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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pr 05. 2024

40도의 무더위와 무에타이 스파링

#치앙마이 일년살기

40도.


최근 치앙마이의 날씨는 한낮 온도 40도를 넘나들고 있다.


작년 8월 즈음 치앙마이에 도착했을 때는 우기여서 조금 더워도 비가 내려 금방 가라앉았고 그 이후에는 겨울이어서 한국의 가을 날씨를 즐겼다. 이제야 태국다운 무더위를 즐기는(?) 중이다.


35도 정도까지는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40도까지 올라서니 에어컨이 없는 곳이라면 서서히 산 채로 익어가는 기분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는 바람까지 뜨겁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 중 등산이나 자전거를 탈 때 쓰던 팔토시가 있는데 치앙마이에서 오토바이를 탈 때 요긴하게 쓰는 중이다. 태국인들은 아예 두꺼운 자켓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던데 나는 그것까지는 무리고 팔토시 정도만 있어도 살만하다고 느낀다. 이 뜨거운 태국의 햇볕에 맨살이 노출되면 뜨겁다를 넘어서서 아프기까지 하다. 태국사람들이 바보라서 이 더위에 자켓을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닌 것.


반면 대다수 서양인 관광객들은 뜨거운 더위를 즐기듯 헐벗고 다니는데 안그래도 타인종에 비해 피부가 약한 양반들이 왜 저럴까 싶어서 안타깝기도 하다.


한낮에는 도서관이나 쇼핑몰 등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있다가 오후 6시가 되면 무에타이 수업을 들으러 간다. 무에타이 체육관은 사방이 다 뚫려있고 에어컨 같은 것은 당연히 없는 곳이기에 야외에서 운동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 가건물 형식이라서 햇빛은 막아주고 선풍기 정도는 돌아간다. 시설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태국 대부분의 무에타이 체육관이 이런 형식이다. 에어컨을 틀어주는 곳은 치앙마이에서 찾지는 못했는데 있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3500바트 하는 이 체육관 대비 몇 배는 비쌀 것이 뻔하다. 태국은 종종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하더라고 시설, 에어컨의 유무에 따라 가격이 2,3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나마 오후 6시 정도면 해가 져서 한낮의 무더위까지는 피해서 운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낮에 실컷 더위에 시달리다가 운동을 하니 확실히 몇 달 전에 비해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최근에는 스파링을 열심히 하는 중인데 어제는 부탄에서 온 키가 큰 남성과 스파링을 진행했다.


부탄. 그렇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종종 접하는 전 세계에서 행복 지수가 가장 높다는 나라 부탄.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부탄 사람이다. 이 친구는 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고 영어를 수준급으로 잘한다. 아주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까지는 아닌데 스파링에 있어서 만큼은 죽이 꽤 잘 맞는 파트너다.


이 친구는 키는 180cm 가까이 될 것 같고 운동신경도 좋은 편인데 매우 말랐다. 나는 키가 167cm인데 몸무게는 이 친구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이 나간다. 이 친구는 몸무게가 적게 나가서 내가 맞아도 크게 아프지 않고, 나는 나대로 몸무게는 무거워도 여자라서 이 친구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하게 연습을 할 수 있는 상대인 것이다.

(허나 나이는 내가 무척 더 많은 것 같아서 결국 내가 대단한 것...)


이건 나 말고 코치와 부탄 청년의 스파링, 코치가 부탄 청년을 갖고 놀...고 있다...


이 체육관에 와서 스파링을 처음 시작하던 5,6개월 전만 해도 스파링을 하자고 하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있다가 코치들이 답답해서 스파링을 멈추고 기술을 알려주고는 했다. 속수무책으로 맞고만 있는 게 무서워서 스파링이 두렵기도 했다. 스파링이라 하면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서로의 기술을 겨루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있어도 공격을 맞으면 아프다.


이렇게 계속 맞고 있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나서 유튜브 같은 것을 보고 따로 연습을 했다. 무에타이는 기술이 너무도 많은데 일단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기술 몇 가지만 중점적으로 연습했다. 나는 왼발을 굉장히 잘 쓰는 편인데 왼발 공격이 잘 먹혀들어가기 시작하자 다른 공격들도 살아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반대로 오른발 킥은 형편 없다. 스탯이 왼발에 몰빵됨)


한낮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이 더운 치앙마이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스파링을 하고 온몸은 멍투성이가 된다. 체육관에 돈을 내고 맞고 온다. ㅋㅋㅋㅋ 변태스럽긴 해도(?!) 맞으면 맞을수록 경험치가 쌓이고 더 강해지는 기분이랄까.


나의 엉망진창 우당탕당 회사 생활도 스파링의 일종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특히 치앙마이에 오기 전 1년여간의 회사생활은 끔찍할 지경이었는데. 난 그저 얻어터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경험치를 쌓았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낭비한 시간은 아니었을 거야. 부탄 친구와 한바탕 스파링을 하고 돌아와서 멍투성이가 된 허벅지에 약을 바르며 이런 생각을 해봤다. 몇 시간 후 다시 무에타이 체육관에 가는데 오늘도 스파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체육관 소속 선수들이 체육관 앞 공터에서 나름의 훈련을 진행한다. 에어컨도 없는 보도블럭 바닥이다. 운동 환경 보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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