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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boran Oct 24. 2021

[실내의 백가지] ep10. 반려 생활

100 things i've never done

반복된 일상에 뻣뻣해진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자, 해보지 않았던 백 가지를 행동해보며 남기는 일상 기행문. 어쩌면 실내가 아니어도 좋다. 비루해도 좋고, 지루해도 좋다. 새로운 것, 혹은 잊고 있었던 그 어떤 것이든 환영하는 경험주의 일기장.




코시국을 맞으면서 재택근무에 대한 나의 만족도는 100퍼센트에 가까워졌다. 이 당연한 백분율 중 60%는 노브라에 눈곱 낀 상태로 격무에 열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고, 나머지 40퍼센트의 만족은 귀여운 고양이 보고와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반려 생활에는 5살 코숏 고양이 한 마리와 32살 남자 한 명이 있는데, 오늘은 이 두 수컷 중 좀 더 귀엽게 생긴 친구 보고에 대해 남겨보려 한다. 





10/100, 반려 생활



2020년. 본격적인 코로나 발 집콕이 일상화되면서 전국의 강아지들은 산책을 못가 당황해하고, 전국의 고양이들은 집사들이 집에만 있어서 행복해한다는 우스갯소리가 sns 밈으로 떠돌았다. 보고 역시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주말만 되면 휑하고 사라지던 집사 놈들이 낮이고 밤이고 집에만 붙어있으니 말이다.











보고는 비가 많이 오던 날, 대학가 놀이터 밑에서 발견된 길냥이 었다. 감사한 선배의 임보를 거쳐 생명을 구할 수 있었고, 남자 친구였던 정환이에게 입양되어 2016년 당시 그의 자취방이었던 무거동 고려원룸에서 무럭무럭 커나갈 수 있었다. 내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나는 매주 금요일 강의가 끝나자마자 시외버스 터미널로 날아갔던 기억이 있다. 보러 가는 와중에도 보고 싶어서 영상 통화까지 하게 만드는 극한의 귀여움이 아가 보고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와 내가 모두 직장인이 되었을 때, 안타깝게도 나는 나에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던 사이였고, 그렇다면 보고 역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이기에 그저 증세가 심각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토록 혐오하던 주사까지 맞아가며 받아낸 알레르기 검사표에서 나는 고양이 알레르기 수치 66이라는 결과를 받아야 했다. 참고로 나는 집먼지 알레르기도 굉장히 심한 편인데, 검사표가 밝혀준 내 집먼지 알레르기 수치는 고작 0.03이었다.


신혼집 입주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예비 동거인 정환이는 많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xx텍으로 끝나는 알레르기 약 종류는 다 먹어봐도 소용이 없고, 한의원도 가보고, 별의별 미신 같은 방법까지 다 해봤지만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 큰 성묘 보고를 누군가에게 보낸다는 것은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선택지였다. 정환이와 보고가 나의 알레르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은 나 역시 원치 않았다.


신혼집으로의 이사를 한 달 앞둔 어느 날, 나는 현대인의 마지막 답안지인 '면역력'을 위해 편식과 야식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정환이가 나의 눈코입을 위해 보고를 어디론가 보내버릴 것만 같았다. 면역력이 내 마지막 지푸라기인 셈이었다. 매일 운동하고, 8시간 이상 잠을 자고, 채소를 듬뿍 곁들인 식사로 세 끼를 채웠다. 이 패턴을 꼬박꼬박 지키며 몇 주 정도 버티다 보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었다. 하지만 피부가 좋아지고, 부기가 빠졌고, 알레르기가 점차 완화됐다. 그렇게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이 패턴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겠지만, 보고와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해답을 찾았다는 생각에 우리는 안심하고 이사를 마쳤다.


그사이 우리는 미혼에서 기혼이 되었다. 다들 알겠지만, 웬만한 신혼의 일상에서 야식과 늦잠과 음주는 빠질 수 없는 요소들이다. 기분 좋게 넷플릭스를 보며 치킨에 맥주를 뜯다 늦게 잠들면, 다음날 꼭 알레르기가 올라온다. 그럼 그다음 날은 무조건 운동을 하고, 가벼운 식단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럼 그다음 날엔 알레르기 증상이 없다. 정말이지 귀찮은 패턴이다. 하루만 불량하게 보내도 다음날 알레르기 적신호가 뜨는 걸 보면 내 몸이 한낱 리트머스 종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연히 짜증도 솟구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보고가 나를 건강하고, 아름답고, 오래 살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길냥이들의 싸움 소리에 구경 나간 前길냥이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함께하게 된 우리는 팬데믹 라이프 역시 평화로이 공유 중이다. 물론 고양이 보고는 코로나에 관심이 없을 거다. 그러나 만약 코로나가 뭔지 알게 된다면, 보고는 이 역병을 대단히 환영할 게 분명하다. 하루 온종일 두 집사와 비비고 놀 수 있기 때문이겠다. 작업이 끝나고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 나는 대부분 보고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들고 휴식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 이 친구와의 사냥놀이는 실내 액티비티 급이다. 둘 다 숨을 헐떡일 정도로 격하게 놀고 나면 보고는 내 새끼손톱만 한 혓바닥으로 물을 첩첩 마신다. 가쁜 숨을 함께 몰아쉬며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문득 집에서 일하는 이 삶에 행복해진다. 


여담이지만, 보고는 정환이가 키운 고양이인데도 이름만큼은 '보'란이의 '고'양이, <보고>다. 부르면 부를수록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이다. 이름이 보고라서 그런지 보고는 나와 많이 닮았다. 일단 먹는 걸 심각하게 좋아한다. 그리고 정말 잘 놀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있는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원고를 쓰다보면 작업방이 아닌 집 안의 다른 어딘가에서 툭 하는 소음이 날 때가 있다. 그럼 보고와 나는 동시에 화들짝 놀라며 서로의 얼굴을 한참 동안 마주 본다. 둘 다 심각한 쫄보라 그런 상황은 꽤 많은 편인데, 그런 순간마다 이상하게도 보고가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필 나도 눈이 크고 보고도 눈이 크다. 둘 다 터져나갈 듯 동그래진 눈으로 공포심을 교환하는데, 그럴 때마다 보고가 내 눈을 보며 꼭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야 방금 뭐였음? 개 무섭다!'




(!!!!) 야 방금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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