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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pr 10. 2024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치앙마이 일년살기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치앙마이에 도착한 초반에 읽기 시작한 책을 잊고 있었다가 최근에야 다 읽었다. 그 사이에 이런저런 책을 두어 권 읽었는데 책은 죄다 불안함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에 대한 책이었고 이 책도 그렇다.


나는 극도의 불안함을 겪는 중이고 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는 이 책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고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번 더 읽어볼 참이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완벽주의'가 인간의 삶에 엄청한 폐해를 끼치며 이것을 완화하기 위해 목표가 아닌 가치 지향적인 삶을 살고, 자기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한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책에서 말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의 피해자가 맞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불안했고 사업계획서의 PPT를 완벽하게 만들겠다며 새벽까지 일하고는 했다. 때로는 완벽하지 못할 것이 두려워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완벽하지 못한 나 자신을 지극히 싫어했고(현재 진행형) 이로 인해 내 선에서 인간관계에 선을 긋기도 했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내가 이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스스로가 당하는 노예st의 대우를 견디기도 했다.


책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성장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는데 에잇, 너무 뻔한데 맞는 말이다. 나의 부모님은, 특히 아빠는 나에게 가혹할 정도로 성과를 요구했다. 학창 시절 100점 만점에서 평균 93점을 받는 나름 모범생이었지만 잘했다는 칭찬은 받아본 일이 없다. 조금이라도 아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때로는 심한 매질이 이어졌다. 내 유년시절을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내가 결과만 중요시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갖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얼마 전 내가 다니는 무에타이 체육관에 영국인으로 보이는 백인 가족이 아이들의 무에타이 수업을 위해 찾아왔다. 끽해야 8살 정도로 보이는 깡마른 백인 소년은 무에타이 시합을 뛰어본 적이 있다고 했고 실제로도 보니 꽤 잘하는 편이었다. 이 친구는 계속 종알종알 자신이 느낀 것을 자신의 아빠 혹은 코치에게 말했다. '나는 이게 이런 것 같고 지금 다리가 좀 아프고 뭐뭐하고 뭐 뭐해요' 그러자 소년의 아빠는 그 말을 자상하게 다 들어주면서 괜찮다고 너는 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격려를 해주었다. 지금의 치앙마이는 기온이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더운 시기라서 어린아이가 운동하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을 텐데 소년은 힘들어하면서도 이걸 이겨내고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아마 이 친구는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어른으로 자라날 확률이 현저히 낮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완벽주의가 불안함의 원천이라면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 걸까. 이 해결책을 풀어가는 과정이 용두사미로 끝나버리는 다른 책과는 다르게 꽤나 상세한 편이다. 완벽주의를 이겨내기 위해서 내가 나에게 붙인 꼬리표를 떼어내고,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찾아내고, 이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행동전략 세우고, 현재에 집중하고, 나 자신에게 친절하고, 마음 챙김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은 방법론을 제시한다.


물론, 다른 책에서 제시하지 않는 독창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어디선가 비슷한 내용은 여러 번 접했었다. 다만 여러 환자를 접한 임상심리학자들이 저자여서 그런지 본인들이 하는 말이 도움이 되고 독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유행하는 자기 계발 서적에서 일부 저자들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자료조사'를 통해 쓴 책과는 확연히 다른 레벨이다.


[자기비판이 동기를 부여한다고?]
~~ 자기비판으로 괴로워하는 수많은 내담자들을 치료해 온 심리치료사로서 우리는 자기비판이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연료라는 신화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혹독하게 질책했고 당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성취한 것뿐이다. 말하자면 그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을 뿐 한 가지가 다른 한 가지를 유발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설령 그 인과관계가 분명하더라도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자신이 부족하다 여기며 그 비판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싶은가?
(책 일부 발췌)


책에서는 완벽주의의 신화 같은 존재인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 사회에서는 스티브 잡스를 영웅시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에게 '성공하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라는 메시지가 주어졌다고 말한다.


그게 이상적인 삶인가? 그래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오랫동안 스타트업이라는 업계에서 일을 했고 극단적인 성과중심주의에 물들어있는 조직을 많이 경험했다. 회사가 이 사회에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가 아니라 매출과 같은 결괏값이 더 중요하므로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이것이 부정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정신 나간 녀석들을 많이 보았다. 나도 그러한 생각을 강요당했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었다.


나는 지금 나도 모르게 이 책에서 해결방법으로 제시한 것들을 많이 실천하는 중이다. 내 인생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인지 생각해 보는 중이며 무에타이를 하면서는 결과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과정을 즐기는 법을 연습 중이다.


무에타이 스파링을 할 때 필요한 정강이 보호대. 스파링은 너무 어렵지만 매일 매일 이 어려움의 과정을 즐기는 중이다. 


여전히 나 자신에게 친절하거나 혹은 불필요한 생각이 떠오를 때 여기서 벗어나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은 잘하지 못하는데 책에서 제시한 방법을 좀 더 연습해 볼 요량이다.


어쩌면 완벽주의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타인의 노동력을 극한으로 착취하기 위해서 격려하고 장려하는 시스템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노동자가 회사에 머물면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극한으로 노력할수록 회사는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있을 테니 말이다.


요즘 '내가 너무 게으른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했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나 정도로 부모님, 회사 양쪽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시달려준 사람이면 이 정도는 빈둥거릴 자격이 있다. 치앙마이에서의 나는 더욱 더 격렬하게 나 자신만 생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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