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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pr 08. 2024

비둘기가 될 수는 없어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 생활도 어언 7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치앙마이 도착 후 한동안은 우울증 증상이 심해서 오토바이를 타지 않다가 작년 11월 즈음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하여 오토바이를 탄 지는 5개월이 되어간다.


다행히 그동안 사고 한 번 없이 오토바이를 탔고 지금은 자전거 타듯 편안히 운전한다.


하지만 항상 사고는 자만할 때 일어나는 법.


다행히 사고를 1cm 비껴갔지만 사고가 날 뻔한 일이 있었다.


집 근처에 있는 쇼핑몰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 쇼핑몰은 오토바이 주차장이 지하에 있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아주 좁은 편이라 오르내릴 때 주의해야 하는 곳이다. 평소에는 문제없이 잘 다녔는데 어제는 왜인지 모르게 위로 올라가려는 나와 밑으로 내려오려는 오토바이가 부딪힐 뻔했다. 너무 가까워진 상대방 오토바이에 깜짝 놀란 나는 오토바이 핸들을 왼쪽으로 양껏 꺾고 급정거했는데 그 힘 때문에 오토바이는 거의 옆으로 넘어지기 일 보 직전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힘이 아주 세고(?!!), 온 힘으로 버텨서 나의 소중한 오토바이님이 다치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나는 오토바이에 찍혀 다리에 멍이 들었지만 오토바이에 스크래치가 나는 것보다는 내가 멍이 든 게 더 나은 것 같은 건 왜일까.


우리 오토바이님


대체 여기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에서 기다리는 오토바이들에 밀리다시피 쇼핑몰을 빠져나갔다. 아마 평소에 내가 과속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이 정도의 해프닝으로는 끝나지 않았겠지.


그렇게 집을 향해 운전해 가는데 이 날따라 유난히 도로 위 죽어있는 여러 동물의 사체가 눈에 띄었다.


치앙마이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를 주로 타는 동남아 국가 모두가 그러할 텐데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와 차량을 피하지 못해 많은 동물들이 도로 위에서 명을 달리한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로 많은 동물 사체를 본 적은 없는데 아무래도 치앙마이는 도로 위의 오토바이와 동물의 수가 한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서 그에 비례하여 더 많은 동물이 사고로 죽는 것 같다.


동물들은 보아하니 비둘기와 쥐가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운전하다가 이런 사체를 보고 깜짝깜짝 놀랐지만 이제는 최대한 안 보고 지나가는 요령을 터득했다.


쥐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비둘기들은 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차에 치여 죽는 것인가. 항상 이런 의문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 위에 앉아있는 녀석들 코 앞까지 가도 안 움직이는 얘들을 보면서 '아니 저러면 죽어도 할 말 없네'라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까이 가서 본 녀석들의 표정은 세상 무해하고 '나는 아무것도 몰라 히히'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은 순식간인 것이다. 혹은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려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쉽게 이 세상을 뜰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참으로 뜻하지 않게 인생의 유한함을 다시금 느끼며 다시는 자발적 노예생활 같은 건 하지 말아야지. 뜬금없이 그런 다짐을 했다.


내 주위에는 '이것이 당연하다'며 나의 노동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누군가는 이것을 '효도'라고 했고 누군가는 '원래 사회생활이 다 이런 거야'라고 했다. 나는 그게 나를 죽이는 것인지도 모르고 도로 위 비둘기들처럼 '뀨??'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도망가지 않았다.


우울증, 폭식증도 걸려보고 알콜 의존증에 극심한 자기혐오까지 겪고 나서야 겨우 그 위험 천만한 도로 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있다.


지금 글을 쓰는 곳은 치앙마이 올드타운 구석탱이에 위치한 'kalm village'라는 곳으로 문화예술재단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 건물이다. 커피숍 2층에는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어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올라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다. 올 때마다 분위기가 좋아서 종종 취해있는 곳이다. 다행히 길 위에서 어정쩡하게 치여 죽지 않아서 지금의 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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