게 풀었다. 폭음, 폭식 같은 행동은 너무도 자기파괴적인 행동이어서 여기서 벗어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개복치에게 희망은 있는 것인가? 개복치는 이대로 망한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시달려오다가 '이제는 더이상 못하겠다'를 선언하고 치앙마이에 피신한 지금, 다행히 나 자신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보고 분석해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것만 해도 절반의 성공. 아무리 말해줘도 평생에 걸쳐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조차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6개월 이상 치앙마이에 머물며 내가 깨달은 점은 '개복치인 것은 어쩔 수 없다, 개복치에 걸맞는 관리를 해주자'이다. 이렇게 하면 개복치도 금방 죽지 않고 어째 저째 살아가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ai에게 슬픈 표정을 한 개복치를 그려달라고 해보았다^^


개복치가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해야할 것을 정리해 봤는데 다음과 같다. 


1. 인간을 함부로 인생에 들이지 않는다 : 개복치는 타인에게 영향을 너무 크게 받는다. 개복치는 독고다이로 살아야 한다. 이런 선택을 했을 때 주위에서 어마무시한 가스라이팅이 이어질 수 있는데 이 때는 잘 생각해봐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타인의 감정을 받아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개복치인 당신은 모두를 포용할 수 없다. 이 스트레스를 언제까지 술로만 풀어낼 것인가. 죽고 싶지 않다면 인간관계는 끊어내고 그럼에도 내가 마음을 줄 수 있는 몇몇 사람과만 느슨한 관계를 맺어라. (몇 명에게만 '집중'하면 그것도 또 문제가 된다) 그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에 가족이 꼭 포함될 필요는 없다. 


2. 끊임없이 자신의 상태를 기록하고 자각하라 : 1번과 이어지는 것인데 개복치는 타인에게 신경쓰느라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타인에게 정신 팔려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몇 년이 지나가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가 지금 '그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빠르게 인지하고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거의 10년 이상 발악을 해본 결과 나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였다. 의사가 환자일지를 작성하는 것처럼 내가 의사다 생각하고 나의 상태에 대해 기록해야 한다. 기록을 해두면 내가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죽기 일보 직전이 되는지에 대한 패턴을 파악하고 미리 대비할 수도 있게 된다.


3.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 개복치에게는 스트레스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스트레스 관리에 운동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운동을 하면서 내 몸에만 집중해보자. 30분이건 1시간이건 운동에만 집중하다보면 얼마나 경악스러운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감소시킬 수 있다. 개복치 중에서도 최상급 개복치인 내가 10년 이상의 자가임상실험을 통해 얻어낸 확실한 결과니 믿어도 좋다. 주위에서 나에게 '너는 운동을 좋아하는구나'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 좋아서 한다기 보다는 살기위해서 하다가 보니 잘 하게 된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4.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라 : 개복치는 가스라이팅 당하기 쉽다. 거절도 잘 못하고 타인의 감정을 나의 감정보다 우선시하니 타인이 시키는 것을 매우 열심히 할 공산이 크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이끌어주는 멘토를 만나 그/그녀를 따른다면 최상의 시나리오겠지만 인생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 쉽지 않다. 심지어 당신의 부모도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너를 위한 일'이라며 당신에게 강요할 것이다. 이 스트레스를 받아낼 자신이 있는가? 개복치의 생존을 위해서는 결국 종합적인 스트레스 관리가 필수인데 이를 위해서라도 당신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하며 그게 아니라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일'을 찾아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건설현장, 청소업 등 할 수 있는 일의 분야는 넓어지게 된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가를 두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잘 되었다. 그 사람을 인생에서 잘라내면 되고 앞으로도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인생에서 경계하면 된다. 


5. 집착하지 말아라 :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이 세상이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건 어디건 어떤 무리에 끼지 않아도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부모님 전화 정도는 안 받아도 그만이다. 돈은 없으면 나가서 쿠팡 알바라도 뛰면 된다. 남들이 다 하는 거, 갖고 있는 거 안 하고 없어도 내일 당장 죽지 않는다. 집착하지 말고 내비둬라. 번외로 이를 위해서 SNS를 끊는 것도 방법이다. 남들이 뭘 하는지를 모르는 것은 나의 정신건강에 매우 이롭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스트레스 지수는 한결 낮아지게 된다.


쓰다보니까 결국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내용인데, 내가 그동안 참 많이 시달렸구나 싶기도 해서 괜히 짠하다. 내 인생인데 타인에게 휩쓸려 다니느라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해야 했을까. 


어쨌거나 개복치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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