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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Apr 11. 2024

글이 써지지 않는 현상에 대하여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한참이나 되었다. 그러나 도무지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예전엔 좋은 걸 보면, 맛있는 걸 먹으면,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면, 회사와 현실의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면, 무언가에 기대하고 실망할 때면 글로 쓰고 싶어 참을 수 없어지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왜 아무 것도 쓸 수 없게 된 것일까.


오늘 회사의 짧은 점심시간 중에 이렇게 핸드폰으로 토독토독 타자를 치게 되기까지도 한 세월이 걸렸다. 쓰고 싶다고, 뭔가 내 안에서 혹은 바깥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들을 잠시라도 붙잡고 기록하여 남겨두고 싶다고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나는 브런치 작성란의 공백을 마주조차 하지 않은 채 몇 달을 흘려 보냈다.


전보다 덜 느끼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전보다 기운이 없어 진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뭔가 감상이 있다는 의미이고, 그게 좋은 쪽일 때도 나쁜 쪽일 때도 있지만 결국 그걸 표현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있다는 말이니까.


인생은 훨씬 복잡해졌다. 내 인생만 생각해도 되는 시절은 의외로 굉장히 짧았다. 나는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내 인생 말고도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아짐을 느낀다. 그것들 중엔 대단히 무거운 책임감을 요하는 것도 있고, 적당히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것들도 있다. 어느쪽이든 어쨌든 신경을 써야한다는 지점에서 에너지를 쭉쭉 소진시킨다. 아마도 마음이 간결하지 않고 번잡해진 것도 글을 쓰지 못하게 한 요인인 것 같다. 더이상 나의 마음은 몇 줄의 글로 제대로 담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나의 마음을 해석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수준으로 꼬여가고 있다.


단순하게 살고싶다, 고 늘 생각한다. 그게 참 어렵다. 그래도 오늘은 점심시간 십 여 분을 들여 이 글을 쓰고 있어 다행이다. 한동안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려나 진심으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퇴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퇴고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내 글쓰기를 막는 또다른 장벽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런 글도 글이 될 수 있다고 잠깐 믿어보려 한다.


지금 나는 세시간을 주면 쓰지 못했을 글을, 십분이라서 쓸 수 있게 된 상태다. 이 짧은 시간 불쑥 솟아오른 용기는 곧 다시 움츠러들어 버릴테니 이대로 끝을 내보련다. 다시 잘지내볼 수 있을까. 다시 뭔가 써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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