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당 Apr 20. 2024

송크란 명절 증후군

#치앙마이 일년살기

태국의 새해 명절이자 태국 최대의 축제인 송크란이 막을 내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도시는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았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을 그닥 즐기지 않는 나는 축제를 옆에서 구경하는 정도였지만 거리에 나서기만 해도 물을 맞아서 축제의 기분은 얼추 느껴본 것 같다.


내가 느낀 송크란 축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온 도시가 워터밤 축제장으로 변하는 시간'이었다.


도로가 클럽으로 변해버렸다


모두들 일 년 중 송크란만 기다린 사람들처럼 열심히 놀더라. 손에는 물을 뿌리기 위한 도구뿐만 아니라 종종 맥주와 담배가 쥐어져 있었고 젊은 남녀는 서로를 희롱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태국은 불교국가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성에 꽤나 개방적인 문화인 데다가 연인이나 배우자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끽'이라는 문화도 발달(?)되어 있다. 젊은 남성들은 아름다운 여성들이 다가오면 적극적으로 물을 뿌리며 자신을 어필했다. 이렇게 물 뿌리다가 서로 눈이 맞기도 하는 걸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지만 직접 가서 물어볼 수가 없으니 그저 멀리서 잘 되기만을 기원해 주었다.(!!)


하루만 신나게 놀고 과음을 해도 다음날 후폭풍이 거센데, 거의 4,5일을 이렇게 놀면 어떻겠는가? 한국에 명절 증후군이 있는 것처럼 태국도 그렇다.


ความเครียดในช่วงวันหยุดยาว 쾀크리앗 나이츄앙 완윳야오 / 긴 연휴 후 스트레스


태국인들이 긴 연휴를 보낸 후 겪는 증상이라고 하는데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오면 원래의 일상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가족 간 유대관계가 굉장히 좋은 편이라 고향에서 편히 쉬고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나면 직장에서는 그에 비해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나도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태국인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부족한 것 없이 사랑만 받고 자라는 편이라 사회라는 집단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잘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긴 연휴가 끝나고 나면 마음을 다잡지 못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날카로워지며 때로는 일을 그만두고 이직해 버려서 명절 연휴 이후 태국 전역의 이직률이 급상승하기까지 한단다. 송크란이 끝나고 무에타이 체육관으로 돌아가니 평소보다 사람들도 없고 코치들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다 이 명절 증후군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송크란 이후, 왜인지 쓸쓸해보이는 코치의 뒷모습


그러나 남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내가 태국 생활을 영원히 계속하지 않는 한은 나도 다시 사회로 복귀해야 하고 그렇다면 태국인들보다 더한 명절 증후군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적어도 사회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는 격지 않다가 다시 그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얼마나 화가 날까? 일단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부터 깊은 빡침을 느끼겠지...


나름 이곳에서도 루틴을 갖고 생활을 하며 술도 마시지 않는 중이나 오히려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 내가 만들어온 건강한 루틴이 와장창 깨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일을 하지 않아 보니,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확실히 깨달았다.


하여 다시는 출퇴근하지 않는 생활을 하지 않는 것도 고려하는 중인데 결심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영원히 백수로 지낼 수는 없고 일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기존에 하던 것처럼 출퇴근이 필요한 일반 사무직 업무가 아닌 다른 종류의 노동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블루 칼라' 직종의 업무라든지 혹은 재택으로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 일이 있을 것이다. 허나 좋은 직장에서 '화이트 칼라' 직종의 일을 하며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최고라는 가스라이팅에 평생을 시달려온지라 '이러다 내 인생이 정말 이대로 망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정된 태국 생활은 이제 고작 4개월 정도 남았고 그 이후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아직은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유기농 채소를 샀는데 그 안에서 달팽이가 나왔고 심지어 살아있었다. 조심히 집어들어 자연으로 방생.
매거진의 이전글 치앙마이 송크란 축제에서 집에 찌그러져 있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