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숨은 채로 자라는 중입니다 23

by 유신유

「난 무너지지 않는다.

어떡해서든 다시 일어난다.

몇 번이고 넘어져도 일어난다.

그게 내 갈 길이라면 기꺼이.

다만, 네가 옆에 있으면

난 웃으며 일어난다.

다시 넘어져도 네가 있다 생각하면

행복하게 일어난다.」


난 무너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난다.
몇 번이고 넘어져도 일어난다.

그게 내 갈 길이라면, 기꺼이.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애써 일어나냐고.
그냥 주저앉고, 그 자리에 머물러도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은 비켜가지 않고
넘어져서라도 다시 걷는 길이라는 것을.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흙투성이가 되더라도.

하지만, 네가 곁에 있다면 나는 웃으며 일어난다.


다시 넘어질 걸 알면서도
너를 생각하면 괜찮아진다.
행복하게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게 사랑의 힘인지, 신뢰의 감각인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분명한 건 너의 존재가 나에게는
포기하지 않을 이유라는 것.


그러니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그리고 그 곁에 네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밝게, 단단하게, 다시 걸어갈 수 있다.






꺾이지 않는 끈기의 길


삶의 여정은 종종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좌절로 가득하다.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지는 유혹이 몰려온다.

“그만하자.” “이쯤이면 됐어.”
내 안의 목소리가 그렇게 속삭인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다시 일어설 힘이 내재되어 있다.

그 힘은 넘어졌을 때마다 다시 일어나게 하고,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상황 앞에서도 조금 더 버텨보자는 끈기를 꺼내게 한다.


몇 번이고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럴 때마다 “난 무너지지 않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그 말을 마음속에 반복한다.


이건 단순한 다짐이 아니다. 내가 걸어온 길의 증거다.
나는 이미 수없이 쓰러졌고, 그만큼 수없이 일어섰다.

넘어졌을 때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 일어나야 해?”
“어차피 또 무너질 텐데.”


하지만 나는 일어난다. 그게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힘들어도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
넘어져도 다시 걷고 싶은 삶이 있으니까.


진짜 무너지는 건 넘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포기하는 순간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이 길을 끝까지 간다.



넘어져도 기꺼이 걷는 길


끈기란 단순히 어려움을 견디는 능력이 아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기로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태도다.

그 좌절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게 찾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매번 마음속으로 되뇐다.
“그게 내 갈 길이라면, 기꺼이.”

이 마음은 역경을 방해물로 여기지 않고,
내 여정의 필수적인 일부로 받아들이는 선택이다.


때로는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왜 그렇게까지 애써 일어나?”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도 되는 거 아니야?”


실제로 주변에서 자주 들었다.

“무리하지 마.”
“그만해도 돼.”
“넌 이미 충분히 했어.”


그 말들이 진심 어린 걱정에서 나왔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그 길의 끝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를.


끈기란 외부의 인정이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내면의 목적에 대한 본능적인 확신에서 온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왜 가야 하는지.”


어떤 날은 길이 흐릿하다.
안개는 짙고, 발밑은 미끄럽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걷는다.
내 안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고, 한 걸음씩, 조용히, 다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넘어짐은 성장의 기회이다


끈기의 핵심은 실패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있다.

나는 실패를 끝이 아닌 일시적인 상태, 좌절이 아닌 성장의 통로로 바라본다.


“그 길은 비켜가지 않고, 넘어져서라도 다시 걷는 길이라는 것을.”

이 문장은 넘어짐조차 여정의 일부이자,
필요한 과정임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넘어진 후 다시 일어서는 일은 생각보다 외롭고 힘든 과정이다.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흙투성이가 되더라도.”

이 말은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을 때조차 내 안의 힘을 스스로 증명하겠다는 선언이다.


넘어진 모습은 대개 아름답지 않다.
무릎은 까지고, 손에는 흙이 묻고, 옷은 먼지투성이가 된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손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때론 그 과정을 보는 사람은 안쓰러워한다. 그것은 바로 성장의 얼굴이다.

처음 넘어졌을 땐 창피했다. 왜 나만 이렇게 자주 넘어질까,
왜 다른 사람들은 저리도 잘 걷는 걸까.


넘어질 때마다 조금씩 배운다.
어디서 발을 잘못 디뎠는지, 어떤 경고를 놓쳤는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된다.


넘어짐은 나를 가장 잘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걸.

결국 나는, 넘어져서도 배우고, 흙투성이가 되어도 일어서며,
그 길을 기꺼이 다시 걷는 사람이다.



목적이 있는 사람은 다시 일어선다


끈기의 본질은 단지 계속 버티는 데 있지 않다.
왜 그 길을 걷는가, 그 이유를 아는 데 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이 문장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닻이다.


소극성이나 절망 속으로 표류하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주는 중심축.

중요한 것은 일어서는 행위 그 자체보다, 그 이면에 있는 의미다.
나의 노력이 더 큰 목적과 맞닿아 있다는 확신이다.


목적이 있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견디고 초월할 수 있는 내적 구조가 생긴다.


“넘어져도 다시 걸어야 하는 길.”

이 문장은 좌절에 방향을 부여하고, 역경을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바꾼다.

다시 일어서는 힘은 정적인 인내가 아니라,

나의 가치와 방향을 재확인하는 역동적인 자기 회복 과정이다.


가장 힘들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이 길을 가려하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 길 끝에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길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 배워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에.

목적이 없다면 넘어졌을 때 일어날 이유도 없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왜 힘들게 다시 걷겠는가.

그러나 목적이 있다면 다르다.
넘어진 것은 끝이 아니라 과정의 일부다.
이 모든 고통은 의미 있는 무언가로 가는 통로가 된다.



동반자가 곁에 있다면 미소 지으며 일어난다


회복의 여정은 종종 혼자서 시작된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버티는 반복.
어느 순간, 그 여정은 함께 걷는 이야기로 바뀐다.


“네가 곁에 있다면, 나는 웃으며 일어난다.”

누군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나를 다시 일으킨다.
넘어짐의 감정적 풍경을 바꾸고, 그 안에 희망과 미소를 심어준다.


“다시 넘어질 걸 알면서도 너를 생각하면 괜찮아진다. 행복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넘어짐이 불가피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나는 다시 기꺼이, 웃으며 일어난다.


혼자일 때는 일어나는 일이 더디고 고통스럽다.
무겁고, 외롭고, 힘겹다.

그러나 누군가 곁에 있다면 혹은, 곁에 없더라도 떠올릴 사람이 있다면,
일어서는 일이 조금 덜 아프고, 어쩌면 조금 기쁘기까지 하다.


“이 사람을 위해서라도 일어서야지.”
이 마음은, 넘어진 내게 따뜻한 동기를 건넨다.

그 힘이 사랑인지, 신뢰인지, 용기의 기억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절망에 대한 해독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은 내 손을 붙잡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가 일어설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
그 믿음 하나로,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진다.


자랑스러워할 내가 되기 위해, 나는 다시 일어난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함께이기에, 미소 지으며 일어날 수 있다.



더 큰 힘의 원천이 되는 관계


다시 일어서는 힘은 늘 혼자만의 끈기나 고독한 미덕으로 설명되곤 한다.
“시간이 걸리고, 흙투성이가 되더라도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다.”
이 말은 분명 내 안의 단단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동시에,

“네가 곁에 있다면 웃으며 일어난다.”
이 말도 진실이다. 두 문장은 모순되지 않는다.

이 둘의 공존은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숙한 이해를 보여준다.

진짜 강한 사람은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고 나의 자립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손은 나의 주체성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분명한 건, 너의 존재가 나에게는 포기하지 않을 이유라는 것.”


그 순간, 끈기의 동기는 개인적 결심을 넘어
관계적 신뢰와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확장된다.


함께하는 마음은 약점이 아니라, 새롭게 힘을 얻는 샘물이 된다.

혼자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고,
누군가와 함께 일어서는 것은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기쁨이다.


나는 두 가지를 모두 원한다.
혼자서도 괜찮은 자신감, 함께할 때 더 좋아지는 따뜻함을.

가장 힘들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그 손을 잡는 것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손을 잡을 줄 아는 것이 진짜 용기다.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고, 더 따뜻해진다.



넘어져도 괜찮다는 용기


끈기라는 말은 자주 금욕적이고 고립된 이미지를 따른다.
넘어지지 않는 것,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 스스로의 힘으로만 이겨내는 것.

진짜 꺾이지 않는 마음은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이 한 문장은 약함을 두려움이 아니라 진정성의 출발점,
힘을 키우는 토양으로 바꾸어 놓는다.

예전엔 넘어지는 게 창피했다.

누가 볼까 봐, 약하다고 오해받을까 봐 몸과 마음이 동시에 움츠러들었다.

이제는 넘어진 모습이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게 아니라,
그걸 감추려는 태도가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넘어진 채로 괜찮은 척하기보다 흙투성이가 되어도

웃으며 일어나는 사람이 훨씬 더 강하다.

누군가에게 “나 지금 힘들어” “조금 도와줄래?”라고 말하는 건 아직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야 비로소 진짜 연결이 생긴다.

완벽한 척하는 관계보다, 취약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더 단단하다.

넘어진다는 건 나약한 게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넘어짐마저 인정하고 껴안을 수 있는 용기 덕분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굳은 믿음


궁극적으로, 모든 끈기의 근간에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
희망이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이 있다.


“그 곁에 네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밝게, 단단하게, 다시 걸어갈 수 있다.”


희망은 낙관이 아니라 선택이다.
상황이 어떻든 재생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스스로 품고 가는 길이다.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걷는 이유,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다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말이 아니라
“힘들어도 계속 가겠어”라는 나를 붙드는 결심.

희망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다.

눈앞이 흐려도, 내일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도,
그다음 날은 조금 나아질 거라고 믿는 것.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또 하루를 견디며 밝은 날을 향해 나아간다.


넘어질 것이다.

무릎이 깨지고, 손바닥에 흙이 묻고,

때로는 주저앉아 울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일어설 것이다.
희망이 나를 다시 걷게 하니까.



넘어져도 걸어가는 여정


다시 일어서는 길은 선형적이지도, 고독하지도 않다.

그 길은 반복되는 넘어짐과 조용한 회복,
고독의 순간과 지지하는 존재들로 이루어진 복합적이고 살아 있는 여정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좌절한 채로 남아 있기를 거부하는 것.
목적, 연결, 그리고 희망을 힘입어 다시 일어서고 또 일어서려는 결단이다.

이 여정은 때로 지저분하고, 오해받으며, 외롭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변화를 일으킨다.


혼자서든,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든,
끈기 있는 정신은 역경 속에서 자기만의 빛을 찾고,
재생 속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독립과 상호의존, 취약성과 용기를 모두 껴안으며, 나는 말한다.

“난 무너지지 않는다.”

이 말은 넘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약속,
그 속에서도 의미를 찾겠다는 의지다.


돌아보면, 내가 넘어졌던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넘어지지 않았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이 있다.


모든 것이 내 여정의 일부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넘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고,

누군가 곁에 있다면 웃으며 일어설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 걸음씩, 나는 내 길을 간다.
흙투성이가 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선택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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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화, 수,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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