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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진 Aug 31. 2022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퇴사천재방아깨비(2)

마흔에 엔터테인먼트사 오디션에 합격하고 인턴 쇼호스트가 되다

그랬다. 나는 텍스트가 더 친숙한 사람이라 TV자체를 원래 잘 보지 않고(유튜브도 마찬가지) 물건도 아주 신중히 사는 타입에, 홈쇼핑은 채널 넘기다가 스쳐지나갈 때 빼고는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라이브커머스는 심지어 '라이브커머스 쇼호스트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에야 처음으로 한 번 보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라이브커머스를 나는 3분 이상 진득하게 보고 있지를 못했다. 원래도 그다지 하이텐션은 아닌 내 성정은 번아웃과 우울증을 겪으면서 더욱 로우텐션에 가까워졌는데 라이브커머스는 온통 하이퍼울트라하이텐션 쇼호스트 대잔치였던 것이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을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일했으니 쇼호스트 하는 거 쉽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한다. 하지만 아나운서와 쇼호스트는 방송이라는 면에서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아나운서는 진행이 주 업무이지만 쇼호스트는 판매가 주 업무였다. 거기다 나는 아나운서를 할 때도 차분하고 낮은 톤, 특유의 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아나운서 보다는 사회부 기자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정말 저 친구들처럼 할 수 있을까?


'이걸 하는 게 맞는건가' 라는 깊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건 면에서는 이보다 나은 일이 없었다. 프리랜서라 일은 있을 때만 하면되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를 챙기고 살림을 돌볼 수 있는데다 사람들과 최소한으로 마주치는 일. 그래, 일단 해보자. 

 늘 그렇듯 나는 덥석 대형 학원을 등록하는 대신 국비지원 교육이 있는지 검색했다. 대형학원을 다니면 아무래도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도 생기고, 실력에 따라 선생님들이 추천도 해주기 때문에 초기 경력 형성과 네트워크에는 학원 만한 것이 없긴 하다. 그러나 일단 내가 처음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2014년에도 비쌌던 학원비가 더 많이 오른데다, 올해 초만 해도 위드코로나 이후 급증한 확진자 때문에 아이 학교는 전면 재택수업으로 전환하여 연명하다가 겨울방학을 맞았고 아이 아빠는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나를 전혀 서포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주1회 총4~5회 강의로 종료되는 국비지원 강의들을 수료했다. 수업의 질이 그렇게 높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기존 경력이 있기 때문에 발성과 발음 수업을 듣는다고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냥 라이브커머스는 어떻게 준비하고, 쇼호스트는 무엇을 잘 하면 되는지만 배우면 되는 것이었다. 


 몇 번의 강의와 실습 후, 나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포트폴리오를 돌렸다. 처음 두 주 정도는 시장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으나 곧 조금씩 일감이 생겨났다. 행사와 리포터, 아나운서 일도 종종 들어왔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어떤 오디션에서는 개념을 밥말아먹은 대표가 '혹시 산후우울증 아직 안 나았냐' 라거나 '평소에 안 웃죠? 지금 어떤 표정인지 내가 보여줘요?' 하며 면전에서 나의 텐션을 지적하기도 했다. (쓰다보니 다시 빡친다 개XX...) 거기다 아직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아니어서 일을 하면서 예전보다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정규 상근직으로 하루종일 회사에 시달리는게 아니다보니 그래도 심신의 밸런스를 어느정도 유지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라이브커머스 시장도 마냥 꽃밭인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이 옅어지고 만성화가 되어가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 시장은 극 초반에 진입하여 네임드가 된 사람들만 높은 개런티를 받고, 이미 레드오션이 된 후에 진입한 사람들은 열심히 한들 경력이 몸값상승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만두고 정말 리터럴리 쉴까 라는 생각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보자 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중, 언제 포폴을 넣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해 왔다. 나는 그 오디션에서 합격했고, 모든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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