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한의사 Sep 10. 2019

카페 제스토리

2018년 6월 5일 - 6월 7일

카페 제스토리

 차를 타고 온 길을 걸어서 되돌아 가보기로 했다. 날씨는 덥고 땀은 삐질 삐질 났다. 걷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을 걷게 됐다. 포기하고 싶어 질 때쯤 멀리 카페인지 뭔지가 보인다. 차를 타고 올 때 기념품 판매점 같아서 그냥 지나쳤던 곳이 가까이 가서 보니 카페였다. 제스토리 라는 이름의 카페인데 1층은 기념품 판매점이고 2층은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엄마가 주문을 하는 동안 아빠는 너랑 기념품을 둘러봤다. 작가들이 직접 만든 기념품들이란다. 확실히 흔한 기념품들이랑은 좀 다르다. 기념품샵 안쪽에는 사진을 나무에 직접 인화해 주는 곳도 있다. 보기에 예뻤지만 딱히 하고 싶진 않았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한라봉 케이크가 나와서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걸어올라 가는데 벽에 걸린 장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판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써 놓았다. '좋은 생각났어 네 생각' '내 맘속에 그대가 분다~' 처럼 사랑이야기도 있고, '가끔씩은 나만 생각해도 괜찮아' 라던가 '아픔을 이기니까 청춘이다' 라거나 '넌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마음에 담아 두지 마 흐르는 것은 흘러 가게 놔둬' 같이 세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는 문장들이 쓰여 있다. 그 문장들을 보다 보니 7년 전 제주에 왔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앞서 말했듯이, 아빠는 올레길을 걸으러 제주에 왔던 적이 있다. 근처에 사는 도깨비같이 생긴 곽사부 아저씨랑 같이. 여행 둘째 날에 소낭이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는데, 저녁에 앞 뜰에서 손님들이 모두 모여서 바비큐 파티를 하게 됐다. 10월이라 방학시즌도 아니었고 성수기도 아니어서 보통 그 맘 때쯤 여행지에 오는 사람들은 다들 각자 사연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었다. 아빠는 그때는 별생각 없이 편한 마음으로 놀러 갔었지만 사람들의 이런저런 사연들을 들으면서 서로 위로도 하고 공감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파티가 마무리될 때쯤 소낭 촌장님이 일장연설을 했다. “여러분들 모두 각자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왔을 거예요. 실연을 당했다던지, 직장을 그만두었다거나, 인간관계에 지쳤다거나 더 큰 상실을 겪었다거나, 아니면 그냥 편히 쉬러 왔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왔을 수도 있겠죠. 제주는 참 좋아요. 아름답고 볼거리도 많아요. 그래서 여행을 왔다가 몇 달씩 눌러앉기도 해요. 다 좋아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야 해요. 여러분들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떠나 온 곳이라는 것을요.” 맛있는 바비큐에 술이 잔뜩 취해서 들었던 이야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당시 이 연설을 들었을 때 흥에 겨워 술판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다 된 밥에 왜 촌장을 뿌리지. 갑자기 웬 꼰대 같은 소린가.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삐죽거리고 말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