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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진 May 02. 2018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_4

제발 죄송하다고 굽신대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

 우리 딸의 유치원은 병설이라 셔틀버스가 다니지 않을 뿐더러 재개발 예정지역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주차공간도 없고 택시 같은 건 지나다니지도 않는다. 큰 골목까지 조금 나가면 택시와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딸을 하원하는 시간은 6시에서 7시 사이. 퇴근시간이랑 겹친 그 시간에는 평소 10분 간격이던 버스가 20분이 한참 넘어야 겨우 한 대 오는 수준이다. 집에서 유치원까지는 버스로 약 5정거장 거리로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집을 나서서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에 돌아오기까지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택시를 타면 줄어들긴 하지만 위에서 말했다시피 그 동네는 빈 택시가 지나다니는 걸 쉽게 볼 수가 없다. 가는 것은 마음대로 가도 나오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지역이라고 해야할까. 비라도 오는 날에는 스트레스 수치가 극에 달한다.

 남은 평생에 다시는 다니지 않기로 결심했던 회사를 다시 다니기로 하면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단 주 2회만이라도 나를 도와주실 도우미 선생님을 믿고 써 보기로 했다. 문제는 유치원이 집에서 차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라는 점. 내가 주로 신청하는 정부지원 아이돌봄서비스의 선생님들께서는 대부분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에 선생님들께서 차량을 이용하여 아이를 등하원시키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오로지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서만 아이를 픽업해주실 수 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의 선생님은 가스렌지 사용도 금지되어 있다. 오로지 전자렌지만 사용하시도록 가이드가 있다고 한다. 반면 구청 지원 사업의 선생님들께서는 어느정도의 집안일도 해 주신다)

 글로 쓰기에 구질구질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결국 나는 차로 유치원-집까지만 이동시켜주시는 라이딩 선생님을 별도로 구했다. 라이딩 선생님께서 유치원에서 아이를 픽업하여 아파트 단지 앞에 대기하고 있는 아이돌봄 선생님께 인수해주시는 형태로. 어제 밤에 빈도와 비용을 다 협의 하고 잘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오늘. 돌봄선생님은 미리 신청해야지만 오실 수 있기 때문에 지난주부터 신청해뒀는데 라이딩 선생님께서 오늘 아침에 '무사고지만 보험문제도 있고 해서 이 일 하기 어렵겠다고' 하셨다. 돌봄선생님은 당일취소 시 위약금이 발생한다. 아니, 위약금보다도 나는 라이딩 선생님이 구해졌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매주 금요일 5시에 시작하는 아이 발레학원도 끊어놨고 이제 정기적으로 주2회 집으로 오실 새로운 돌봄선생님도 구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건가 싶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이모넷 시터넷 셔틀링 사이트를 미친듯이 검색하며 운전이 가능한 새로운 선생님을 급히 구하려고  이모님들 연락처를 오픈하고 검색했다. 다른한편으로는 라이딩선생님께 남편이 보험사에 다니니 보험문제는 해결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며 카톡을 하는데 계속 얘기를 해 보니 라이딩 선생님께서는 결국 지불하는 비용이 마음에 안 드셨던 것이었다. 뭔가, 어이가 없고 허탈하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럼 첨부터 내가 제시하는 비용에 대해 협의 의사를 주시면 좋았는데 전날 저녁에 알겠다 해 놓으시고는 밤새 혼자 무슨 생각을 하셨던 것인지 다음날 아침에 다짜고짜 '어렵겠다' 라고 하신것이 알고보니 돈 더달라는 뜻이었다는게 나는 정말, 이게 뭔가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2회 라이딩을 해 주시는 것으로 협의가 되었지만, 오늘 하루 종일 뭔가 기운이 없고 처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오늘은 그 2회에 들지 않는 날이니 요청드릴 수기 없었다.

 결국 오늘은 내가 직접 애를 돌봄선생님께 6시까지 인수하기 위해 5시에 사무실을 나서야만 했다. 일찌감치 미팅을 가신 대표님께선 5시가 되어도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기에 카톡상으로 먼저 일어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사무실을 나선지 10분쯤 지났을까, 대표님께 전화가 왔다. 얼굴도 안 보고 그냥 나가면 어떻게 하냐고, 우리 회사가 5시 퇴근도 아닌데 이렇게 일찍 나가게 되면 미리 말을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화가 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 구질구질하다. 인생이 구질구질하다. 구질구질하게 구구절절이 '라이딩선생님이 비용이 맘에 안들어서 오늘 못 오시겠다 하는 바람에 돌봄선생님은 취소도 안되고 해서 결국 제가 직접 픽업해서 집에 데려다 줘야 하기 때문에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또 빌빌거려야 되는게 짜증이 났다. 그냥 되는대로 거짓말을 했다. 아이 병원을 예약해놨는데 정신없어서 잊었습니다. 라고. 그래, 나는 이런 구질구질하게 죄송하다고 빌어야 하는 상황이 진저리가 나서 회사를 다시는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대체 애를 키우면서는 왜 이렇게  죄송하다고 말 할 일만 태산같이 넘쳐나는 것인지. 일을 시작한 지 3주만에 퇴사 생각이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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