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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pr 26. 2024

무더위와 불평등

#치앙마이 일년살기

24년 4월 말로 넘어가는 현재의 치앙마이는 흡사 재난 지역을 방불케 한다.


송크란 축제 기간이 끝나고 나면 미세먼지나 더위가 좀 사그라들까 기대했지만 되려 더 맹렬해졌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치앙마이 근처의 '치앙다오'라는 산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고 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우기도 평소보다 2~3주 늦춰졌다고 한다. 산불은 소수민족인 화전민이 낸 것이고 우기가 늦춰진 것 그저 지구의 뜻.


오후 시간, 미세먼지로 도시 전체가 뿌옇다. 앞에 산이 있어서 보여야 하는데 미세먼지에 산의 풍경도 감춰졌다.


창문을 열면 매캐한 연기 냄새가 올라와서 아침에 잠깐 환기시키는 것 이외에는 창문을 닫아두고 있으며 더위는 폭염경보 수준이다. 실제로 태국 북부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고 열사병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날씨에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숙소에 딸린 체육관에서 에어컨을 틀어두고 운동을 하거나 실내인 쇼핑몰로 대피하는 것뿐이다.


치앙마이는 주로 오후 늦게 온도가 높아지는데 3시에서 5시 사이에는 41도 정도를 유지하다가 7시가 넘어서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36도 정도로 떨어진다.


40도가 찍힌 스마트워치. 놀랐는데 다음날은 41이 찍혔다.


찬거리가 없어서 밤에 잠시 시장에 다녀왔는데 평소 대비 사람이 많았다. 원래 6시가 넘어가면 슬슬 가게들이 문을 닫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늦은 시간에도 손님으로 가득했다.


요즘 왜인지 모르게 꽂혀있는 태국식 김치인 '쏨땀', 삶은 옥수수, 삶은 고구마, 구운 닭다리 같은 것들을 샀다. 확실히 재래시장에서 구입을 하면 일반 쇼핑몰 대비 가격이 저렴하거나 양이 많다.

태국의 김치격인 쏨땀. 날이 더워지니 새콤한 쏨땀을 몸이 애타게 찾는다. 쏨땀과 소면을 하나 사서 같이 먹으면 훌륭한 한끼 식사가 된다.
시장은 장 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더위에 음식 해 먹는 것도 고역이니 이렇게 사 먹는 게 당연하다. 야채 손질한 것 작은 봉지 하나에 10바트, 400원이다.


헌데 구운 닭다리를 살 때는 약간의 바가지를 쓴 느낌을 받았다.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한 20바트 정도는 더 부른 것 같았는데 별로 큰 금액이 아니니 그려려니 했다. 하지만 20바트가 아니라 아저씨의 태도가 매우 별로였다고 해야 하나. 뚱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는 가격을 물어보니 '혹십(60)'이라고만 짧게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태국에서 상인에게 가격을 물어보면 숫자만 말하기보다는 '카(여성의 경우)나 캅(남성의 경우)'을 붙여서 대답을 하는데 이 아저씨는 한국으로 치면 나에게 반말을 찌끄린 것이다.


그렇다고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고 나는 다시 그 가게에 가지 않을 테니 장기적으로는 내가 아니라 그 아저씨의 손해라고 생각하며 시장을 떠났다.


하지만 또 반대로 생각을 해보면 40도가 넘어가는 날씨에 거의 하루 종일 에어컨도 없는 가게에서 일을 했을 테니 기분이 좋을 턱이 있을까. (물론 대부분의 상인들은 친절하다...)


날이 너무 더우니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누군가는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생활하기도 할 것이다. 최저 시급을 받는 태국인들은 하루 350바트(1만4천원)를 벌고 일반적으로도 하루에 500바트(2만원)가 안 되게 번다.


물론 모든 태국인들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태국인들은 한국의 강남 부자들 보다도 더 럭셔리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긴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 주인만 해도 외제차에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다니는데 뭐.


한국도 부의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태국은 부의 불평등의 갭이 너무 크다. 무더위에 누군가는 열사병으로 인한 죽음에 직면해야 하는 정도.


나는 그저 이 나라에 합법적으로 머물면서 소비생활을 통해 이 나라 경제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의 역할을 다할 뿐이지만 이렇게 확연히 보이는 부의 불평등을 보며 간혹 흠칫하게 된다.


마음이 썩 좋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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