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어의 발견
혹시 로봇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정말 말을 못하는 인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억이 무색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대선 후보 시절과 대통령 취임 초기의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박 후보의 화법은 ‘정제된 단문단답형’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특히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반문하는 반어법은 꽤 유명합니다. “전방엔 이상이 없습니까”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라는 어록들이 대표적이죠. 이는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이미지로 이어집니다. 포용력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문어체 스타일이라는 게 단점입니다. 청중 입장에선 국어교과서를 읽는 듯한 지루함,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연합뉴스TV, 2012년 11월 20일 <대선상황실] 그들에겐 특별한 화법이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의 간결한 화법은 말 많은 세상에서 말의 적음이 오히려 더 강력할 수도 있다는 역설을 과시했다. 그의 다듬어진 문어체는 절제된 인격의 표현인 듯 고고한 인상을 주었고 때로는 비수처럼 예리한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 한겨레 2013년 10월 6일, <[염무웅 칼럼]- 참 나쁜, 더 나쁜, 가장 나쁜>
박근혜 대통령이 본래 보였던 말하기 양식은 이것이었다. 단답형으로 간결하게 문어체로 말하기. 그는 로봇처럼 말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인간과 로봇이 섞여서 함께 사는 곳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로봇으로 의심받았을 것이다. ‘국어교과서를 읽는 듯한 지루함, 답답함’은 그냥 생겨나는 인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말하기 양식은 ‘원칙’, ‘신뢰’, ‘절제된 인격’과 같은 긍정적인 가치로 연결된다. 이것도 로봇과 유사하다. 로봇은 원칙을 져버리는 일이 없으니까.
구어가 나타났다
문어체를 구사하는 인간 로봇 같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변화된 화법을 보여준다. 로봇이 자신 안에 인간성을 발견하고 각성한 것 같은 모습이다. 취임 초기에 보이는 용비어천가이겠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입에서 연일 비유(Metaphor) 화법이 쏟아지고 있다. 평소 딱딱하고 절제된 화법을 자랑하던 ‘정치인 박근혜’와 180도 달라진 말투에 당선인 주변 사람들도 놀랄 정도다. 대선 승리 때까지 늘 긴장과 절제 화법을 써야 했다면 이제는 여성 대통령이라는 차별된 리더 모습을 구축하기 위해 부드러운 통치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당선인이 최근 분과별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쏟아낸 대표적 비유 화법은 ‘손톱 밑 가시’와 함께 ‘신발 안 돌멩이’다. 그는 지난 25일 경제1분과 토론회에서 “신발 안에 돌멩이가 들어 있어서 걷기가 힘들고 다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며 새 정부가 현장 애로사항 청취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틀 뒤 경제2분과 토론회에서는 ‘분만실 산모, 정책의 등대’ 등 더 많은 비유 표현을 제시해 인수위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연일 소탈한 단어들을 조합해 제시하는 박 당선인 비유법에 대해 심리학과 교수들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해석한다... 이 관계자는 “비유는 이해하기도 쉽지만 그래서 더욱 머릿속에 오래 남는 특성이 있다”며 “당선인이 의도적으로 비유를 쓰는 것은 고압적이고 일방향적인 공무원들에게 자기 메시지를 되도록 오래 기억하게 하려는 고도의 통치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 매일 경제 2013년 1월 28일, <박근혜 당선인, 절제 화법서 비유 발언 변신>
최근 들어 박근혜 당선인은 자신의 국정 비전과 철학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금강산 구경을 가자 그래도, 다 좋지만 손톱 밑의 가시 때문에 흥미가 없는 겁니다. 이것부터 해결을 해야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활용하고 유난히 현장을 강조하는 박근혜 당선인의 변화된 화법엔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 SBS 8시 뉴스 2013년 2월 2일, <내가 가봤더니...박 당선인의 달라진 화법>
취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말하기 양식에 대해 언론들은 ‘귀를 사로잡았다, ‘소탈한 단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등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또한 언론들은 ‘여성 대통령이라는 차별화된 리더- 부드러운 통치 화법’, ‘고도의 통치 기술’과 같은 표현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말하기 양식을 통치자로서의 훌륭한 자질과 연관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긍정적인 평가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다.
“신발 안에 돌멩이가 들어 있어서 걷기가 힘들고 다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금강산 구경을 가자 그래도, 다 좋지만 손톱 밑의 가시 때문에 흥미가 없는 겁니다. 이것부터 해결을 해야지.”
어떻게 느끼셨는지?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말이었다면 ‘박근혜 번역기’가 어김없이 등장했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말하기 양식의 변화를 문어체를 탈피하고 ‘비유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비유법의 문제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취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문어체 말하기를 버리고, 실제 자신의 입말 즉 구어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서 잠깐,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구어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자. 여러분들이 실제로 하는 말들을, 즉 구어를 녹음하여 전사한다면 단번에 하나의 특징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특징이란 바로 ‘무질서’와 ‘규칙 없음’이다. 음운 층위에서 구어는 음운의 변화, 축약, 첨가 현상(근까, 이케, 쌩맥주, 짤르다)이 많이 나타나며, 형태·통사 층위에서는 문장이 단순하고, 축약이나 문장 성분 생략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어순이 도치되거나(참, 애매하잖아. 그게.) 연결어미로 문장이 종결되는 현상(그게 내가 옛날 드라마를 보고 있어가지고.), 부사어 같은 말들이 반복되는 현상(너무너무, 어디어디), 문장 문법의 관점에서 보면 주술 관계가 맞지 않는 구어 자료도 실제로 많이 나타난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구어는 정말 엉망진창인 것 같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구어를 ‘비문법적인 것’ 또는 ‘규칙화될 수 없는 자유로움을 가진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이는 문장 문법 즉 문어의 관점에서 구어를 바라보고 기술했을 때 나타나는 인식이다. 우선 구어는 ‘문장’으로 포착될 수 없다. 구어의 기본 단위는 문장이 아닌 ‘억양 단위’이다. 쉽게 말해서 억양 단위는 우리가 한번 숨을 들이마신 후 내쉴 때의 시간이다. 즉 숨을 마셨다가 뱉으면서 말을 한다. 따라서 구어는 문장으로는 기술될 수 없는 내재적인 규칙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장이라는 틀로 구어의 현상을 바라보면 구어는 설명이 불가한 무질서와 혼돈의 표본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구어 발화는 이러한 문장 문법의 관점에서 기술되고 비판받았다.
고귀한 분이 몸을 낮추어 우리의 비천한 언어로 말을 거시다
다시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의 발화 양식의 변화로 돌아가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비문법적인’ 구어 발화를 선보였지만, 오히려 언론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이러한 반응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활에 대한 언론의 반응과는 대조적이다. 왜 그런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변신에 대한 언론의 호응은 부르디외가 분석했던 프랑스 베아른 지방의 한 신문 기사를 연상시킨다.
부르디외가 분석한 기사는 표준 프랑스어가 아닌 베아른어(Béarn)가 사용되는 포(Pau)라는 도시에서 이루어진 한 시인에 대한 수상식을 다룬다. 베아른어로 시를 쓴 시인에 대한 수상식에서 포의 시장은 표준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고, 공식적인 상황에서 표준 프랑스어만 허용됨에도 불구하고 베아른어로 연설을 한다. 그리고 이를 신문 기사에서는 ‘감동적인 배려’라고 평가한다.
부르디외는 이 기사를 분석하면서 시장의 연설이 ‘감동적인 배려’가 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한다. 첫 번째 조건. 시장의 연설이 감동적인 배려가 되려면 프랑스어가 공식 석상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합법적인 언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두 번째 조건. 베아른어로 연설한 시장은 여러 측면에서 우월한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조건. 포의 시장은 충분한 프랑스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되어야 한다.
정리하면 표준 프랑스어를 충분히 구사할 능력이 있는 높은 지위의 시장이 프랑스어를 사용해야하는 상황에서도 ‘일부러’ 베아른어를 구사해야 ‘감동적인 배려’가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화 양식에 대한 초기 평가도 이와 유사하다. 즉 박 대통령이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언어 자본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와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전제했을 때야만, 공식석상에서 통속어를 사용하는 박대통령의 발화는 상징적인 이윤-즉 언론의 호의적인 평가-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언론의 반응은 언어 자본을 갖추지 못한 인물로 여겨졌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응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드디어, 구어 발견!
그러나 소위 국정농단 스캔들 이후, 박 대통령에게 대통령 지위에 맞는 언어 자본이 없다고 판단된 뒤의 언론의 태도는 정반대로 바뀌게 된다. 상징적인 이윤을 가져왔던 박근혜 대통령의 발화 양식은 박근혜 대통령이 통치자로서의 자질 없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인용된다. 임금님의 옷이 비단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까 누더기였던 것이다.
3일 문화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최 대표는 기자간담회 당시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만연체여서 주어와 목적어가 자주 분실되거나 뒤섞이는 바람에 어법이 맞지 않는 ‘연상지체’ 현상을 보인다”면서 “더구나 자신은 오류가 없다는 착각에 빠져 도무지 사과할 줄을 모른다”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박 대통령이 불필요한 부사어를 애용하는 버릇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뭐 이렇게’, ‘굉장히’, ‘또’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만연체의 단점이고 어휘력과 논리적 조어 능력이 결핍된 사람들에게 흔히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최 대표는 “박 대통령은 TV드라마를 통해 배웠을 법한 저급한 단어를 수시로 썼다”고 비판했다. 최 대표는 그 예로 ‘뒤로 받고 그런 것’, ‘확 그냥’ 등을 들며 “일상 속에서도 잘 쓰지 않을 말들을 여과없이 보여줬다”면서 “미리 준비된 원고나 수첩이 없는 자유로운 질의응답 시간에 특히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말이 길어지면 주어와 목적어, 또는 서술어가 꼬이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최 대표는 “정부 시책으로 잘 펴 보자, 그리고 또 특히 그런 문화 쪽이나 창업할 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젊은이들이 있잖아요”라는 대통령의 말을 문장의 앞뒤가 어색하게 연결된 예로 들었다.
- 조선일보 2017년 1월 3일, <‘박근혜 화법’ 전문가, 박대통령 말 분석…“확, 그냥, 뭐 이렇게” 드라마서 배운 저급 단어 사용>
자칭 언어전문가가 지적하는 주어 등 주요 문장 성분의 생략 현상, 잦은 부사어 사용, 주술 관계가 맞지 않는 문장의 사용 등(이것 모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구어의 특징이다)은 대통령 취임 초기의 발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캔들 이후, 언론은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 통속어를 발견하게 된다. 통속어가 가진 여러 성질 중 언론은 구어성에 주목한다. 다만 언론은 그것이 구어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문어의 잣대로 박 대통령의 발화를 비판한다.
문장은 흔히 그 사람을 드러낸다. 문장의 길이와 깊이는 사고의 그것들과 일치한다. 그녀의 문장은 독해가 되지 않았다. 번역기가 출현했다. 대통령의 문장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국어 교육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반면교사였다. 긴 문장은 구사하지 못했다. 아니 긴 문장은 사용했지만 거의 비문이었다. 그러니 주어가 없는 짧은 문장만 나열했다. 적어놓은 걸 읽지 않으면 3분 이상 발언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미리 적어둔 거 없이 3분 이상 발언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 경향신문 2016년 12월 1일, <[김경집의 고장난 저울] 그림자놀이는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대한 비판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박 대통령이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윗글에서는 언어 사용 능력 더 정확히는 문어 사용 능력을 사고 능력과 연결시키는 일종의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언어의 빈곤, 더 정확히는 문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것이 대통령의 빈약한 사고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와 사고를 매우 소박하게 연결시키는 사피어-워프 가설은 언어학계에서 이미 기각된 지 오래이다. 물론 언어와 사고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은 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매우 매력적, 그리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제한된 코드 대 정교한 코드
박 대통령의 문제는 사피어-워프 가설보다는 영국의 사회학자 번스타인(Bernstein)이 제안한 ‘제한된 코드(restricted code)’라는 개념에 부합한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번스타인은 중산 계층 아동과 하류 계층 아동의 언어 사용 방식을 연구하여 두 집단의 말하기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중산 계층 아동들의 언어를 ‘정교한 코드(elaborated code)’로, 하류 계층 아이들의 언어를 ‘제한된 코드(restricted code)’로 규정하였다.
먼저 정교한 코드(elaborated code)는 다양한 어휘 사용, 통사 규칙을 잘 준수한 복잡한 문장 생성, 접속사의 적절한 사용을 통한 논리적 전개를 특징으로 한다. 정교한 코드의 특징은 맥락독립적이기 때문에 특정 내용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아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제한된 코드(restricted code)는 단순한 접속사의 반복 사용, 단문이나 미완성된 문장의 사용, 의미전달을 위한 강세나 억양 등 비언어적인 요소의 동원, 짧은 의문문과 명령문의 사용, 직선적이고 개인적인 표현 사용, 상대방의 배경지식을 전제로 하는 대화 진행 등을 특징으로 한다. 제한된 코드는 맥락 의존적이며 배경 지식을 공유한 소수의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사용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암시적이고 함축적이다.
그런데 번스타인의 코드 이론은 결정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번스타인이 정교한 코드와 제한된 코드라고 명명했던 것이 다름 아닌 각각 ‘문어’와 ‘구어’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번스타인은 ‘문어’와 ‘구어’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이를 특정 계층의 언어적 특질과 연결시키는 우를 범했고, 이는 번스타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시 하류 계층의 아동들이 언어적, 인지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결손 가설(deficit hypothesis)을 지지하는 근거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 발화의 많은 특징도 다름 아닌 ‘구어’의 특징에 해당한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소위 언어 전문가가 박근혜 대통령 발화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것들 중 일부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 대화 속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구어의 양상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구어에서 그 현장과 맥락을 제거해 버리면 그 내용을 인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구어를 바라보면 문제적인 언어 사용으로 인식되기 쉽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발화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그가 정교한 코드, 즉 문어체의 발화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적인 상황에서 문어체로 자신의 사고를 정리해서 전달하고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한 훈련이 필요하다. 번스타인의 연구에 따르면 하류층 아이들은 경제적 여건 때문에 이러한 교육을 받지 못하며, 그 결과 정교한 코드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화는 그가 국가 최고 통치자의 자제였지만 역설적으로 정교한 코드를 이용한 공적 의사소통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박대통령의 발화에서 나타나는 구어적인 특징 자체를 ‘문제’로 파악한다. 능숙하지 못한 문어 사용 양상을 언어 구사 능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구어는 문제가 많은 불완전한 언어이자, 저급한 사고 능력과 수준을 드러내는 표지가 된다.
고도의 통치술에서 정신병리의 문제로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말하기 양식이 대통령 취임 이후 바뀐 것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연출되지 않은 그의 구어가 언론에 의해 노출될 기회가 늘어난 것일 뿐이다. 국정 농단 스캔들을 계기로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비로소 ‘구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발견한 것은 맥락이 제거된 상태에서는 해독이 불가능한 불완전한 언어였고, 이는 아래의 인터뷰 기사와 같이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적, 인지적 결손(deficit)을 증명하는 데 동원된다.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는 취임 초기부터 중기까지 원활한 통치를 위한 방법론으로 그려지다가, 촛불 시위 이후 정신병리학적으로 다루어진다.
신간 <박근혜의 말>(원더박스 펴냄)은 “대전은요?”로 대표되는 박 대통령의 언어를 해석한 책이다. 언어와 생각 연구소 공동 대표인 한국어 연구가 최ㅇㅇ는 <박근혜의 말>에서 박 대통령이 심각한 언어 장애를 앓고 있고, 이 때문에 무대공포증 역시 앓아 타인과 대면하지 않는 특유의 정치 행보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불완전한 언어 체계는 박 대통령의 사고 체계도 극도로 단순화했고, 그 때문에 그는 피아만이 존재하는 흑백의 세계에 갇혀 정치 복수극을 이어갔다고 했다. 무엇보다, ‘왕의 언어’와 ‘길거리의 언어’ 사이를 오가는 그의 말에서 민주주의자가 아닌 공주 박근혜가 뚜렷이 드러난다고 했다.
최ㅇㅇ : 쉽게 말해 언어발달장애를 앓는 인물이다. 불운한 사람이다. 박근혜 뿐만 아니라 박근령, 박지만 역시 어느 정도 언어발달장애를 앓는다...(중략)...언어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그에 따라 사고도 발달하지 못한다. 하이데거는 “언어가 사고의 집”이라고 했다. 박근혜의 사고도 비정상적이다.
최ㅇㅇ : 박근혜 말의 가장 큰 문제는 앞뒷말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술관계가 완전히 불일치한다. 놈 촘스키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심층구조(deep structure)에 문제가 있다. 촘스키에 따르면, 사람의 심층구조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발달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심리가 불안정해졌고, 이 때문에 언어 발달 구조가 불완전했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공주로 비유될 만큼 우아한 삶을 살았음을 모두가 안다. 최근에는 변기도 남들과 같이 쓰지 못한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말을 아무리 못해도 기본적으로 고상한 언어를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말은 때로 충격적일 정도로 공격적이고 솔직하다. 왜 그럴까?
최ㅇㅇ : 결국 박근혜는 TV와 인터넷에서 거친 말을 학습했다. 하지만 외양으로는 공주로서 결벽을 추구했다. 이 불일치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그가 긴장하지 않았을 때, 화났을 때 감정적으로 내뱉는 말을 보면 그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길거리 용어, 인터넷 용어가 마구 튀어나온다.
최ㅇㅇ : 정치인 박근혜 언어의 특징은 한 마디로 ‘언어 성형’이다. 물론 모든 정치인은 언어를 성형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교정(political correctness, PC함)이다. ‘감옥’이라는 말이 부정적이니 ‘교도소’로 수정하는 식이다...(중략)...하지만 박근혜 언어 성형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무식함을 숨기려 화려함을 억지로 구사한다.
- 프레시안 2016년 12월 22일, <‘근혜체’, 무지가 과시욕을 만나다-인터뷰 ‘박근혜의 말’ 저자 최ㅇㅇ>
위의 인터뷰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대한 책을 출간한 자칭 언어 전문가가 진보 온라인 매체와 한 인터뷰 내용이다. 이 인터뷰의 내용은 궤변으로 가득 차 있는데 특히 촘스키의 ‘심층 구조’와 관련된 발언이 그러하다. 촘스키가 말하는 심층구조란 환경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득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언어학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단번에 궤변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발언들은 탄핵 정국과 맞물러 진보 언론뿐만 아니라 조선일보와 같은 보수언론을 포함한 많은 언론사에 소개되어 반복, 재생산되었다.
이 유사 언어 전문가는 인터뷰의 여러 궤변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제대로 된 언어를 갖지 못한 ‘비정상’의 범주로 넣어 버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그의 발화가 통치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사회적 계급의 표지임을 보이는 방향으로 담론이 구성되었다면, 위 인터뷰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화를 정신 병리의 문제를 가진 ‘환자’의 표지로 설명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정상적인 언어능력을 갖지 못한 존재로 묘사한다는 것은, 박대통령이 언어를 통한 ‘사고 능력’이 떨어지며, 사회와 격리되어(그래서 TV와 인터넷에서 거친 말을 학습했던 것이다) ‘언어를 통한 교류’를 할 수 없었던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국어’(national language)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는 18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계몽 언어학의 기획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스야 케스케에 따르면 계몽의 언어학에서는 언어에 의한 교류만이 인간에게 있어서 ‘내적 세계=사고’와 ‘외적 세계=사회’를 연결하는 유일한 계기라고 여기고 그 반대항에 언어가 결여된 존재인 ‘야생아’와 ‘농아자’를 타자로 설정하는데, 위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로 박근혜라는 인물을 언어를 통한 교류를 하지 못해 정상적인 언어를 가지지 못한 존재로 타자화하고 있다.
위 인터뷰에서는 여성 혐오도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을 ‘공주’로 지칭하거나, 편견을 배제한 용어 사용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란 용어를 ‘언어 성형’이라고 부르면서, 언어적 결손을 ‘여성성’과 연계시키는 모습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예스퍼슨(Jespersen)이 여성어의 특징을 여성의 언어적⋅인지적 피상성에 기인한다고 해석한 이래 이러한 시각은 흔하게 볼 수 있으나, 위의 인터뷰가 흥미로운 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화를 단순하게 여성성과 연관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여성상(‘공주’, ‘성형’을 안 한 여성)을 설정해 놓고, 박근혜 대통령을 그러한 여성상에서 벗어난 범주-발달이 멈춘 미성숙한 여성-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어가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하라
박근혜 대통령의 발화에 나타나는 언어적 ‘결손’이 ‘언어 발달 장애’를 주장하는 것만큼 심각한 ‘결손’인지 따져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조리 없이 말을 하는 것이 정도가 심한 것은 맞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그의 말을 바라보는 기준이 구어가 아니라 문어라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화의 문제점들은 구어를 ‘문어’의 기준으로 분석하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대통령 발화의 문제점은 그의 발화가 ‘구어’여서가 아니라 정교한 코드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발화는 문어 스타일로 말하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인지적 장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화 중 번스타인이 ‘제한된 코드’라고 착각했던 구어성에 주목하고 이를 비정상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담론이 문어 문법을 바탕으로 구축되고 있는가? 그리고 왜 구어의 특징은 비정상의 범주로 분류되는가? 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 발화를 둘러싼 담론 구축 과정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어라는 체제의 헤게모니 장치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는 언어 규범으로 구체화되는데, 가스야 게스케에 의하면 국어라는 체제는 이러한 언어 규범이 ‘국민’ 전체의 구어 영역에도 규범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야 확립된다. 근대 국가에서 방언과 소수 언어를 향한 억압 정책이 탄생하는 것은, 언어 규범이 모든 구어의 영역을 포괄하려고 하는 권력 의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 규범은 문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어 규범이 구어의 영역을 포괄하게 한다는 것은 결국 문어의 규칙을 구어에 적용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언어 규범을 구어에 적용한다는 것은 국민의 일상에서도 언어 규범이 작동함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국어 체제의 헤게모니 회로 안에서 ‘국민’은 문어의 규범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실제 구어 발화가 그러한 규범을 따르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이를테면 한국인들은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우연히 자신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구어의 모습을 발견했지만, 국어라는 헤게모니 장치는 한국민들이 그 구어의 모습을 비정상으로 여기게 만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