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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진 Apr 25. 2018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_2

내가 필요 없는 회사 대신 나를 필요로 하는 내 아이를 선택했다

 회사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 시작한 후, 나의 아침 일과는 대충 이러했다.


- 6시쯤 일어나 내 출근준비를 한다

- 아직 자는 아이를 깨지 않도록 조심히 유모차에 옮겨 담요를 덮어준다

- 깨고나면 먹을 우유를 살짝 데워 우유병에 넣은 후 유모차를 끌고 나온다

   (매주 월요일에는 아이의 낮잠이불과 베게를 담은 내 상체보다 큰 이불주머니를 달고 나온다. )

- 대충 7시 언저리. 러시아워가 시작되기 전에 나와야만 지하철에 유모차를 끼워넣을 수 있다

- 지하철에서는 유모차를 붙잡고 승진포인트를 채우기 위한 Opic영어공부를 함.

- 7시반 강남역 도착. 강남역 지상으로 가는 엘레베이터가 고장났을 때는 정말 끔찍하다. 20킬로짜리 유모차를 들고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7시 40분 어린이집 도착. 곤히 자던 아이가 어린이집에 오자 깬다.

- 엄마랑 안 떨어지려고 우는 애를 어르고 달래고 정 안될 땐 매몰차게 떼어 놓고 출근한다 그게 8시에서 8시반 사이.


약 2시간에서 2시간 반이 걸리는 출근을 마무리 하고 나면 이미 그로기 상태다. 솔직히 난 재직시절 열혈 직원도 아니었고 S급 인재도 아니었다. 영혼까지 태워 일하던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저 때의 나는 '언제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직원 '이었다. 그냥 시키는 것만 하고 가능한 빨리 퇴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힘든 출근 후엔 너무나 많은 업무로 쓰러질 것 같았다'같은 거짓말은 하고싶지 않다. 다행히도, 언제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직원에게는 떨어지는 일도 별로 없었다.  8시에 어린이집에 간 두 돌 짜리를 12시간씩 어린이집에 두는 것이 잔인한 것 같았고(회사 어린이집은 아침 7시부터 저녁8시까지 보육해준다)대부분의 아이들은 할머니 혹은 도우미 선생님께서 4시정도에 데려갔기 때문에 내가 늦게 갈 수록 아이는 불안하게 엄마를 기다리며  집에 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종국에는 혼자 남아 "우리 엄마는?"하며 슬퍼하고 있음을 알기에 더욱이 야근 같은 것은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린이집 선생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다. 마지막 친구인 유찬이까지 가고 나서 '우리 엄마는?하며 조금 울었다고.)

 이 글을 보고 분명 사람들은 그러겠지. '이래서 여자는 뽑으면 안된다', '이래서 애 엄마는 안된다, 회사와서 애 생각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 단호하게 말하는데, 누군가 당신을 대신하여 이렇게 아이를 위해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마음 편하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당신을 대신하여 이렇게 아이를 위해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마음 편하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있는데 밤10시 12시에 데려가는게 뭐가 문제냐고 한다면 당신은 아이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인것이다. 더 정확히는 '남겨져서 기다리는' 처지에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되는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존재의 입장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공감불능 인간 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일에 몰두하느라, 혹은 빠질 수 없는 회식 때문에 데리러 못 오는 당신 때문에 밤10시 12시까지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자식을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은 그게 아내건 어린이집 선생님이건 간에 변함이 없다. 시터이모님을 구할수도 있었지만 솔직히 가족인 친할머니와도 가까워지지 못해서 내가 데려오는 마당에 비용도 만만치 않은 생면부지 남을 쓴다는게 어불성설이었다. 그럴거면 그냥 시댁에 두는게 나았다.

 의미 없는 회사 일과 유모차 무게에 아이 무게를 더하면 20킬로에 육박하는 대형 수레를 끌고 가는 대중교통으로의 출퇴근 길은 마치 시지프스의 형벌같이 느껴졌다. 친절하게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회사 어린이집 빼고는 이 생활을 유지하는 가치를 찾을 수 없었다. (퇴사하면 어린이집은 자동 퇴소된다) 그 해 실적 악화로 회사에 희망퇴직 소문이 돌았을 때, 나는 오히려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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