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당 May 02. 2024

태국의 나이관념

#치앙마이 일년살기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있어서 골골 거리는 중이다.


최근 치앙마이의 최고기온은 43도를 찍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집 안이 온돌방처럼 후끈 달아오르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평소에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켜고 산다. 실내외의 온도차이가 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세먼지 때문인지 결국 목 안이 붓기 시작했고 살짝 미열도 있다.


오늘은 무에타이 수업에 나가지 않고 쉴 참이다.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이 정도로 몸이 안 좋은 거라면 무시하고 운동을 나갔다. '몸살인가? 운동하고 땀 빼면 괜찮을 거야!!' 주에 5일을 운동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풀지도 못하고 불안함을 견디지 못했다. 쉬는 것은 나태함의 상징이요 죄악처럼 느껴졌다. 운동을 이렇게 하는 만큼 다이어트가 되는 것이 눈에 보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항상 비만이었는데 이렇게 운동을 하고 식단관리를 하면 어느 정도는 탄탄한 몸을 유지할 수 있었고 부모님의 칭찬도 받을 수 있었다.


(아, 20대 후반 무렵 태국 푸켓에서 한 달간 운동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하루에 수업 3개, 6시간을 운동하고 그랬었다...)


항상 이런 운동 패턴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치앙마이에 와서도 비슷한 루틴을 유지했는데 덕분에 내가 지금 37세란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운동을 하면서 이 정도의 피로감과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다. 술을 끊었기 때문에 체력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생각만큼의 극적인 향상은 아직 없다. 내가 하는 운동이 상당히 운동강도가 높은 무에타이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코치와 함께 1:1로 훈련하는 'pad work'라는 것을 3분 4라운드 정도 하는데 1,2라운드가 끝나면 녹초가 되어서 4라운드 즈음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에 의의를 둘 정도로 피곤하다.


쉬는 날을 늘려보기로 했다. 주 6일을 무에타이 체육관에 가던 것을 4일만 나가고 나머지 3일은 하루 30분 정도 걷고 스트레칭하기. (조큼 불안하니까 아예 운동을 안 하는 날은 없기...)


이렇게 몸 관리에 변화를 주는 것은 나이 듦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처겠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 적은 없어서 꽤나 불안해하면서 대응하는 중이다.


언제나 체력이 만땅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체력이 꺾이는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는 이 시점. 이런 시기에 태국에 있다는 것은 꽤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태국의 나이에 대한 관념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태국은 나이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은 나이에 굉장히 민감하고,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젊은이 취급을 하지 않으며 특히 이것은 여성에게 매우 강력하게 적용되는 사회적 관습이다. 나의 나이에 집착하는 상대방을 보면서 '저 인간은 미친 건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면 태국은 연장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기저에 깔고 있다고 해야 할까? 나이가 많으면 오히려 대접해 준다. 태국인 어학원 선생님의 말로도 확인했다. 선생님은 태국 문화에서는 오히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찬밥 신세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태국인은 나의 나이를 들어도 그냥 그려려니 한다. Fact를 확인했다 정도의 반응이다. 한국처럼 나의 나이를 듣고 온갖 훈수 혹은 '너는 이제 가능성이 없는 나이구나'와 같은 의미를 담은 불쾌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를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아서 열 살이 넘게 차이가 나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태국인 여성 분들이 나이 많은 외국인 남성들과 결혼하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도 한다. 나이가 많은 여성과 결혼하는 어린 태국인 남성들도 더러 있다.


내가 다니는 무에타이 체육관에서는 50대 중년의 여성들도 운동을 하러 나온다. 트레이너들은 나이가 많다고 그녀들을 봐주지 않는다. 25세의 무에타이 코치가 50대의 여성 회원에게 장난을 치면서 아이처럼 웃는다. 한국이었다면 과연 가능한 풍경일까? 애초에 중년 여성들이 무에타이 같은 격투기 체육관에 발을 들이기도 어려울 것이고 코치들도 성심껏 가르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보다 열다섯 살은 어린 무에타이 선수와 스파링을 하면서 생긴 멍. 봐주는 것 따윈 없다. ^^


재밌지 않나? 그저 문화의 차이일 뿐인데 한국에서는 나이가 족쇄가 되고 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는 이것이 절대적 진리 같은 없다는 것의 방증이라고 생각해서 이 사실만으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아무리 주위에서 나의 가능성을 짓밟고 가스라이팅을 하려고 해도 이제는 그것이 사실이나 진리가 아니라는 걸 알았단 말이지.


그렇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운동량은 조금 줄이고 푹 쉬는 방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오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대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