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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pr 14. 2024

치앙마이 송크란 축제에서 집에 찌그러져 있는 사람

#치앙마이 일년살기

의례 그 해맑고 예의 바른 치앙마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태국 전역에서는 태국 최대의 축제인 송크란이 시작되었다. 송크란은 태국의 새해 기간을 의미하며 주로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행동을 하며 약 3일 정도 놀고먹는 날이다.


송크란에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의미는 외국인인 나야 정확히 모르지만 대체로 새해를 맞아 부정한 것을 씻어 내기 위한 의미라고들 한다. 내가 다니는 무에타이 체육관의 한 태국인은 '과거에는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존경의 의미로만 물을 뿌렸는데(?!) 이제는 그냥 놀고먹는 축제가 되었어'라고 하기도 했다. 뭔가 신성한 의미를 지닌 축제가 전 세계인의 워터밤 같은 축제가 된 것 같다.


와, 말로만 듣던 송크란이 무엇인지 깨닫는 중이다.


치앙마이는 방콕에 비해서는 얌전하게 축제가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심각한 경기도 오산. (?!!) 송크란 시작일을 기점으로 그 순진무구하고 '죄송해요'를 입에 달고 다니던 사람들의 눈빛이 돌변해 버렸다. 서스펜스 영화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결말부를 보는 느낌이랄까.


님만쪽 상황. 타패 게이트 부근에 비하면 소소하다


본격적인 송크란 축제는 4월 13일부터 시작되었지만 일주일 전부터 도시 곳곳에 축제 준비가 시작되었고 송크란 전야제인 12일부터 사람들은 슬슬 서로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안광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태국 문화에서는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은 극도의 무례함으로 여겨져서 이럴 경우 마음이 불편한 '크랭짜이'가 단어로까지 있을 정도다. 이렇게 '크랭짜이'를 외치던 태국인들이 송크란에 서로에게 과할 정도로 물을 뿌리는 것에는 얄짤이 없다.


물을 뿌리는 수준은 귀엽게 물총 정도를 쏘는 것이 아니다. 빠께스라고 해야 하나, 플라스틱 통에 물을 담아서 뿌리거나 아예 수도관과 연결된 호스 째로 물을 뿌린다.


물을 뿌리는 대상은 지나가는 사람, 차량, 오토바이 전부로 나도 오토바이를 타고 식료품을 사러 나갔다가 여러 번 물벼락을 맞아야 했다. 손을 뻗으며 '싫다'는 시늉을 하면 안 뿌리기도 하지만 물을 뿌리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번번이 손을 드는 것에 실패해서 그냥 나중에는 '이것도 축제를 즐기는 거겠지'라며 맞아줬다.


송크란 기간에는 문을 닫은 가게가 더 많이 보이지만 이 대목에 어떻게 장사를 안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길목에는 순식간에 물총, 음식 등을 파는 노점이 들어섰고 상인들은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물을 뿌릴 수 있는 일종의 보급기지 같은 것을 마련해 두고 본인들이 물도 뿌리고 축제를 즐기며 장사를 이어갔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 주인장...드럼통에 물 받아두고 뿌리고 있다


이렇듯 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게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고 일반인들은 트럭 같은 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차 위에서 물을 뿌리기도 한다.


거리에서 물을 뿌리는 사람들 말고도 시내의 어지간한 쇼핑몰 앞에는 대형 스테이지가 설치되어서 하루 종일 워터밤 같은 공연이 이어진다. 어제 지나가다가 본 공연은 헤비메탈... 공연이었는데 가수는 괴성을 지르고 공연장에서는 기계를 통해 물이 촤악~뿌려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퍼온사진, 치앙마이 마야몰 부근의 축제 인파


이렇게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은 손에 맥주를 들고 있었고 어째 어제부터 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더 잦아졌다. 작년 송크란 기간에는 태국 전역에서 거의 200명이 죽고 2천여 명이 다쳤다고도 한다. 올해는 더하지 않을까... 특히 오토바이가 위험해 보이는데,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는데 도로는 미끄럽고 누가 나에게 물까지 뿌리면 딱 황천길 가기 좋은 세팅일 것 같다.


이것 말고도 사람들이 극심하게 몰리는 구간에서는 소매치기에 성추행에 싸움에 난리가 나기도 한다. 참고로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 원정 소매치기단이 치앙마이에서 활동하다가 붙잡혀서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보도되었다. 그들은 곧 전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다는 태국 교도소 맛을 보게 되겠지...


그래, 내가 느끼는 송크란은 태국인들을 잡고 있던 어떤 규범이라는 것이 탁, 하고 놓아지는 기간이며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가세해서 마이너 한 버전의 세기말 상태가 구현되는 기간인 것이다.


내가 다니는 무에타이 체육관에서도 송크란 맞이 파티가 열렸고 나도 참여할 수 있었지만 다들 술을 마시고 정신을 놓고 노는 분위기라 결국 나가지는 않았다. 200일 넘게 금주 중인 나에게 송크란 축제 환경은 곳곳에 지뢰가 설치된 DMZ  같은 환경인 것이라.


목숨을 걸고 노는 태국 사람들을 바라보며 평소에 맺힌 게 많아서 축제에서 터뜨리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한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상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고마운 축제가 없을 것이다.


지나친 도파민을 피하기 위해 치앙마이에 머무는 나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잘 피해서 송크란 기간을 견뎌보려고 한다. 남들이 다 미쳐서 놀 때 그 반대로 행동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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